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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비된 여행 Mar 15. 2017

다양성을 인정하는 조직문화

유럽인의 다양성과 개성 존중

누가 보더라도 한국 또는 아시아 국가보단 유럽 국가가 다양성을 존중하고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다양성은 관용과 창의성과도 깊은 관련을 가진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유럽의 학교나 직장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개성을 존중한다. 단일민족으로 구성된 국가나  다민족 국가라 하더라도 EU 국가들은 다원성을 중요한 가치로 인정한다. 최근 난민들의 급격한 유입으로 정치적으론 극우세력이 힘을 얻어가고 있는 형국이지만, 기본적인 개방성과 다양성은 유럽 국가들을 지탱하고 있는 힘이다.


 이러한 다양성의 측면을 직장에 국한해 살펴보자. 쉽게 외모에 대한 개성부터 시작해 볼 수 있다. 요즘 많은 한국의 기업들도 복장 자율화를 받아들이고 있는 추세이긴 하지만, 대부분 유럽의 회사에서 거부감을 유발하지 않는 옷차림 등 외모는 제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각자의 개성에 맞는, 혹은 스스로 직업이나 신분에 맞는 옷차림을 정할 뿐, 복장의 규제는 거의 없는 편이다.


 복장의 자유에서 시작한 개성의 존중은 사고방식이나 취향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유지된다. 자유롭게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가진 조직은 창의적 발상이 실현되기 쉽고, 소통이 원활한 조직이 될 확률이 높다. 타인의 개성 존중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개방적 수평적 조직으로 나아가는 시작이 될 것이다.


유럽의 학교 과정은 수학, 과학 등 공통의 교양과 지식을 가르치는 동시에 학생의 수준과 적성에 맞는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전달하는 데 게을리하지 않는다.

학생의 수준과 특기를 고려하여 가르치기 위해 노력한다. 무엇보다 다양한 클럽활동이나 정규과정 이외의 전문적 특기 적성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어떤 때 행복감을 더 느끼는지 알아보고자 노력한다. 어느 과목의 지적 능력이 탁월하면 상급 학년의 교육과정을 수강하게 하는 학교도 있다. 동일한 공부만 강요하지 않고, 일반 학생에겐 선행학습이 필요 없다는 교육철학을 가지고 있다. 성적표도 자신의 나이에 맞는 학습 정도에서 더 발달되어 있는지, 평균 정도인지를 알아보는 방식으로 표시된다. 무엇보다 선생님은 학생마다 학기 초에 (학년을 마쳤을 때 도달 가능한) 학업적 성취 정도를 제시하고, 제대로 발전해 가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살펴본다. 즉, 결과보다 과정에서의 발달과정과 성취가 잘 되고 있는지를 중요시한다. 그리고, 수업 과정에 있어서도 획일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 체육수업 시간에 특정 구기 종목의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아이들을 본 적 있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하기가 싫은 아이들은 그냥 자기들끼리 다른 것을 하거나 앉아 있는 것이었다. 정확하게 자기가 그 종목 수업을 안 하겠단 의견과 논리가 타당한 아이들은 억지로 시키지 않는 것이었다. 한국의 학교에선 좀 상상하기 어려운 광경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통일과 규율을 위해  강요하지 않고, 자율에 맡기는 것이 위험해 보임과 동시에 학생의 미래를 위해 합리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지 강요를 통해 창의성과 의욕을 상실시키지 않고, 개성을 존중하며 하고 싶은 것을 적극 개발하고 하게 해 줄 수 있다면 나쁠 것도 없다.


 뭔가 타당한 이유가 있으면, (그것이 조직의 동질성에 반하여도) 억지로 꿰어 맞춰지지 않아도 될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 가능하다면 어떨까?

조직의 획일적 특성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들은 (그것이 창의적 사고에 기반한 개성이라 하더러도)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 일반화된 수직적 조직사회의 특성이다. 때로는 조직에 대한 로열티 부족이나, 애사심이 없는 행동들로 불려지게 될 확률이 높다.


 다양성에 반하는 개념은 획일성일 텐데, 한국사회에선 이 획일성을 참 발견하기 쉽다. 많은 직장인이 여가를 즐기기 위해 선택하는 스포츠인 골프를 생각해 보자. 우선 종목이 너무 획일적이다. 많은 스포츠 종목이 있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한 종목 만을 선택한다. 또한 그 한 종목에 대해 너무 경쟁의식에 치우쳐있다. 남들이 하는 정도는 해 줘야 조직에서 도태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학생들이 입시 공부하듯 획일적으로 한 종목에 중년의 성인들이 매달린다. 유럽인들은 한국인들이 왜 그렇게 골프에 목을 매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싫어도 억지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면 그들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원하지 않는 의무적인 운동은  진정한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이다. 유럽 한 초등학교의 체육수업시간과 이상하게 겹쳐지는 대목이다. 무엇이든 중간 정도는 할 줄 알아야 사회에서 인정받고 도태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배워온 한국인들이 많다. 뭐든지 중간 정도는 해줘야 인정받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고, 좋은 조직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원하는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다 해도, 적어도 원하지 않는 것을 억지로 하지 않을 자유 정도는 인정되어야 좋은 조직이고 좋은 사회가 아닐까? 자신이 잘하는 것에 집중하고 더 잘할 수 있는 조직, 지적 호기심을 장려하는 조직이 많았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것만 다 해보기에도 인생은 짧다. 자신이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나 행동도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타당한 범위에서 인정하도록 노력하고, 조직의 중간 어딘가에 맞추도록 강요하지 않는 개인이나 조직이 되었으면 좋겠다.  유행만 따를 것이 아니라 자기의 개성을 스스로 추구하고, 그러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 갈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느 한국 회사 임원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는 고대하던 임원이 되어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업무에  임하고자, 그동안 고수해오던 헤어스타일을 버리고 약한 웨이브 파마를 했다고 한다. 바로 그다음 날, 그것을 본 인사부문 임원이 "임원 씩이나 되는(직원들의 모범이 되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그런 (단정하지 못한) 헤어스타일을 할 수 있는 거냐?"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어쩔 수 없이 하루 만에 머리를 기존 스타일로 복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일상적인 헤어스타일(펌은 여자나 젊은 사람들의 점유물은 아닐진대....) 도 감내할 수 없는 조직문화에서 어떤 창의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펌을 한 머리는 단정하지 않고, 임원답지 않다는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쉽게 강요할 수 있는 조직이 건강한 조직인가? 무엇보다 쉽게 개성을 포기해버리는 개인과 조직 분위기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경직된 몰개성의 조직문화는 창의성이란 씨앗이 자라나지 못하게 하는 토양이다. 지속적으로 개성이 배척되며, 창의성이 구현되지 못하는 조직은 결코  최고가 되지 못한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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