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내게 반했어
어린 시절부터 결혼에 대한 막연한 계획이 있었다.
'현모양처에 대한 동경이 없었기 때문에 결혼을 서두를 생각은 아니었고, '(내가 어렸을 때는 결혼에 대한 로망으로 현모양처를 꿈꾸는 친구들이 있기도 했다.) 내가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고 느낄 때 결혼을 하고 싶었다. 내가 말하는 안정은 직장 내에서의 나의 위치와 단단한 마음가짐으로 인한 내면의 상태를 모두 포함한다.
나의 20대 후반, 결혼 적령기라 할 수 있을 시점에 사귀고 있던 남자친구가 결혼을 하고 싶다고 얘기했을 때, 나는 왠지 모르게 부담스러웠다. 사귄 기간이 짧지 않았음에도 내가 생각한 시기가 아니었기에 나는 그와의 이별을 택했다. 이후에도 만나는 사람은 있었지만, 결혼 얘기가 시작되면 늘 적기가 아니라는 생각에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기 일쑤였다.
사실 나는 내 일이 정말 좋았다. 바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맡은 일을 해내고 인정받을 때마다 점점 일에 몰두했다. 내가 하는 일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역할과 업무가 늘어나도 즐겁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8년이라는 세월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어느새 서른다섯 살이 되어 있었다. 일찍 결혼한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늦어질 줄도 몰랐다. 게다가 주변에 하나 둘 결혼한 지인들이 뜻대로 아기를 갖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면서 조바심이 났다. 당장 아기를 갖고 싶지 않았지만, 언젠가 아기를 갖고 싶을 때 그러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도 밀려왔다.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비로소 결혼을 결심했다. 하지만 아무와 결혼하고 싶진 않았다. 생각과 가치관이 잘 맞고, 웃음 코드도 비슷하며, 대화가 즐겁고 평생 나의 동반자로 함께 걸어갈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사실 일과 사랑에 빠져 있던 시절에도 주변의 권유로 가끔 소개팅을 하곤 했다. 자연스러운 만남을 선호했던 나는 소개라는 것이 어딘가 인위적이고 계산적이라고 느껴졌다. 몇 번 만남을 이어가 '썸(호감)'까지는 가보긴 했지만, 연인 관계로 발전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져있었다. 나는 이제 객관적으로 '올드미스'가 되었다. 그런 나를 보고 이미 결혼한 지인들은 조언했다.
"서른다섯 살이 넘으면 소개팅 자리도 줄어들어. 소개팅이 들어오면 신중히 잘 만나봐."
그렇게 서른다섯 살이 되던 해, 첫 번째 소개팅이 성사되었다. 소개팅남의 적극적인 에프터로 만남을 이어가며 '썸(호감)'타는 사이가 되었고, 결국 우리는 마음이 통해 연인이 되었다.
그를 알아가면서 이전 소개팅에서 느끼지 못했던 특별한 감정을 느꼈다. 그의 독특한 취미 덕분일까? 나는 마치 20대로 돌아간 듯한 풋풋한 설렘을 느꼈다. 얼마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는지 모른다. 이번에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했다. 설레는 마음 하나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1년 후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요즘은 수많은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조건에 맞는 상대를 만나 결혼하는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 조건들만으로 결혼을 결심할 수 있을까? 일부는 그럴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 결혼은 서로에게 홀린 듯 반하고, 사랑에 빠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사랑에 빠지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그녀)'가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혼은 단순히 조건이나 타이밍의 문제가 아니다. 서로에게 진심으로 반하고, 그 마음을 기꺼이 받아들일 용기가 있을 때 가능하다. 결국,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만이 결혼이라는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
2024.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