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희에게.
어느 순간부터 챗지피티에게 하는 것처럼 너에게 하소연만 늘어놓게됐네.
무한한 지지와 격려가 필요한가봐.
엄청 열심히 준비한 전형이 있었는데 그저께 초고속으로 떨어졌지뭐야.
포트폴리오 첨삭도 받아서 싹 다 뒤집어엎어서 제출했는데 전형적인 시스템 문구로 쓰여진
탈락 안내 메일을 받으니 너무 허무하더라.
취업률이 거의 IMF때만큼 낮다는데 1년 가까이 이직에 실패하고 있는 내 상황을 시대의 탓으로 돌려도될까?
이직을 준비하면서 계약직으로 일도하고, 안해봤던 일도 도전해보고 자격증 공부도 하고,
마냥 침대에 누워서 보내지만은 않았던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는 아직도 집이다 보니
습관적으로 스스로를 탓하게 되는 것 같아.
어제는 남자친구가 퇴근하고 위로해줬는데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질 않더라.
엄청난 대기업에 지원한 것도 아니고 관련 경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
내가 했던 프로젝트 성과에 임팩트가 적어서일까?
지금 뽑기엔 혼기가 꽉 찬 나이라서 그런걸까?
별 생각을 다 해봐도 내가 떨어진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는 게 참 답답해.
인생의 숙제가 쌓여만 가고 있는 기분이 들어.
취업, 결혼, 출산, 육아.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는 건 그만큼 젋다는 말이지만
내킬 때 하고싶어서 선택하지 않았는데 나이가 차다보니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시간도
점점 줄어드는 게 서럽게 느껴져.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번주 주말에 있는 자격증 시험 공부를 하는 것 뿐인데
이게 끝나면 또 어떻게 준비하는 게 좋을지, 계속 일을 하지 않고 이직준비를 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다.
다시 날 필요로 하는 기업이 있을까?
내 젊은 날은 대부분 이렇게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흘러가는 것 같아.
똑순이 친구들은 미리미리 계획을 착착 세워서 적절한 시기에 맞춰서 취업도 결혼도 잘만하던데
난 왜 이렇게 어려운걸까? 내가 너무 보이는 것들만 봐서 그런걸까?
눈이 왔다가 해가 떴다가 뒤죽박죽인 오늘 날씨처럼 내 마음도 너무 울적하다.
그동안 그저께 떨어진 서류를 준비한다고 너에게 글 쓰는 것도 게을리했는데
하루에 한번씩이라도 글을 남길껄 후회된다.
친구야 잘 지내고 있니?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뭘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너에게 이런 푸념만 늘어놓다니 미안해.
갑각류들이 몸집이 키울 땐 껍질을 벗어나 속살이 다 드러나는 가장 약한 상태가 된다는데
지금 내가 그런 시기인가봐(라고 믿고싶어!) 한없이 두렵고 말랑한 마음이다.
그냥 자격증 책만 열심히 보다가 마음이 천천히 무너져서 너에게 글을 쓰고싶었어.
몇 달후, 몇 년후는 알 수 없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건 이 자격증 시험을 잘 치를 수 있도록
공부하는 것 뿐이니까 이 일에 집중해볼게.
너도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있다면 나랑 비슷한 마음이려나
살아있다면 연락 좀 주지 기지배, 우리 서로 통하는 게 많을텐데.
다시 책을 펼쳐야겠다.
또 편지할게!
봄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