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죽었다. 뭐 그런 거지.
하느님, 저에게 허락하소서.
내가 바꾸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정심과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와
늘 그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 라인홀드 니버, 평온을 비는 기도
“신은 죽었다.”
니체의 이 선언은 더 이상 신도, 도덕도, 절대적 진리도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는 냉혹한 깨달음이었다.
'제5도살장'은 그 선언이 실현된 전쟁 이후의 세계, 더 이상 의미도 논리도 통하지 않는 시대에 쓰인 문학이다. 커트 보니것은 드레스덴의 참혹한 폭격을 직접 겪은 생존자였고, 그 경험을 이 소설에 담아내되, 슬프지도, 분노하지도 않은 채, 단지 “So it goes(뭐, 그런 거지)”라고 반복한다. 이 문장은 마치 신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냉소적 기도문처럼 울린다.
죽음은 반복되고, 삶은 무의미하게 흘러가고,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숫자로만 기억한다. 이 책은 어떤 영웅도, 어떤 구원도 없다. 빌리 필그림은 시간 속을 떠도는 순례자이지만, 그는 결코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는 살아 있으나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지만 행동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보고, 듣고, 다시 떠난다. 그래서 그렇다. '제5도살장'은 전쟁 소설이 아니다.
이것은 전쟁 이후에 남겨진 세계를 바라보는 무감각한 눈의 기록, 죽음조차 반복되다 보면 의미를 잃는 시대의 냉소다. 이 소설 속에서 신은, 구원은, 의미는 이미 사라졌다. 남은 건 체념과 무감각, 그리고 죽음을 마주하며 무심히 내뱉는 한 문장이다.
“뭐, 그런 거지.”
'제5도살장'은 시간여행자 빌리 필그림의 파편화된 삶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드레스덴 폭격을 겪고 살아남은 미군 포로이며, 전쟁 이후에는 외계 행성 트랄파마도어에 납치되었다고 믿는 인물이다.
소설은 선형적 구조를 따르지 않는다. 과거, 미래, 죽음, 전쟁, 외계 체험이 순서 없이 뒤섞이고, 우리는 빌리의 의식 흐름에 따라 전쟁터와 침실, 포로수용소와 동물원, 그리고 시간이라는 미로를 끝없이 오간다.
그는 트랄파마도어에서 배운 시간 철학을 통해 말한다.
“죽음은 단지 한 순간일 뿐, 다른 많은 순간에선 여전히 살아 있다.”
그래서 누군가 죽을 때마다, 그는 말한다. “So it goes.” 이 반복은 곧 전쟁의 무의미함, 그리고 죽음조차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체념의 언어가 된다. 빌리의 삶은 의지 없는 순례였고, 그 순례는 결국 세계가 얼마나 쉽게 인간을 파괴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여정이었다.
빌리 필그림
전쟁의 상흔을 온몸으로 떠안은 남자, 빌리 필그림.
그는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 흩어져 버렸다. 과거와 미래를 떠돌며, 고통스러운 순간에 다시 소환당하고, 죽음을 반복해서 목격한다. 트랄파마도어인의 시간 철학을 받아들이며 그는 자유의지를 포기한 채, 오직 수용하는 삶을 택한다. 그의 시간여행은 환상일 수도, 트라우마의 그림자일 수도 있다.
그는 스스로를 구하지 못한 생존자, 혹은 구원이 불가능한 인간의 상징이다.
발렌시아
부유한 집안의 딸, 빌리와 결혼해 안정적인 가정을 꾸린다.
빌리에게 헌신적이고 순응적이지만, 인물 자체는 희화화되었다. 전후 미국의 중산층 가치관을 대표하며, 물질주의, 가족제도, 가부장적 관계에 충실한 인물이다. 하지만 빌리에게는 감정적으로 거의 아무 의미가 없다.
전쟁 후 '정상적인 삶'으로 복귀하려는 시도를 상징하지만, 빌리에게는 그 자체가 감옥처럼 느껴진다. '전쟁에서 살아남았지만, 진짜 살아 있진 않다'는 빌리의 상태를 보여준다.
바바라
빌리의 딸, 아버지를 걱정하면서도 계속 통제하려 든다.
빌리의 시간여행과 이상한 행동을 노환이나 정신병으로 치부한다. 현실에 철저히 발 붙인 인물로, 빌리의 모든 내면적 고통과 환상을 부정하고 '정상'이라는 틀에 억지로 맞추려 한다.
그녀는 또 하나으 억압된 현실이자, 더 이상 연걸되지 않는 가족의 상태를 상징하며, 정신적 단절과 소통 부재를 드러낸다. 빌리는 더 이상 '이해받을 수 없는 존재'다.
로버트
빌리의 아들, 청소년기에는 방황하였고, 나중엔 베트남전에 참전한 미군이 된다.
빌리가 겪은 고통이 반복되는 역사를 상징한다. 2차 세계대전에서 겪은 트라우마는 세대를 넘어 또다시 베트남전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역사의 대물림'을 교묘하게 드러내는 상징이다.
몬태나
지구에서 포르노 여배우였고, 트랄파마도어에서는 빌리와 함께 번식을 위해 짝지어지는 존재로 등장한다.
PTSD로 무기력해진 빌리가, 동물원이라는 비현실적 공간에서 사랑하고, 아이를 갖는다는 건 환상이다. 몬태나는 빌리의 심리적 회복욕구나 잃어버린 인간성, 따뜻함에 대한 갈망이 투영된 존재다.
또한 남성 판타지의 상징이자 풍자로서, 굉장히 의도적으로 '클리셰적인 여신'처럼 그려진다. 미모, 순응적 태도, 빌리를 따듯하게 감싸주는 이상적인 연인으로. 하지만 그녀를 완전한 인격체로 묘사하진 않는다. 의도적으로 남성 중심적 시선이 만들어낸 여성상을 풍자한다.
트랄파마도어인
플런저 모양, 말 그대로 외계적이고 이질적인 존재들이다.
시간을 비선형적으로 인식함으로 과거, 현재, 미래를 한눈에 본다. 때문에 모든 순간이 영원히 존재한다고 믿는다. 빌리의 정신적 피난처로서 등장하며, 시간관에 대한 새로운 철학과 자유의지의 부정을 심어준다.
킬고어 트라우트
빌리가 유일하게 관심을 보이는 작가다.
외롭고 무명인 SF 작가, 대부분의 작품은 3류 잡지에 실렸고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커트 보니것의 분신으로, 커트 보니것의 초창기 과거와 유사하다. 소설 안에 트라우트의 단편들이 여러 번 등장하는데, 이 이야기들 전부가 작품 전체의 주제를 반영하거나 보완하고 있다.
위어리
‘삼총사’라는 망상에 빠져 빌리에게 폭력을 우정으로 착각한 관계를 강요한다.
그는 전쟁이 만들어낸, 영웅을 흉내 내는 폭력적인 작은 인간이다. 죽기 전까지 빌리를 원망하며, 그 원한은 또 다른 폭력을 예고한다. 그의 존재는 전쟁이 어떻게 피해자를 가해자로 변모시키는지를 상징한다.
폴 라자로
빌리와 같은 포로, 키 작고 비열하고 사악한 성격이다.
말끝마다 "내가 널 죽일 거야" 붙는 사람으로 원한을 절대 잊지 않는 복수귀다. 위어리를 대신하여 진심으로 빌리에게 복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전쟁 후 수십 년이 지나도 그 집념을 유지, 미래의 시간대에서 빌리의 암살한다.
그는 복수와 증오의 화신으로, 하찮고 잔인한 감정(사사로운 복수)을 전쟁이라는 맥락에서 끌어올린 인물이다. 그는 전쟁이 끝났음에도 '죽음과 분노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으로 전쟁의 부작용, 인간성의 추락을 상징한다.
더비
가장 도덕적이고 인간적인 인물로, 전쟁의 부조리와 잔혹성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는 상징적 존재이다.
그는 고등학교 교사 출신의 나이 많은 미군 병사로, 자원입대하여 참전한 인물이다. 빌리 필그림과 함께 독일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으며, 드레스덴 폭격을 함께 겪는다. 타인을 존중하고 정의감 있는 태도를 유지하는 인물로, 나치 장교에게 공개적으로 맞서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전쟁이 끝난 후 단지 커피잔 하나를 훔쳤다는 이유로 나치에 의해 처형된다.
더비의 죽음은 전쟁의 부조리를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성실하고 도덕적인 인물이 사소한 이유로 생을 마감하는 이 장면은, 보니것 특유의 건조한 문체로 처리되며 오히려 더욱 큰 충격을 준다. 그의 죽음은 영웅적인 죽음이 아니라, 허무하고 의미 없는 죽음이며, 이로써 우리는 전쟁이라는 시스템이 얼마나 정의와 도덕을 철저히 무력화시키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더비는 ‘조용한 영웅’의 상징이자, 인간적인 고결함이 무참히 짓밟히는 전쟁의 아이러니를 담고 있는 인물이다.
와일드 밥
짧지만 강렬하게 등장하는 인물로, 전쟁의 무의미함과 인간 존엄의 파괴를 상징하는 존재이다.
그는 미군 장교이며, 이미 죽음 직전의 상태에서 혼미한 정신으로 “내 부대는 최고야!”, “너 와이오밍 출신이냐? 그럼 내 부대에 들어와!”라는 말을 반복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의 부대는 이미 전멸했고, 그는 말 그대로 죽어가고 있다. 이 반복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 신념, 정체성을 부여잡은 채 현실을 부정하는 허망한 의지를 드러낸다.
와일드 밥은 “허세에 가득 찬 애국주의”와 “자기기만적 영웅주의”의 상징이다. 그는 전쟁의 진정한 비극성을 보여주는 인물로, 현실을 부정한 채 허위 신념 속에서 죽어간다. 그의 등장은 보니것 특유의 블랙 코미디와 아이러니를 구현하며, 전쟁이라는 거대한 구조가 만들어낸 개인의 파괴된 자아를 드러내는 장치이다.
영국 포로들
제2차 세계대전 초기에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힌 영국 장교들이다.
오랜 포로 생활 덕분에 이미 상대적으로 '안정된 포로생활'을 누리고 있다. 예의 바르고, 조직적이며, 품위를 지키려 노력한다. 이들은 전쟁에서의 국가적 이미지 차이와, 전쟁이 각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그들은 전쟁 속에서도 문명과 교양을 유지하려 하지만, 고상한 태도와 형식이 전쟁의 비참함을 가릴 수 없다는 걸 보여준다. 그들의 연극 공연은 현실 도피에 지나지 않으며, 결국엔 그들도 같은 포로였다.
캠벨
미국인이면서 나치 선전원이 된 캠벨은 전쟁 속 인간의 정체성 분열과 윤리적 파괴를 상징한다.
그는 진심으로 무엇을 믿는지도 모르지만, 그 언어의 힘으로 많은 이들을 속였다. 진실이 선전이 되고, 선전이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시대, 캠벨은 그 가장 위험한 얼굴이다.
럼포드
하버드 교수이자, 공군 역사학자이다.
자신이 쓴 전쟁사 책을 자랑스러워하며, 빌리를 무시하고 혐오한다. 진짜 목격자, 빌리와 가짜 전문가, 럼포드의 만남은 진실의 배제, 역사 왜곡자, 진실 외면자를 보여준다.
동물원의 갇힌 의미.
"우리는 이미 갇혀 있다"
트랄파마도어인들은 빌리를 유리 우리 안에 가두고 인간을 관찰한다. 이 설정은 우리 인간도 어떤 보이지 않는 ‘우리’ 안에 갇혀 살아가는 존재라는 비유로 읽을 수 있다. 사회적 틀, 제도, 전쟁, 시간, 운명, 트라우마, 이 모든 것이 우리를 통제하는 ‘우리’ 일 수 있다.
빌리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전쟁에 끌려가고, 시간마저 통제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존재다. 즉, 이미 인생 전체가 하나의 동물원일 수도 있다. 트랄파마도어인들이 인간을 관찰하는 태도는 마치 신이 인간을 관찰하는 시선, 혹은 사회가 개인을 대상화하고 소비하는 방식을 풍자한다. 인간의 사생활이 외부에 전시되고, 그 안에서 자유의지를 가질 수 없다는 점은 현대 사회에 대한 거울 같은 비판이다.
트랄파마도인들은 시간을 비선형적으로 인식한다. 그들은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본다. 이들은 빌리에게 "죽음은 그냥 한 순간일 뿐"이라며 운명론적 사고를 강조한다. 이 관점은 ‘시간’이 우리를 구속하는 감옥이라는 생각과 맞닿아 있다. 빌리는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살지도, 과거를 바꾸지도 못한다. 그래서 그는 시간의 동물원에 갇힌 셈이다. 빌리는 동물원이란 ‘비인간’을 위한 공간에 ‘인간’으로 갇힌다. 이건 역설적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인간답다는 건 누가 판단하는가? 우리가 타인을 이해하지 못할 때, 그들도 우리를 이렇게 보고 있지 않을까?
빌리 필그림의 시간여행은 진짜인가, 환상인가.
전쟁을 겪은 사람들은 종종 시간 속에 갇힌 채 산다고 말한다.
빌리는 계속해서 과거의 전쟁 장면, 특히 드레스덴 폭격으로 돌아간다. 그는 단지 ‘기억’하는 게 아니라 다시 그 시간 속으로 떨어진다. 이건 PTSD의 전형적 증상. 시간이 직선이 아니라, 고통 속에 고여 있는 형태로 존재하는 것으로, 그래서 시간여행은 실제 ‘SF적 여행’이 아니라, 심리적 감옥이자 트라우마의 은유다. 트랄파마도어인들은 모든 시간은 동시에 존재하며, 바꿀 수 없다고 말한다.
"죽음은 그냥 한 순간일 뿐. 살아있는 다른 순간들이 있으니 괜찮아.", “So it goes.” 빌리는 이 관점을 받아들이고 운명에 순응하는 존재로 변화한다. 이건 전쟁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의지 없이 살아가는 인간상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현실 속 인간은 과거와 미래를 기억과 예측으로밖에 다룰 수 없지만, 트랄파마도어인은 모든 순간을 동시에 관측한다. 빌리의 시간여행은 죽음의 순간까지도 받아들이는 초월적 시선을 의미한다. 즉, 고통과 죽음을 담담히 바라보는 철학적 수단으로 쓰인다.
이게 바로 “So it goes.”의 정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해주는 일종의 영적 방어기제다. 빌리는 전쟁 이후 일상에서도 이상한 삶을 살아간다. 비행기 사고도 겪고, 병원에서도 혼수상태에 빠지고, 가족과 단절돼 있다.그 모든 상황에서 그는 '트랄파마도어'로 “탈출”한다. 이건 명백히 현실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만들어낸 정신적 피난처다. 시간여행은 치료되지 않은 상처의 증거이자, 정신 붕괴의 상징일 수 있다.
“그럼 우리는 뭘 믿어야 해?” 같은 질문이 생긴다면, 그건 보니것이 바로 원했던 반응이다.
진짜는 없고, 그저 ‘그렇게 된 것일 뿐’, So it goes.
빌리가 왜 트라우트를 좋아할까.
트라우트는 비현실적인 설정 속에서도 삶의 부조리와 인간성의 파괴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빌리는 현실에서 자신을 이해해주는 이가 없었기에, 트라우트의 허구적 세계 안에서 오히려 진실을 본다.
트라우트는 빌리의 내면을 구조화해주는 유일한 지적/정신적 동반자이다. 그의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은 오히려 현실보다 더 진실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빌리는 트라우트를 찾아가고, 그의 말에만 귀를 기울이며, 현실에서 배제된 자들끼리의 대화를 나눈다.
위어리의 폭행.
위어리의 폭행은 '제5도살장'에서 전쟁이 만들어낸, 허위의 유대감과 인간성 파괴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로랜드 위어리는 전쟁을 영웅적 서사로 착각하는 병사로, 빌리와 억지로 '삼총사'를 결성했다고 믿으며 친밀감을 강요한다. 그러나 빌리는 그 기대에 부응하지 않으며, 위어리의 환상은 무너진다. 이에 위어리는 실망과 분노를 빌리에게 투사하며 폭행을 가한다. 이 폭행은 단순한 갈등이 아니라, 강요된 전우애가 어떻게 폭력으로 전환되는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전쟁 속에서의 ‘형제애’란 이름은 억압과 위선, 허위 서사의 폭로로 이어진다. 위어리는 죽기 전, 빌리 탓이라고 말하며 독일 병사 폴 라자로에게 복수를 부탁한다. 이 장면은 개인적인 폭력이 비극적인 연쇄의 시작점이 되는 구조를 가진다. 폭행을 당하는 동안 빌리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으며, 자신의 인생에 대한 통제력조차 상실한 존재로 그려진다. 이는 빌리의 무기력함과 전쟁의 희생자로서의 상징성을 더욱 부각한다.
결국 위어리의 폭행은 전우라는 이름 아래 벌어지는 가해 행위, 전쟁 속 자아 붕괴, 그리고 미래의 비극으로 연결되는 서사의 기폭제로 작용한다.
빌리와 삼총사.
작품의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삼총사'라는 기이한 관계 구도이다.
전쟁 중 빌리 필그림은 로랜드 위어리라는 병사와 함께 행동하게 된다. 위어리는 자신과 빌리를 포함한 '삼총사'라는 허구의 팀을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세 번째 인물까지 포함시켜 망상의 세계를 구성한다. 이는 전쟁이 만들어낸 허위의 공동체와 강요된 형제애를 풍자하는 장치이다.
위어리는 전쟁에서 우정을 내세우며 빌리에게 억지로 유대감을 강요하지만, 실제로는 폭력과 지배의 관계가 형성된다. 위어리는 빌리를 괴롭히고 폭행하며, 결국 자신의 죽음을 빌리 탓으로 돌린다. 이는 훗날 폴 라자로의 복수라는 또 다른 비극의 씨앗이 된다.
'삼총사'라는 명칭은 원래 우정과 의리의 상징이지만, 이 작품 속에서는 위선과 폭력, 억지로 조작된 관계의 은유로 기능한다. 빌리는 이 모든 관계 속에서도 무력하게 휘둘리며 아무런 주체성도 드러내지 못한다. 그는 끌려다니고, 맞고, 침묵하며, 결국 가해자의 망상 속에서 억울한 위치에 놓인다. 이 장면은 전쟁의 부조리함과 인간이 얼마나 쉽게 폭력과 집단적 환상 속에 휘말리는지를 보여주는 강렬한 예시이다.
킬코트를 바바라의 결혼식에 초대한 이유.
빌리가 킬고어 트라우트를 바바라의 결혼식에 초대한 이유는 자신의 현실을 정당화하고, 트라우트의 환상 속에서 유일한 공명을 찾기 위해서이다.
빌리는 시간여행과 외계인 납치라는 경험을 실제로 겪었다고 믿고 있으며, 이를 사회에 이해시키기 위해 수차례 시도한다. 그러나 가족과 사회는 그의 말을 믿지 않으며, 오히려 정신 이상자로 취급한다. 그런 상황에서 킬고어 트라우트는 빌리에게 현실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인물로 인식된다.
트라우트의 작품들은 외계인, 시간여행, 존재론적 불안 등 빌리가 겪은 경험과 맞닿아 있으며, 빌리는 그의 소설 속에서 자기 삶의 의미를 찾아낸다. 바바라의 결혼식이라는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장면 속에서 트라우트를 초대한 것은 빌리가 사회적 정상성과 자신의 내면적 진실을 연결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결혼식장이라는 ‘정상성의 상징’ 속에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인물을 불러들임으로써, 빌리는 자신이 믿는 세계가 ‘완전히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진실로 존재할 수 있음을 증명하려 한다. 또한 이 장면은 작가와 우리의 경계, 픽션과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지점이다.
트라우트는 작가로서 픽션을 창조했지만, 그 픽션이 빌리의 삶의 구조이자 진실로 작용하는 순간, 현실과 허구는 전도된다. 이로써 커트 보니것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이 읽는 이 이야기가 정말로 ‘허구’인가?”
트라우트는 빌리의 내면적 진실의 유일한 증인이며, 그의 초대는 픽션이 현실을 해석하는 도구로 작동하고 있음을 선언하는 행위이다.
아내의 죽음
발렌시아의 죽음은 빌리의 전후 삶에서 가장 아이러니하면서도 상징적인 사건으로, 전쟁의 직접적인 결과는 아니지만, 전쟁이 남긴 후유증이 어떻게 일상을 파괴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사건 자체는 우스꽝스럽고 허무하다.
발렌시아는 비행기 사고로 중태에 빠진 빌리를 병문안 가던 길에, 당황한 나머지 차에 머플러를 걸친 채 운전하다가 일산화탄소에 중독되어 사망한다. 이는 단순한 사고처럼 보이지만, 보니것은 이 죽음을 전형적인 비극으로 그리지 않고, “So it goes.”라는 문장으로 건조하게 처리한다.
이는 인간의 죽음조차 무의미하고 기계적으로 소비되는 현실을 드러낸다. 이 장면은 또한 빌리의 무감각함과 인간관계의 단절을 강조한다. 발렌시아는 빌리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빌리는 감정적으로 그녀에게 거의 반응하지 않으며, 그녀의 죽음에도 큰 슬픔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는 빌리가 전쟁 후 정상적인 정서적 반응을 잃었고, 삶의 모든 사건이 ‘이미 정해진 것’으로 받아들이는 트랄파마도어인의 철학을 내면화한 결과이다.
비행기 사고.
빌리의 삶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는 사건으로, 죽음을 향한 수동적 태도, 전쟁 후유증의 심화, 그리고 시간여행이라는 정신적 도피 기제가 겹쳐지는 상징적 장면이다.
이 사고는 단순한 우연으로 보이지만, 소설의 구조 안에서는 이미 예견된 사건이다. 빌리는 자신이 이 비행기를 타게 될 것, 그리고 사고가 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저항 없이 탑승한다. 이는 그가 이미 트랄파마도어인의 운명론적 세계관을 내면화했음을 보여주며, 죽음을 피할 수 없는 하나의 고정된 순간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드러낸다.
사고 당시 빌리는 유명 인사들과 함께 탑승하고, 사고 후 병원에 입원하게 되며 다시 시간여행을 겪는다. 이 구조는 곧 신체적 충격이 정신적 탈출로 이어지는 계기로 작동하며, 현실에서의 고통이 심화될수록 그는 더욱 강하게 환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이 점에서 비행기 사고는 PTSD의 촉발 장면이자 시간여행을 가능케 하는 트리거로 작동한다. 결국, 비행기 사고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죽음은 여전히 임의적으로 찾아온다는 점, 그리고 삶이란 본질적으로 부조리하고 예측 불가능하며, 인간은 그 앞에서 무기력하다는 보니것의 세계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 장면을 통해 빌리는 더 이상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며, 우리 또한 그와 함께 죽음, 운명, 현실이라는 질문 앞에 머물게 된다.
검안사란 직업이 빌리의 직업으로 설정된 이유.
검안사란 직업은 타인의 시력을 교정해 주는 사람이다.
하지만 '제5도살장'에서 이 직업이 빌리에게 부여된 이유는 극단적인 아이러니에 있다. 겉으로는 타인의 시야를 바로잡는 전문가이지만, 정작 빌리 자신은 삶의 본질을 전혀 보지 못하는 인물이다.
전쟁의 참상, 가족과의 단절, 현실과 환상의 경계 속에서 그는 정신적으로 무기력하고 방향을 잃은 상태다. 즉, “보는 자”이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존재, 이는 전후 사회 속 인간의 감각 마비와 도덕적 실명 상태를 상징한다. 또한 검안사라는 직업은 보니것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보고, 무엇을 외면하며 살아가는가?"라는 질문과 맞물린다. 전쟁과 죽음, 고통은 늘 눈앞에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똑바로 보려 하지 않는다.
검안사라는 직업은 빌리의 외적인 ‘정상성’과 내면의 ‘혼란’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상징 장치이며, 현대인이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는 진실을 비판적으로 드러내는 설정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제대로 보고 있는가"
사중창단.
사중창단 장면은 결혼식이라는 평온하고 축제적인 분위기 속에서, 빌리의 전쟁 트라우마가 갑작스럽게 되살아나는 순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사중창단의 단정한 복장과 조화로운 화음은 드레스덴 폭격 이후, 죽은 병사들의 기묘하게 평온한 모습을 빌리에게 연상시킨다. 이는 전쟁의 기억이 얼마나 생생하게 내면에 각인되어 있는가를 드러낸다. 겉으론 평화롭고 기쁜 자리지만, 빌리에게는 그 화음이 오히려 죽음과 고통의 순간을 불러일으키는 ‘방아쇠’가 된다.
이처럼 조화로운 외부와 뒤틀린 내면 사이의 강렬한 대비는 전쟁 후유증, 특히 PTSD의 특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또한, 빌리의 반응을 주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이는 전쟁 피해자가 겪는 고립감과 소통 단절을 상징하며, 현대 사회가 겉으로는 정상처럼 보이는 사람의 내면적 고통을 얼마나 쉽게 간과하는가를 보여준다.
사중창단 장면은 평범한 일상 속에 스며든 전쟁의 잔재를 드러내며, 트라우마란 어떤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 가장 평범한 순간에도 불쑥 솟구쳐 오르는 기억이라는 사실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예수이야기
'제5도살장'에서 등장하는 예수 이야기는 고난과 희생의 상징이, 어떻게 전쟁 속에서는 무력화되는가를 보여주는 장치이다.
예수는 원래 인류의 구원자, 정의롭고 숭고한 희생의 아이콘으로 여겨지지만, 이 소설 속에서는 그 서사가 무심하고 건조하게 서술된다. 보니것은 예수의 십자가형을 언급하면서, 구원이 아닌 고통의 반복에 주목한다. 빌리는 점차 예수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고통을 겪고, 수동적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그는 현대의 무기력한 순교자처럼 비친다. 하지만 예수와 달리, 그는 구원도, 목적도 없는 희생자일 뿐이다. 또한 작중 “예수가 힘센 자의 아들이었다면 어땠을까?”라는 반어적 상상은 기독교적 서사의 권위 자체를 해체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이는 종교의 구조마저 권력과 결탁하면 어떻게 진실을 왜곡할 수 있는가에 대한 풍자다.
예수 이야기는 인간이 고통을 해석하려는 방식, 종교의 역할, 그리고 무의미한 희생의 반복을 모두 비판적으로 비추는 장면이다. 빌리는 구원 없는 시대의 예수이며, 그 비극성은 종교가 더 이상 위로가 되지 못하는 세계를 보여준다.
라디오 토크쇼.
빌리 필그림의 고통과 세계관이 대중과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이다.
이 장면에서 빌리는 자신이 겪은 시간여행과 트랄파마도어인의 존재, 그리고 자신이 언제, 어디서 죽을지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공영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공개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는 이를 진지하게 이야기하지만, 사회는 그를 조롱하고 배제한다. 방송 진행자와 청취자들은 빌리의 말을 정신이상자의 헛소리로 간주하며, 그는 결국 방송에서 쫓겨난다.
이 장면은 전쟁 후유증을 겪는 개인이 사회로부터 어떻게 소외되는지를 드러낸다. 빌리에게 외계인과 시간여행은 환상이 아니라 트라우마를 견디기 위한 생존 방식이었지만, 사회는 그를 이해하지 않고 정상에서 벗어난 존재로 취급한다. 결국 이 장면은 ‘진실을 말하는 자는 미친 사람 취급을 받는다’는 냉소적 현실을 풍자하며, 전쟁의 진실이 대중 담론 속에서 얼마나 쉽게 외면되고 희화화되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메타포로 기능한다. 따라서 라디오 토크쇼 장면은 '제5도살장'의 반전 메시지와 인간 소외의 주제를 응축한 상징적인 장면이다.
빌리의 최후.
운명론적 세계관과 시간의 비선형성, 인간 존재의 무력함이 응축된 장면이다.
빌리는 작품 후반부에 자신이 1976년 시카고에서 폴 라자로에 의해 암살당할 것임을 예언처럼 이야기한다. 그는 이 죽음을 피하지도, 대비하지도 않으며, 마치 이미 모든 것이 정해진 사건이자 시간 속의 한 순간일 뿐이라는 듯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이는 트랄파마도어인의 철학, 모든 시간은 동시에 존재하며, 죽음도 단지 한 장면일 뿐이라는 사고방식을 완전히 내면화한 결과이다. 이러한 태도는 자유의지를 부정하고, 삶조차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빌리의 상태를 상징한다. 그는 전쟁으로부터 살아 돌아왔지만, 진정한 자아는 돌아오지 못한 인물이며, 그의 죽음은 물리적 소멸이 아니라 정체성과 의지, 삶의 의미가 서서히 사라진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빌리의 최후는 시간여행이라는 환상의 종결이자, 전쟁의 피해자가 현실 속에서 어떻게 끝을 맞이하는지를 보여주는 냉정한 선언이며, “So it goes.”라는 문장으로 다시 한번 세계의 무상함을 확인하게 한다.
So it goes.
이 문장은 '제5도살장' 전체를 관통하는 냉소적이고 체념적인 진술이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 문장은 죽음, 고통, 불합리한 사건들이 묘사된 직후마다 삽입되며, 감정적 반응을 제거한 채 모든 비극을 무심하게 흘려보낸다. “그래서 그런 거지”라는 이 표현은 전쟁을 비롯한 삶의 부조리에 대해, 어떠한 의미 부여나 서사적 정당화 없이, 단지 그것이 ‘일어난 일’이라는 태도로 받아들이는 철학을 보여준다. 이는 곧 인간의 무력감, 죽음의 일상화, 현실에 대한 감정적 탈진 상태를 상징한다.
트랄파마도어인의 세계관, “모든 시간은 이미 존재하고 죽음은 그저 한 순간일 뿐”이라는 철학은 이 문장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따라서 이 짧은 문장은 단순한 반복 이상의 힘을 가지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렇게 말하고 넘어가도 되는가?”
“정말 그것밖에는 할 수 없는가?”
그리고 우리는 이 무감정한 문장 앞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강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제5도살장'은 커트 보니것이 전쟁의 참상과 인간 존재의 부조리를, 실험적 형식과 냉소적 문체로 그려낸 반전문학의 결정체이다.
주인공 빌리 필그림은 드레스덴 폭격의 생존자로서, 전후 세계를 살아가며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시간여행을 겪는다. 그는 전쟁의 상처를 외계인과의 조우, 시간의 비선형적 흐름, 반복되는 죽음의 체념적 수용을 통해 표현하며, 인간의 자유의지마저 허상일 수 있다는 냉정한 질문을 던진다. 보니것은 이 작품을 통해 전쟁을 미화하지 않겠다는 윤리적 태도를 고수하며, 블랙 코미디와 메타픽션적 장치를 통해 독자와의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진실에 더욱 근접한다. 특히 “So it goes.”라는 반복적 진술은 작품 전체의 정조를 상징하며, 죽음조차 하나의 ‘순간’ 일뿐이라는 세계관을 내면화한 결과로 제시된다.
'제5도살장'은 단순한 전쟁소설이 아니다. 이 작품은 인간성의 해체, 기억의 왜곡, 현실과 허구의 경계 붕괴를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삶은 과연 우리가 선택한 결과인가, 아니면 이미 정해진 경로 위를 떠도는가?”
결국 이 소설은, 모든 고통과 죽음을 마주하고도 살아가야 하는 존재에게 필요한 것은 해답이 아니라 담담한 수용임을 말한다.
그래, 그런 거지.
지지배배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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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itude - Sentimental Scene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