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편과 함께 아이를 키우며 소소하게 일을 하면서 집을 가꾸는 아내이자, 엄마이자, 자영업자이자, 그냥 나다.
여러 역할의 나에서 나는 ‘그냥 나’가 묻히지 않게 항상 신경을 쓴다. 나를 위한 운동, 나를 위한 음식, 나를 위한 건강한 라이프, 나를 위한 독서, 나를 위한 글쓰기…여러 가지 나의 역할 속에서 나를 뚜렷하게 내세우지 않고 조화로울 때 나는 행복하다.
순수했던 학창 시절에는 내가 20대 성인이 되면 바로 차 한 대를 뽑고 cf에 나오는 멋진 커리어 우먼처럼 언제든지 일출이 보고 싶을 때 차를 끌고 동해바다로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현실은 차는커녕 서울에서 뚜벅이로 원룸 생활을 하며 회사-집의 연속으로 쳇바퀴처럼 정신없이 바쁘게 보냈고, 첫 차는 아이를 낳고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출퇴근 목적으로 뽑았다.
20대 때는 직장에서든, 모임에서든, 심지어 소개팅 자리에서도 끊임없이 나를 증명해야 하고 내가 누구인지 알려줘야 했다. 나의 좋은 모습, 내가 잘하는 것, 내가 해낸 것들을 계속해서 보여주는 데 에너지를 다 빼앗겼던 것 같다. 내가 정말로 좋아해서 보여주고 싶어서 막 꺼내서 보여주는 것과 사회적인 나의 위치와 자리 보존을 위해 증명하기 위해 보여주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곧 마흔을 앞둔 지금은 나름 자영업자로 일을 하고 있는 나름의 커리어 우먼이고, 언제든지 내가 일출을 보고 싶을 때 차를 끌고 떠날 수 있다. 단, 남편과 아이를 태우고 가야 되겠지만 말이다. 어찌 됐든 나는 학창 시절에 상상했던 미래의 로망을 지금은 어느 정도 비슷하게 할 수 있고,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내가 누구인지 나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고 내세우지 않아도 ‘그냥 나’라서 좋다.
지금은 아이로 인해 또는 운동을 하거나 새로운 걸 배우면서 만나게 된 인연에게는 딱히 서로 자기소개를 하지 않는다. 내가 무얼 했고, 뭘 얼마나 대단하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어떻게 아이를 더 잘 키울 수 있을지, 운동을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어떻게 좀 더 천천히 나이 들어갈지, 오늘 저녁 메뉴는 뭘로 할지 현재와 미래에 집중한 대화를 할 뿐이다.
굳이 나를 내세우지 않아도 내 일을 사랑하고, 가족을 챙기고, 나의 하루를 가꾸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 유쾌한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트렌드니, 영감이니 하는 것은 억지로 어디를 가거나 무리해서 누군가를 만나지 않아도 집에서 신문으로, 책으로, 온라인으로 충분히 얻을 수 있다. 나를 내세우고 증명하지 않아도 되니 있는 그대로의 내가 좋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대화를 더 즐거워하는지, 어떤 걸 하고 싶어 하는지, 어떤 관계를 선호하는지 등 좀 더 현재의 나에 집중할 수 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너무 연연할 일도, 조급해할 일도 없다. 지금 현재의 일도 돌아서면 금세 과거가 된다. 가끔 과거 일이 생각나 이불킥을 한다 해도 그저 지금 현재에서 최선을 다해 살면 좋겠다. 나를 내세우지 않아도 행복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