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은 엄마의 요리를 맛있게 한다.
결혼 전, 나는 요리에 관심도 없고, 잘해야겠다는 생각조차 없었던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요리는 라면, 계란프라이, 그리고 김치볶음밥 정도였다. 엄마가 김장을 할 때 고춧가루를 덜어주고, 젓갈과 소금은 부어주며 요리에 있어서는 서브 역할만 해왔던 것이 전부였던 내가 결혼하고 나서는 집안의 메인셰프(?)가 되었다.
결혼 후, 신혼 시절 예쁜 그릇에 음식을 담아내는 그 행위가 좋아 요리의 재미에 빠져 이거저것 만들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메뉴를 정하고 재료를 준비해 요리를 하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남는 재료가 쌓이곤 했고, 먹는 것보다 버리는 것이 더 많아지는 시점에 결국 우리집 주방은 간헐적 영업을 하게 되었다.
아이를 낳으면 이유식을 시작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요리 실력이 는다고들 한다. 하지만 첫째는 젖병 물던 시절부터 먹는 양이 적었고, 정성 들여 만든 이유식도 거부하며 결국 시판 이유식으로 먹일 수 밖에 없었다. 유아식을 시작한 후에도 입맛이 까다로워 늘 몇 가지 반찬만 먹으니, 안타깝게도 내 요리 실력이 나아질 기회는 없었다.
그러나 둘째를 낳고 나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출산 직후 내가 코로나에 감염되는 바람에 모유는 커녕 초유도 한 모금 먹지 못했던 우리 통통이. (첫째였으면 엄청 마음이 아팠겠지만, 첫째때 어설프게 늘어난 젖양때문에 말릴때 고생했던 기억에 어쩜 이런 상황이 나은건가 싶기도 했다.)
통통이는 젖병먹는 시절부터 쭉쭉 잘먹는 먹성이 좋은 아이였다. 그래도 모유를 먹이지 못했던 약간의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만든 초기 이유식을 맛있게 먹어주던 고마움 때문이었을까? 자연스레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기 시작했다.
쌀미음, 소고기미음, 단호박미음, 시금치미음 등등. 통통이는 가리지 않고 그릇을 싹싹 비웠다. 첫째에게서는 느끼지 못했던 묘한 뿌듯함이 몰려왔다. 유아식을 먹는 요즘도 반찬투정없이 잘 먹는 둘째는 내게 요리하는 기쁨을 알게 해준 귀여운 사랑둥이다. "엄마가 오늘은 뭐 맛있는 거 해줄까?"라고 묻는 귀여운 목소리로 "나물!"이라고 답하는 둘째는 완벽한 한식파이다.
덕분에 내 요리 실력도 상향가이다. 이제는 자주하는 몇 가지 국과 반찬은 레시피 없이도 척척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고, 둘째가 좋아하는 나물 반찬도 어렵지 않게 뚝딱해낸다. 요리가 일상이 되다 보니, 냉장고에 남은 재료로 메뉴를 정하는 소위 '냉장고 파먹기'도 거뜬히 해낼 수 있는 실력이 되었다.
워킹맘이 된 후에는 아이들의 아침 식사를 잘 챙기지 못하는 미안함에 저녁 식사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되나. 아이들에게 단백질 섭취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소고기, 생선, 계란 등 단백질이 풍부한 요리를 주로 하는 편이다.
오늘은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음을 새삼 느꼈다. 쌀쌀함에 몸도 마음도 따뜻해질 저녁 메뉴를 고민한다. 무더운 여름 보양식으로 삼계탕을 해줬을 때, 입짧은 첫째도 잘 먹었던 기억이 떠올라 오늘은 닭곰탕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닭곰탕 레시피를 훑어보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재료를 손질하며 요리를 시작했다. 닭을 다루는 건 손이 많이 가고 번거로운 일이지만, 한 솥 가득 끓여낸 닭곰탕 냄새에 저녁 시간의 피로가 스르르 풀렸다.
"엄마, 맛있어요! 더 주세요!"라며 그릇을 들고 더 달라 외쳤고, 남편은 청약고추를 후첨가하여 칼칼한 맛을 더했더니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맛있다며 칭찬해줬다. 요리 초보시절에는 남편 음식을 따로 챙길만큼 능숙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아이들 요리를 어른 입맛에 맞게 한 번 더 손을 보는 나만의 스킬도 생겼다.
엄마가 된 후, 나도 참 많이 달라졌다. 요리에 무지했던 신혼 시절, 설탕과 소금을 넣어 카레를 끓이던 내가 이제는 우리집 주방을 책임지는 메인셰프가 되었다.
문득, 첫째와 둘째가 맛있게 밥을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가 퍼져나왔다. 엄마가 된다는 건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이전에 관심 없던 것들에 정성을 쏟고,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별게 아닌게 되어버리는 그런 변화가 내 삶에 조용하고 따뜻하게 스며든 것이다.
2024.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