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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건희에게

건희에게

by springnote


벌써 2월이라니.

서른 넘어부터는 시간이 화살처럼 지나간다던데 이러다가 눈 깜짝할 새에 손주보고 있을까봐 겁나.

아직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없는데 손주라니 나 오버하는건 여전하지?

넌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마지막으로 연락이 닿았던 게 2년전이었고, 그땐 부산이라고 했었는데 아직 부산이려나.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한다고 했던것 같은데 공무원이됐는지, 뭐하고 사는지 궁금하다.

아직 공부중이라면 둘 다 백수인 지금 만나면 참 좋을텐데 연락할 길이 없네.


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 준비중이야,

갑자기 시간이 확 많아져서 오랫동안 놓고있던 글을 다시 쓰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랜만에 쓰려니까 용기가 잘 안나더라고 뭘 써야할지도 모르겠고.

그러다가 네가 생각났어.

너만큼은 아니지만 내가 편지는 참 잘 쓰잖아?

편지쓰듯 글을 쓰면 술술 써질텐데 싶었고, 너한테 쓰는 편지가 제일 잘 써질 것 같더라구.

평소에 너한테 시시콜콜 하고싶은 말도 많았는데 글로 써보자 싶었지.


예전에도 말했었나?

중학교, 고등학교 배경의 꿈을 꾸면 항상 네가 나와.

난 꿈에서도 오랜만에 만난 게 반갑고도 원망스러워서 너한테 얼마나 울면서 소리지르는지 몰라.

이번엔 꼭 번호를 알려달라고, 바꾸지 말라고, 가족들 연락처라도 알려달라고 떼스곤 해.

비슷한 꿈을 여러번 꾸는데도 항상 아침에 일어나면 꿈에서 흘린 눈물로 베개가 다 젖어있다구.

네가 생각날때마다 혹시라도 기록이 남아있을까 싶어 인터넷에 네 이름을 검색해보는데

요즘은 선재업고 튀어라는 드라마에 나왔던 네 이름이랑 같은 남자배우가 워낙 떠버려서

네 흔적을 찾기가 더 어려워지는 바람에 검색은 그만둔지 오래됐어.

그래도 너에게서 어쩌다 연락이 오면 핸드폰이 꺼지도록 통화했었는데

지금은 그럴 수 없으니 앞으로 여기에 요즘 하는 생각들, 고민들을 가볍게 끄적여보려구.


나는 네가 왜 이렇게 그리운걸까?

난 언제나 네가 너무 애틋해.


항상 전교 10등 안에 들었던 똑쟁이.

넌 스스로를 괴팍하다고 하지만 심성이 고와 선생님들, 친구들 모두가 널 좋아했어.

뭐든 열심히 하고, 솔직한 성격 때문에 평생 친구랑 싸워본 적 없던 나도 너랑 제일 많이 싸웠었는데.

책을 좋아하는 네가 쓴 편지를 읽을 때마다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성격처럼 정갈한 글씨체로 쓴 열네살 너의 상상력과 꿈, 솔직한 마음들이 너무 예뻤어.

너랑 펜팔을 주고 받으면서 네 글이 너무 좋고 멋져서 난 앞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되야겠다고 다짐했었어,


어른이 되어 만난 너에게 감당하기 버거운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늘 네 자신이 우선이었던 너에게 스스로를 제일 끝자락으로 두는 습관이 보일때 많이 슬펐어.

오랜만에 만나 울고만싶지 않아서 더 아줌마처럼 우왁스럽게 떠들었던 거 다 티났지?

그래도 힘들땐 나한테 연락하고 많이 기대주지.

어려운 순간에 날 찾아주지 않은게 오래도록 야속했어.

나 사는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원망만 늘어놨네 미안미안.


내 일상은 퇴사하고 난 후로 엄청 단조로워져서 앞으로 얼마나 글을 자주 쓸 수 있을지,

읽을 만한 글이 될지 장담할 수 없지만 너랑 나란히 앉아 이야기 나누는 마음으로

일기쓰듯이 편하게 적어볼게 또보자.



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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