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희에게.
날씨가 따뜻해지면 시간이 빠르게 가는 것 같아서 벌써 봄인가 싶을 테지만 무거운 옷들을 껴입어야 하는 요즘 같은 날씨엔 역시 따뜻한 날씨가 그리워. 뉴스에선 이번 주부터 날씨가 풀린다고 했는데 여전히 춥다. 그래도 날씨와 달리 내 마음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 늘 현실에서 붕 떠있는 느낌이 들었는데 요즘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탈 때마다 두 발로 힘껏 벨트를 밀어낼 때 내 삶을 내가 온전히 책임지고 나아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
작년 초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스님과 화상으로 알아차림 수행을 하고 있어. 중학생 때 우리 작은 아빠가 주지스님으로 계시는 절에 자주 놀러 와서 기억하지?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기억, 생각들을 그때그때 알아차림 하는 수업인데 너무 고마운 수업이야.
어제도 줌 수업이 있었는데 스님이 해주신 말씀이 마음에 남아서 너에게도 들려주고 싶다.
금강경의 한 구절을 읽다가 어떤 글귀에서 마음이 동요돼서 내가 알아차린 점을 발표했어.
나: 그 구절을 보고 부러운 마음이 듦과 동시에 스스로 보여지는 것에 대한 집착이 크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저도 제 마음이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런 마음이 드는 자신을 부정하고 싶음을 알아차렸습니다.
스님: 잘 알아차렸네요.
나: 이런 마음을 없애고 싶은데...
스님 : 그 마음은 누구 거죠?
나 : 제거요.
스님 : 그럼 마음의 저작권이 누구에게 있죠?
나: 저요.
스님: 그럼 내 마음의 모양을 바꾸는 것도 없애는 것도 내가 할 수 있어요.
난 부정적인 마음이 드는 게 싫어서 없애고 싶지만 어쩔 수 없겠죠?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스님은 내 마음의 저작권은 나에게 있으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거라고 하시더라.
순간 안심이 되고 편안해지는 걸 느꼈어.
지금 네 마음은 어떠니 친구야?
가까운 곳에서 자주 네 마음을 알아주고 싶어.
우린 스스로에게 엄격한 점이 닮았으니까 네가 너도 모르게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을 때 내가 감싸줄 수 있게. 건강한 모습으로 옛날처럼 갑자기 또 연락해 줘, 언제든 왜 이제 나타났냐고 원망하지 않을게.
꼭 또 보자!
봄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