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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한이 없어요.

출산스토리 1

by 권선생

주변에서 아이를 낳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출산은 누구에게나 인생의 가장 큰 이벤트 중 하나로 기억되는 듯하다. 모두가 나름의 고통과 긴장, 기쁨이 뒤섞인 순간들을 경험하며 새 가족을 맞이한다. 나 역시 첫째 출산을 떠올리면 아직도 아찔한 기억이 생생하다.


늦은 나이에 결혼해 달콤한 신혼 생활을 즐기던 어느 날, 큰 어려움 없이 적당한 타이밍에 아기 천사가 찾아왔다. 평소 건강하고 체력도 좋은 편이었던 나는 노산임에도 임신 기간 내내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덕분에 거의 만삭 때까지(임신 38주 차까지) 출근을 했으며, 비로소 출산 휴가에 들어가고 나서야 새 가족을 맞이할 준비를 시작했다.


휴가에 들어간 지 사흘째 되던 밤이었다. 슬슬 복통이 시작되었고, 출산이 임박하면 볼 수 있다는 '이슬' 비쳤다. 하늘이 노래져야 아이가 나온다던데. 나는 갑자기 하늘이 노래 보이고, 진통도 꽤 주기적으로 느껴졌다. '아이가 곧 나오려나보다.' 머릿속이 하얘져 출산 가방을 챙겨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걱정으로 가득한 내 마음과는 달리 당직 의사 선생님께는 내진을 마친 후, 대수롭지 않은 듯 말씀하셨다.

"지금 자궁문이 1센티밖에 안 열렸으니, 오늘 새벽까지 기다렸다가 내일 담당 선새님이 오시면 유도 분만을 시작하는 걸로 합시다."


아기를 만날 설렘과 두려움 속에서 기다림의 밤이 시작되었다.


아침이 밝자 담당 선생님이 도착하였고, 드디어 유도 분만이 시작되었다.

전심에 젖 먹던 힘을 다해 진통을 견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너무 아프고 기운이 빠졌다.

끊임없는 내진이 이어지고 자궁문이 6센티정도 열렸지만, 아이가 내려올 기색이 없었다. 그리고 장기간 촉진제를 맞은 까닭에 아이가 숨을 멈추고 힘들어했다.

결국 담당 선생님은 심각한 표정으로 "아이가 힘들어해요. 응급 수술 진행합시다."

거의 반나절 넘게 진통을 버텨온 나는 오기가 생겨 마지막으로 "한 번 만 더 시도해 볼게요!? 를 외쳤지만,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늦은 오후 수술이 시작됐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마취에서 깨어났지만 머리는 터질 듯 아팠고, 몸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자연 분만 시도 후 응급 수술로 이어진 내 몸은 이미 한계를 넘어선 상태인 듯했다. 병원에서의 5일 동안 나는 두통과 탈진으로 거의 모든 시간을 잠으로 보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러 가지 검사를 해봤는데 그 결과 심각한 빈혈 상태였다.

출산 시 출혈이 너무 많았던 것이 이유였고, 그래서 출산 후 계속 어지럼증이 계속됐던 것이었다. 결국 세 통의 피주머니로 수혈을 받고 나서야 퇴원을 할 수 있었다.


퇴원 후 며칠 뒤, 실밥을 풀기 위해 다시 병원을 가야 했다. 그런데 하필 남편은 급한 회사일로 출근을 해야 했고, 이제 몸도 좀 회복됐던 터라 혼자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담당 선생님은 실밥을 풀면서 염려스러운 목소리로 "피가 아직 자궁벽에 흡수되지 않았어요. 혹시 출혈이 보이면 바로 병원으로 오세요."라고 했고, 나는 크게 개의치 않고 수납을 하고 조리원으로 돌아왔다.

다시 옷을 갈아입으려는 복대가 피로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놀란 마음이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피 묻은 배를 움켜쥐고 조리원 원장님의 도움으로 다시 병원에 도착했다.


알고 보니, 복부에는 출산 후 미처 빠지지 못한 피고임이 있었던 것이다. 이대로 두면 염증이 생길 우려가 있어, 피를 다 빼내고 다시 봉합을 해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 들었다.

외래진료로는 한계가 있으니 다시 입원해야 한다는 권유로 머물러 있던 조리원도 퇴소해야 했다. 게다가 보호자가 없으면 아이도 조리원에서 지낼 수 없으니 같이 움직여야 했다.

다행히 병원과 연계된 조리원에서 아이를 맡아주기로 했는데, 그전에 필요한 절차가 있었다.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은 전염성이 있는 질병에 취약하기 때문에 로타바이러스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로타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구토, 발열, 물설사와 같은 증상을 발현하며, 영유아가 걸릴 경우 심한 탈수로 인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하늘의 장난인가? 첫째의 로타바이러스 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나왔다. 간혹 증상은 없지만 이러한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결국 아이는 격리가 필요하여 혼자 니큐(신생아 집중치료실)가 있는 대학병원으로 보내졌다. 출산 후 호르몬 탓인지 마음이 약해져 있던 나에게 이 모든 일은 정말 악몽처럼 느껴졌다.


그 후로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매일 아침 수술실로 내려가 석션으로 피를 빼내고 절개 부위를 붕대로 감고, 대용량의 항생제를 투여해야 했다. 반복되는 고통 속에서 나는 마치 실험실 속 겁에 질린 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처음 겪은 출산이었지만, 마치 두 번 출산한 것 같은 경험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아팠던 시간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첫 아이를 낳고 나서 나에게 두 번의 임심과 출산을 절대 없을 것이라 단언했다. 내 생에 있어 출산은 더 이상 여한이 없었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

첫째가 첫 생일을 맞이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두 번째 아기천사가 찾아왔다.


2023.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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