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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

서운함과 감사함 사이, 가족의 온기를 느끼다.

by 권선생

이번 겨울, 독감이 유난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사람들의 방심이 길어진 탓일까, 아니면 그동안 억눌려 있던 바이러스가 다시 활개를 치는 것일까. 아이들이 혹여나 전염성 바이러스에 걸릴까 염려되는 마음에 겨울이 오기 전 나와 아이들은 독감 예방접종을 마쳤다.

워킹맘으로서 아이들이 아프지 않도록 사전에 할 수 있는 일들은 모두 해두려는 편이다.


"아이들이 있으니, 오빠도 예방접종 해야지." 남편에게도 당부의 말을 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퇴근 후 회사 동료 중에 기침을 심하게 하는 사람이 있어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나도 마스크를 쓰는 게 좋겠어. 독감 접종도 시간 내서 하고."


그의 말에 아직도 접종을 미룬 남편이 조금 야속했고, 마음 한구석에는 혹여 독감에 걸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자리 잡았다.


토요일 아침, 남편이 열이 나고 몸살기가 있다고 했다.

아이들과 함께 일정이 있는 날이라 순간적으로 당황스러웠다. 남편의 증상이 가벼운 감기인지 아니면 독감인지 분명히 알 수 없었다. 아이들과의 일정을 마친 뒤 곧바로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


독감과 코로나 검사를 동시에 받은 남편은 결국 ‘독감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픈 남편보다 아픈 남편으로 인해 더 수고스러울 내가 걱정되었다.

왜 이제껏 독감 접종을 하지 않은 건지, 남편이 백 번 천 번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그 주말, 일요일은 친정엄마의 생신이었다. 가족들이 모두 모이기로 한 날이었지만, 남편이 독감이라는 소식에 가는 것이 맞는지 마음이 복잡했다. 친오빠네 가족도 어린아이들이 있는 터라 감염 위험이 걱정되었고, 면역력이 약한 부모님께 옮기면 어쩌나 싶었다. (남편이 증상이 있고 나서는 우리와 따로 떨어져 격리되어 있었고, 자주 환기도 하고 집안에서 마스크도 착용했다.)


다행히 나와 아이들은 아무런 증상이 없었고, 최대한 주의하며 친정으로 향했다. 엄마의 생신 파티는 조용하고도 따뜻하게 마무리되었다. 친정에서 저녁도 먹고, 아이들 목욕도 시키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과의 접촉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한 나만의 노력이었다.


며칠이 지난 지금, 아이들과 나는 별다른 증상 없이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아이들이 엄마가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건가 싶은 생각에 새삼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남편의 독감으로 깨달은 것도 있었다. 평소에는 나 혼자 육아의 모든 부분을 떠맡아야 한다는 부담감과 서운함이 컸지만, 남편이 아프면서 그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다. 그는 내가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부분까지 함께하고 있었다는 것을.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우리는 다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매번 예기치 못한 상황에 직면하지만, 그 속에서 어떻게든 균형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마음이 복잡한 며칠을 보냈지만, 결국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다시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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