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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건희에게

내가 남의 결혼식에 우울해지는 30대가 되다니

by spring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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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희에게.


오늘은 아침부터 서류 탈락 안내 메일과 함께 시작했지 뭐야.

한 달 만에 난 발표였는데 뭐가 그렇게 바쁘다고 한 달 만에 결과를 발표한 걸까? 어차피 탈락시킬 거면서.

떨어질 수도 있다고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뒀는데 열심히 준비한 채용이라 그런지 어쩔 수 없이 괘씸하고

야속하고 울적해지더라고. 다른 채용 준비 중인 게 있어서 억지로 억지로 자소서 다 쓰고 결국 맥주 한 캔 깠다.


애초에 환승이직에 성공한 전 직장 팀원의 일상 브이로그와 몇 달 전 나에게 퇴사 조언을 구하던 협력업체 직원 분이 최근 이직한 회사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았다며 올린 인스타 스토리를 보니까 더 씁쓸해지더라.

저마다 인생의 속도가 다르고, 각자의 때에 맞게 자기 차례가 온다는 걸 알면서도 내가 원하는 기회는 지금인데 이번에도 선택받지 못했구나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야. (둘 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인데 스스로가 얼마나

초라해지던지...)


내가 드라마 좋아하는 거 알지?

30대 미혼여성이 주연인 드라마 중에 꼭 나오는 장면 중에 인스타그램으로 결혼한 친구들 포스팅 보면서

한숨 쉬는 장면 알아? 난 어릴 땐 그 장면이 진짜 이해가 안 됐었어.

저건 드라마에서나 하는 과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에 얼마 전에 내가 그러고 있더라니까.

최근에 아는 친구의 친구 한 명이 결혼했는데, 이상형을 만나서 딱 적당한 나이에 세상 로맨틱한 프러포즈와 함께 결혼하는 걸 보는데 축복하는 마음보다 부러움과 씁쓸함이 더 크게 드는 거야.

축복하는 마음이 지질한 부러움에 잡혀먹었음에도 친구에겐 톡으로 온갖 호들갑이 섞인 이모티콘을 보내고 있는 나 자신이 싫어져서 그날도 맥주캔을 깠지.

내가 남의 결혼 소식에 맥주캔 까는 30대가 되었다니.

지질한 내 모습을 적나라하게 고백해서 지금까지 쓴걸 다시 읽어봐도 별로긴한데 그래도 털어놓으니 후련하다. 역시 글로 적어내고 맥주를 마시니 한결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아. 자잘한 탄산 방울들도 답답한 마음을 좀 눌러주네.


취직도 해야 하고, 결혼도 해야 하고 난소가 더 늙기 전에 애도 낳아야 하고 아직도 할 게 진짜 많다.

누구에게나 공통되게 주어진 인생의 미션들을 그저 내가 내키지 않아서 미뤄도 되는 걸까?

'내 인생인데 안 내키는 걸 어쩌겠어? 배 째!'싶다가 도

'이러다 영영 미루고만 싶어 져서 눈 깜박하면 할머니가 돼버리면 어쩌지?'싶어.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내일 포트폴리오 수정을 잘 마무리하는 것 밖에 없다.

오늘은 자기소개서 작성 마쳤으니까 맥주마저 마시고 자려고.

그럼 내일이 되면 오늘의 생각 따위는 점심 뭐 먹지 정도의 고민으로 금방 바뀌겠지!

생각해 보니까 너랑 술 한잔 마셔본 적이 없네.

겨울 다 가기 전에 이자까야에서 방어회 한 사발 하면 좋을 텐데 아쉽구만.


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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