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일의 선물
어느덧 너와 함께한 시간이 1800일이나 되었단다!
생각해 보면 하루하루가 똑같은 일상의 반복처럼 느껴지지만, 그렇게 쌓인 시간들이 너를 이만큼 키워주었고, 나를 엄마로 성장시켰지. 사실 그날은 몸살 기운에 회사도 가지 못하고 종일 기운이 없었지. 작은 케이크 하나에 촛불을 켜주지 못한 게 마음이 걸렸어. 그래서 작지만 네가 좋아하는 선물을 준비했어. 요즘 빠져있는 티니핑 중 가장 좋아하는 <깡총핑의 수저세트>를 준비했어. 예상은 했지만, 정말 너무 좋아하더라. 그 모습을 보는데, '진작 사줄 걸'하고 순간 후회가 밀려왔어. 너의 반짝이는 표정 하나에 그렇게 많은 감정이 스쳐가는 걸 보면은 역시 나는 엄마구나 싶다.
돌이켜보면, 너는 늘 느릿느릿, 조심조심 네 걸음을 내딛는 아이였어.
18개월에 첫걸음을 뗐고, 36개월쯤에서야 문장으로 말하기 시작했지.
만 네 살이 되어서야 기저귀를 졸업했을 때, 나는 조용히 생각했지.
초조했던 시간들, 남들보다 늦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함, 그리고 내가 육아를 잘못하고 있나 하는 죄책감까지 아직도 그 감정이 선명해.
하지만 이제는 알겠어. 너는 네 속도로 세상을 배워가는 중이었고, 그 속도는 결코 느린 것이 아니라 너에게 맞는 걸음이었다는 것을.
다른 부모들은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우리 애는 천재인가 봐'하고 감탄한다고 하더라.
나는 그런 경험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지.
너는 언제나 마지노선에 맞추어 발달 단계를 따라갔고, 나는 그걸 지켜보며 마음을 졸일 뿐이었으니까.
그런데 어제,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어.
가르쳐준 적 없는 덧셈을 스스로 해내는 너를 보고 말았지.
마치 네가 나에게 온 1800일의 선물처럼 나에겐 큰 의미가 있었단다.
잠시지만, '우리 딸 수학 천재 아니야?'라는 말이 머릿속을 스쳐갔고, 그 순간 나는 조금 편안해졌어.
그래 괜찮아. 잘하고 있구나.
네 발걸음대로 잘 걷고 있구나.
그런 마음으로 나는 어제 <너의 발검음>이라는 시를 썼어.
네가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너의 리듬에 맞춰 걷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야.
엄마가 된다는 건, 너를 기다려주는 법을 배우는 일이구나 싶어. 앞서 걷기보다 옆에, 혹은 조금 뒤에 서서 네가 힘들 땐 손을 내밀 수 있도록 곁을 지키는 일.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인 것만 같아.
1800일이라는 시간.
그 안에는 걱정도, 감동도, 웃음도, 눈물도 참 많았지.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날들 속에서 나는 계속 너를 관찰하고, 응원하며, 너의 속도에 나를 맞춰갈 거야.
지금처럼 너의 걸음대로 천천히 걸어가 줘
그 곁에서 나는 늘, 네 그림자처럼 함께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