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엄마와 아이가 안심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어린 시절, 방학은 나에게 선물 같은 시작이자,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여름과 겨울, 일 년에 두 번, 약 80일의 기간.
늦잠을 자고, 이불속에서 뒹굴거리며 늑장을 부려보기도 하고,
친구들과 실컷 뛰놀던 기억들. 그리고 가족들과의 추억을 쌓는 소중한 휴가.
방학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찬란한 쉼표와 같았다.
그러나 '엄마'라는 타이틀을 달고 입장이 바뀌고 나니 그 쉼표의 무게가 달라졌다.
방학 동안 매 끼니를 손수 챙겨주던 우리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시절 배달과 외식은 드문 일이 있고,
엄마는 방학 동안 하루 세끼 우리르 위해 밥을 차리고 숙제를 봐주며 하루를 바삐 살았던 것 같다.
그 노고를 이제야 깨닫고, 문득 그 시절의 모든 엄마들이 대단했음을 인정하게 된다.
내 어린 시절엔 대부분의 엄마들은 전업맘이었다.
가끔 열쇠를 목걸이로 만들어 목에 걸고 다니는 친구가 있으면,
'엄마가 일하시는구나.'하고 짐작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세상이 되었다. 요즘 대부분은 맞벌이로 살아간다.
나 역시 워킹맘으로서 아이들의 방학이 다가올 때마다 무거운 마음을 떨칠 수가 없다.
이런 고민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주변인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워킹맘이든 전업맘이든 방학은 모든 엄마에게 부담이다.
방학이라는 사전적 의미는 일정 기간 동안 수업을 쉬는 일. 또는 기간을 말하며,
학교에서 학기나 학년이 끝난 뒤 또는 더위, 추위가 심할 때 실시한다고 명시되었다.
선행학습이 일반화되어있고, 거의 모든 학교들이 냉난방시설을 잘 갖추고 있을 텐데
꼭 방학이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하교 시간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비해 빠르다.
오후 1시 반쯤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를 홀로 둘 수없어
맞벌이 가정의 부모들은 결국 학원이라는 대안을 찾게 된다.
태권도 학원 같은 경우는 학교 앞에서 대기했다가 아이들을 픽업하여 수업을 진행하고,
다음 학원으로 연계해 주는 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워킹맘에게는 필수 코스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전업맘에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학교에서 일찍 돌아온 아이를 마냥 놀릴 수는 없으니 결국 학원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방학과 이른 하교가 사교육의 증가로 이어지고, 아이들 간의 학습 격차를 심화시킨다.
학업에 대한 부모의 관심과 경제적 여건이 사교육의 질과 양을 결정짓기도 한다.
요즘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친구들과 신나게 어울려 놀 리보다는 학원과 집을 오가며 쳇바퀴 돌듯 하루를 보낸다.
당연히 신체 활동은 줄어들고, 그로 인해 소아비만이나 성조숙증과 같은 문제들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 정부에서 늘봄학교를 확대 실시하며 모든 초등학생들에게 양질의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면 늘봄학교에서 현시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건 어떨까?
학교에서 방과 후 시간을 이용하여 매일 일정 시간 동안 필수적으로 체육수업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햇빛을 보고 신체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건강한 신체에서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말이 있듯이
이 시간을 통해 체력을 기르고, 팀워크와 협동심도 함께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방과 후 체육수업 프로그램으로 인해 조금 늦어진 하원 시간은
빠른 하원이 부담스러운 엄마들의 걱정도 줄이고,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도 조금은 줄어들 것이라 생각한다.
요즘 초등학교 아이들 사이에서는 '돌봄 거지', '개근거지' '라는 말도 오간다고 한다.
일을 하는 엄마로서 이런 이야기를 접하면 참 가슴이 아프다.
어느 정도 일률적인 하교시간을 정해 부모의 부재로 인한 심적인 괴리감도 고려될 필요가 있다.
늘봄학교도 '늘봄거지'라는 새로운 오명을 피하기 위해 늘봄학교 인식 개선을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단순이 돌봄이라는 영역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학교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아이들의 학업 향상에도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양질의 프로그램도 함께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학교가 단순히 '돌봄'이 아닌 '배움'과 '성장'이 중심이 되는,
아이들을 위한 진정한 교육의 장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2024.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