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희에게.
날씨가 너무 춥다, 겨울이 너무 긴 것 같아. 너의 따뜻한 편지가 그립다.
평일은 일정한 루틴으로 반복되서 너무너무 지루한데 그래도 매주 주말마다 약속이 있어서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것 같아.
일요일에 본가에서 하루 자고 오늘 아침 10시쯤 거실로 나왔는데 너무 한낮인거야.
우리집 아파트 베란다에서 지하철이 지나가는 게 보이거든?
집안에 혼자 멍하니 앉아있으니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들어서
계란 2개에 두유로 아침을 간단히 해결하고 얼른 짐을 싸 집으로 돌아왔어.
아침부터 불안함에 휩싸여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헬스장으로 뛰어갔지.
근력운동을 약간 해주고 러닝머신으로 달려가서 냅다 뛰었어.
머리아플 때 달리기가 직빵이더라.
온갖 잡생각들을 털어내듯이 몸뚱이를 공중에 띄웠다가 두 발로 걷어차듯 지면을 힘껏 밀어내면
진짜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어. 아무 생각없이 30분정도 달리고나면
집에서 옷 챙겨입고 헬스장까지 와서 달리기를 해냈다는 성취감도 들고.
달리기 전에 미리 타코야키를 배달로 시켜둬서 집가선 바로 타코야키도 먹었지.
(밀가루가 몸에 안 받아서 웬만하면 먹지 않지만 속상한 날에는 왠지
내가 원하는 건 그냥 해주고 싶어져)
사건사고 없이 평안한 하루하루는 참 지루해서 무균실에서 지내는 기분이 들어.
얼마 전에 본 영화 <퍼펙트데이즈>의 주인공은 똑같은 하루도 충만하게 보내던데,
쓰다만 영화 감상평에 '별것없는 하루들도 그것대로 완벽한 날들'이라고 적어두고선
금방 잊고 오늘도 지루하다고 느껴버렸네. (지루한 걸 어떡해)
내일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달려봐야지.
돈 아낀다고 너무 낡은 헬스장을 골랐나 후회했었는데 오늘 뛸 때보니까
러닝머신 바로 앞에 관악산이 한눈에 보여서 좋더라.
네가 우리 동네에 살면 참 좋을텐데, 넌 내 개그를 좋아하잖아.
동네에 괜찮은 이자까야가 많은데 저녁에 급 번개로 만나 맥주 한잔하자고 하고싶은 밤이다.
어디에 있던 편안한 밤이되길 바래 친구야.
그리운 나의 벗, 오늘도 내 말동무가 되어줘서 고마워.
봄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