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엄마가 필요해
아이 둘이 제법 자라 이제는 함께 놀기도 하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도 늘어났다.
덕분에 예전보다는 육아가 한결 수월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힘들지 않다는 건 아니다. 여전히 아아들 케어는 나의 몫이고, 목욕 같은 체력을 소모하는 일은 매일같이 반복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아가 여전히 버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이를 낳은 이후부터 '엄마'라는 존재가 대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아이가 아프거나 긴급한 상황이 생기면, 아무리 주변에 사람이 있어도 결국 끝까지 아이 곁은 지켜야 하는 건 엄마인 나였다.
게다가 우리 가족은 남들처럼 친정이나 시댁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시댁은 거리가 멀고, 친정 부모님 역시 연세가 있으셔서 아이 둘을 맡기기엔 체력적인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난 이후, 나는 마음 놓고 쉬거나 자유롭게 놀 수 있는 날이 거의 없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막중한 책임감과 압박감이 늘 나를 짓누른다. 모든 계획은 아이 중심이 되고, 나를 위한 계획은 늘 뒷전이 된다.
가끔 '자유부인 데이'라 해서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친구들을 만나거나 나만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몇 시간조차도 아이들이 엄마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도록 식사 준비며 작은 루틴 하나하나까지 모든 세심하게 챙겨두고 나서야 겨우 마음 편히 외출할 수 있다.
요즘 아빠들의 육아 참여가 당연해졌다고는 하지만, 그건 다른 집 이야기일 뿐이다. 늘 바쁜 직종에 있는 남편은 이직 후 더 바빠져서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는 얼굴 보기조차 힘들다. 아침에는 아이들이 눈뜨기도 전에 출근하고, 밤늦게야 집에 돌아오는 생활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 남편이 지난 일요일부터 3박 4일 동안 출장을 가게 되었다. 아이들을 혼자 돌볼 수야 있지만, 막상 혼자 볼 생각을 하니 마음이 불안했다.
'만약 밤중에 아이 하나가 크게 아프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아이 둘을 데리고 갑작스런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까?'
출장을 가기도 전부터 별의별 걱정이 밀려왔다.
그래서 결국, 염치 불구하고 또 엄마에게 연락을 했다. 엄마는 아무 망설임 없이 나에게 와주었다. 엄마가 집에 오신 순간, 나의 불안했던 마음은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엄마는 언제나 그렇다. 내가 불안에 휩싸일 때마다, 말없이 곁에 있어주면서 괜찮다며 나를 안심시켜 주는 사람. 어린 시절에도, 그리고 어른이 되어 마흔이 넘은 지금도.
아이를 낳고 나서 느낀 것은 '엄마도 여전히 엄마가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어엿한 어른이고 엄마로 살아가는 나이지만, 누구보다도 나는 여전히 엄마가 필요한 존재였다.
아이를 낳고 나니 친정에 가서도 엄마와 제대로 마주 앉아 대화 한 번 나누기가 쉽지 않았다. 친정에서도 엄마와 나는 아이들을 돌보느라, 서로의 얼굴을 겨우 스치듯 볼 때도 많았다.
엄마도 종종 말하셨다.
"딸이 와도 손주 녀석들 돌보느라 얼굴도 제대로 못 본다."며 아쉬운 마음을 드러내셨다.
그래서 이번에는 마음을 먹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하루쯤은 엄마와 둘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아이들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 있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엄마와 함께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을 먹고, 쇼핑도 하고, 커피도 마시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싱글 시절, 나의 든든한 쇼핑메이트였던 엄마와 함께한 시간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졌다.
'왜 진작 이런 시간을 내지 못했을까' 마음 한켠에 아쉬움이 스쳤다.
곧 여행을 앞둔 엄마를 위해 옷을 한 번 선물했다. 늘 '편한 게 최고'라며 관심 없던 엄마가 새 옷을 입어보며 모처럼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덩달아 따뜻해졌다.
그러면서 문득, 언젠가 엄마가 내 곁을 떠나게 되었을 때, 오늘처럼 함께한 소소한 하루가 오래도록 마음을 지탱해 줄 소중한 추억이 되겠구나 생각했다.
더 늦기 전에, 더 자주 엄마와 이런 소중한 시간을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 내 곁에 오래오래 있어주세요.
그리고 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