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인형 그 이상의 존재
저번 주, 신랑 생일을 기념해 주말여행을 다녀옸다.
하필이면 피서철 한가운데 태어난 신랑 덕분에, 강원도까지 가는 데만 무려 7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오랜만에 도심을 벗어나 자연 속으로 떠나오니 아이들도 좋아하고, 나와 신랑에게도 힐링이 되는 시간이었다.
막힌 도로에서 진땀을 빼며 도착했던 어제의 기억을 떠올리며, 돌아올 땐 더 늦기 전에 서둘러 서울로 출발하기로 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근처 시장에 잠깐 들러 이것저것 구경도 하고, 그 지역 특산품인 옥수수빵도 샀다. 옥수수로 인테리어 되어 있던 예쁜 베이커리 카페에서 사진도 찍고, 아이들과 함께 맛있는 빵을 나눠 먹었다.
서울로 출발한 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일찍 일어나 피곤했던 첫째가 잠이 오는 모양이다.
"엄마, 내 토순이 어딨지?"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장면 하나.
토끼 인형이 베이커리 카페 한편 의자에 놓여 있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나는 급히 방금 샀던 빵 봉투에 적힌 가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혹시, 거기 회색 작은 토끼 인형이 있을까요?"
"네! 안 그래도 아이에게 소중한 인형인 것 같아서 저희가 보관하고 있어요."
정말 다행이었다. 여러 곳을 들렀기에 어디에 두고 왔는지 애매했는데, 내가 기억한 그 장소에 토순이가 있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 있었다.
혹시 택배로 보내주실 수 있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가능하다고 하셨다. 감사한 마음에 회사 동료들과 나눠 먹을 옥수수빵을 추가로 주문했다.
토순이는 첫째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늘 함께했던 애착 인형이다.
어디를 가든 꼭 가져갔고, 특히 여행이나 낯선 곳에 갈 땐 더욱 챙겼다. 그래서 신랑과 나는 종종 농담처럼 말하곤 한다.
"우리 다자녀야. 첫째, 둘째, 그리고 또순이까지."
요즘은 첫째가 조금 커서 어린이집이나 가까운 외출에는 토순이를 두고 가기도 하지만, 이번 여행처럼 하룻밤 자고 오는 날엔 꼭 데리고 간다. 그런 모습을 보고 배운 건지, 둘째도 자기 애착 인형인 멍뭉이(강아지 인형)를 늘 챙기니, 이제 아이(?)가 넷인 셈이다.
사실 토순이를 잃어버릴 뻔한 일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 번은 대형 쇼핑몰에서 사라졌는데, 고맙게도 누군가 고객센터에 맡겨주셨고, 또 한 번은 노을공원 맹꽁이 열차를 타다 떨어뜨렸는데, 다음 운행을 하시던 직원분이 주워다 주신 덕분에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정말 토순이도 우리 가족이 아닐까 싶다.
돌이켜보면, 그저 인형일 수도 있지만, 한 아이에게는 아주 소중할 수 있다는 걸 아는 그 누군가들 덕분에 이렇게 늘 우리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자신의 아이, 혹은 손주의 소중한 물건이 떠올랐을지도 모르겠다. 그 따뜻한 마음과 배려가 있었기에 우리는 다시 토순이를 만날 수 있었다.
돌아온 토순이를 잘 세탁해 딸에게 건네주었다.
"토순이가 돌아왔어. 오늘은 토순이랑 꼭 안고 잘 수 있겠다."
딸은 인형을 꼬옥 안으며 말했다.
"엄마, 토순이가 이제 안 무섭대. 우리가 함께 있어서."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첫째의 사진 속, 어디에나 함께 있는 토순이를 향한 그 무한한 애정도 언젠간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서만큼은 언제나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다시 돌아온 토순아,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