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상품 기획 MD로 일하는 남편과 함께 살며, 그의 바쁜 업무 시즌과 끊임없는 매출 대책에 야근이 일상인 생활이 익숙해졌다. 운 좋게 '6시 땡'하고 칼같이 퇴근을 한다 해도, 회사에서 집까지 거리로 인해 이미 저녁 시간이 훌쩍 지난곤 한다. 아이들 재울 준비를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럼에도 아이들에겐 좋은 아빠이다. 자신의 취미는 다 포기하고 주말에라도 아이들과 온전히 시간을 보내며 잘 놀아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평일 육아의 대부분은 내 몫이다. 육아는 전적으로 내가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가 하나였을 시절에는 친정에 가서 잠시 쉬기도 했지만, 아이가 둘이 생기고 나니 육아는 내가 편하면 누군가는 힘들어지는 것이라는 걸 깨닫고는 자주 가지 않는다.
등하원 준비와 내 출근 준비를 동시에 하는 것은 난이도가 꽤 높은 일이다. 아이를 낳고 이직하면서 '10 to 4' 근무를 선택한 나에게 자연스럽게 주어진 역할이었다. 아침마다 두 아이를 허겁지겁 등원시키고, 퇴근 후 바로 하원을 시켜 나의 육아업무가 시작된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보며 대단하다고 말하며, 어떻게 도움 없이 혼자 다 해낼 수 있냐고 의아해한다. 게다가 입 짧은 아이를 두고 있어 나는 요리에도 매우 진심인 편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저녁 식사는 내가 직접 만들어 먹이는 편이다.
'닥치면 된다.' 이 문장은 내 일상을 가장 잘 묘사한다. 매일 아침 아이들의 준비물을 챙기며 늘어난 업무량을 감당하는 요즘, 시간은 점점 더 빠듯해져만 간다.
그런데도, 최근 휴식 중인 남편을 보면 알 수 없는 서운함이 생긴다. 바쁜 업무에서 벗어나 등하원을 도와주는 남편 덕분에 육아가 조금은 수월해졌지만, 내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심통이 난다.
이 서운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의 바빴던 시간에 대한 보상이 필요한 걸까? 아니면 내가 처한 상황을 100% 공감해주지 못해서일까? 내가 남편이라면 더 적극적으로 가정에 힘을 쏟으려 노력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쩌면 남편과 나의 다른 모습이 나를 더욱 서운하게 만드는 지도 모르겠다. 그는 내가 아니고, 나 역시 그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지만, 마음은 여전히 그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한 유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가 나와 똑같은 고민을 가진 엄마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지금 알았던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그 전문의가 아이를 낳고 직장 생활을 할 당시만 해도,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육아에 대한 배려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할만하니까 하는 거 아니냐며 핀잔 섞인 소리도 들어본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결혼과 육아, 직장 생활을 병행하며 매일이 전쟁 같은 날들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녀도 한때 육아에 적극적이지 않은 남편을 원망했지만, 시간이 지나 아이들이 아빠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대하는 태도를 보며 마음이 달라졌다고 한다. 결국 아이들과는 보이지 않는 거리감이 있는 남편이 자신을 부러워하게 된 지금, 그녀는 그때의 서운함을 그렇게 풀어낸다고 말한다.
나 역시 엄마가 되고부터 모든 것이 처음이다.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고 있고, 가끔은 누군가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받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내 마음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받는 날이 올 거라 믿는다. 그날이 올 때까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이 시간을 좀 더 즐겨봐야겠다.
지금 내가 흘리는 땀과 눈물이 헛되지 않음을 믿으며, 오늘도 나 자신을 조금 더 소중히 여기기로 다짐한다.
2024.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