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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는 물음

마음의 불씨

by 권선생

요 며칠 마음이 자주 어지럽다.

나를 돌보는 일은 어느새 뒷전이 되었고, 가족을 돌보며 살아온 시간이 어느덧 5년이 지났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내라는 역할에서, 며느리라는 위치 속에서 나는 내 자리를 잃어가는 기분이다.

한때 나는 누구보다 자주적이고, 감정 표현에 있어 솔직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왜 그 안에서의 나는 자꾸만 움츠러드는 걸까. 왜 나는 내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걸까.


내가 속한 환경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나 해야 할 일에 대해 언제나 응원을 받았다.

"잘한다"는 말에 힘을 얻어 더 잘하려고 노력했고, 누군가 내게 호의를 베풀면 더 큰 선의로 보답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언제나 감사하며 열정적으로 살아왔는데, 요즘은 자꾸 어색한 생각이 든다.


'왜 내가 항상 이해하고, 왜 나만 손해를 보는 것 같을까.'


나는 타고나기를 상대의 감정을 빠르게 읽고 느끼는 사람이다. 말이 아닌 행동, 행동 너머의 진심까지 캐치하는 감각은 늘 나의 장점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토록 자랑스러웠던 이 감각이 이제는 약점처럼 느껴진다.


형식적인 태도, 가식적인 배려, 마음에도 없는 말. 그런 것들은 나를 속일 수 없다.

그리고 그 거짓 속에서 나를 향한 경시를 느낄 때, 내 안의 화는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른다.


"너만 참고 사는 게 아니야. 다 참고 살아."

그 말 한마디는 마치 내 존재를 부정하는 것처럼 들렸다. 마치 '왜 너만 유난을 떠느냐'라고 비난하는 소리처럼.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단호히 말했다.

"난 참고 살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 없다."라고. 이 말을 내뱉고도 남은 불쾌함이 여전히 내 마음 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어도 기본적인 도리는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내가 정한 기준조차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무례하다고 느끼고, 예의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기본이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본보다 높은 기준인지 모르겠지만)


사람이라면 인지상정에 맞게 표현해야 한다.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할 때는 고맙다고,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할 때는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

내 마음을 모두 헤아려 달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 그 말만은 진심이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누구를 크게 미워하거나 원망한 적이 없다. 그런 사람들과는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거리를 둘 수 없는 관계 속에서 나는 매일 불쏘시개를 품고 사는 기분이다. 관심을 끊으려 애써도, 본능적인 감각은 퍼즐 조각을 맞추듯 진실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 진실이 확신으로 다가오는 순간, 내 안에서는 불덩이가 피어오른다.


아직도 나를 몰라서 그러는 걸까.

아니면, 알면서 그러는 걸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진다. 머릿속은 소란스러워지고, 마음은 피로에 지쳐간다.

그렇게 나는 내가 좋아하던 일들마저 놓아버렸다.

흰 여백을 채우며 얻던 작은 기쁨도, 스스로에게 주던 온전한 시간도 모두 잃어버렸다.

이 마음을 털어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내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실행할 용기도, 여유도 없다.

내가 선택한 일이니 감당해야 하는 것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 길 위해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는 나 자신이 원망스럽다.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 안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내 마음을 다시 정리할 시간이, 조금은 여유를 두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시간을 보내며 조금씩 내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 싶다.

그동안 쌓였던 모든 감정들이 눈 녹듯 사라지고, 다시 새로운 감정이 싹트는 순간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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