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내가 나를 챙기고 싶은 날도 있다.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일수록, 더 많이 챙기고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살면서 소중한 게 몇 가지 있겠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이제는 다른 무엇보다도 '가정'과 '아이들'이 내 삶의 최우선이 되었다.
한때는 누구보다 일을 사랑했고, 나의 발전을 위해 늘 바쁘게 움직이던 사람이었다.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더라도, '나는 나다'라는 다짐을 늘 해왔다. 하지만 그 다짐은 현실 앞에서 무너졌고, 이제는 나도 '어쩔 수 없는 엄마'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더 의식적으로 나를 붙잡으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아이들이 다 자라서 더 이상 내 손길이 필요 없게 되었을 때, 밀려올 허전함이 두려워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쩌면 힘들면서도 워킹맘의 삶을 계속 이어가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삶은 엄마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
나는 요즘 이 사실이 가장 궁금하다.
아이를 열 달 넘게 품고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엄마가 되면 자동으로 모성애가 장착되는 것일까?
아이를 키우는 건 부모 둘의 일인데, 왜 대부분의 책임과 감정은 엄마에게 쏠려 있는 걸까.
물론 아빠들도 많이 변했다. 육아에 참여하는 아빠들도 늘고 있고,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는 노력도 보인다. 하지만 현실에서 육아의 주체는 여전히 '엄마'다.
맞벌이 가정도 많은 요즘,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엄마의 빈자리를 대체하지 못하는 시대는 아니다. 정서적인 교감이나 애착은 여전히 엄마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아이를 키우는 일 전체가 엄마의 일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나.
이사 후, 매일 야근을 하는 신랑의 출장이 취소된 그날부터 몸이 안 좋았다. 아마 잡고 있던 정신줄이 조금 풀어졌던 모양이다. 휴일 없이 아이 둘을 돌보고, 일도 병행하다 보니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마무리할 회사 업무도 있어서 양해를 구하고 재택근무를 신청했다. 출근하는 남편에게 아이들의 등원을 부탁했는데, 출근하자마자 미팅이 있다며 그마저도 거절했다.
그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날따라 직장 동료들과 대표님이 더 고마웠다.
가장 가까운 사이인 남편에게 이해받지 못한 나는 속이 상했고, 울컥해서 하소연을 하며 소리쳤다.
아플 때도, 일이 바빠도 결국 아이를 챙겨야 하는 건 나뿐인가.
죽으나 사나 아이들은 엄마가 케어해야 한다는 것인가.
그러자 남편도 지지 않고 그럼 자기는 회사에서 쉬는 거냐고 되묻는다.
그 말 앞에 나는 늘 말문이 막힌다. 마치 열흘 넘게 야근한 사람에게 고작 하루 야근하고 힘들다고 말하는 어이없는 상황처럼 느껴진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나는 많이 너그러워졌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순간에는 여전히 참기 어렵다. 나는 대인배는 못되나 보다. 그래도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에게 내 상황을 이해받지 못하는 순간이 가장 서운하고 비참하다.
가끔은 나도 나를 챙기고 싶다.
나는 엄마이면서도, 여전히 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