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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하교, 긴 방학

사교육의 온상

by 권선생

사교육 시장은 이미 대한민국 가계 경제의 한 축이 되어 버렸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 사교육 참여율은 80%를 넘어섰고, 월평균 사교육비는 매년 신기록을 경신 중이다. 영어·수학은 기본, 코딩·과학실험·예체능까지 영역은 무한히 확장되고 있다.


문제는 이 거대한 사교육 수요의 상당 부분이 아이들의 학습 욕구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학교들의 '학사 운영'이라는 낡은 틀이 구조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학교생활은 오후 1~2시면 끝난다. 남는 시간은 하루 절반에 달하지만, 학교는 그 시간을 책임지지 않는다. 긴 여름· 겨울방학은 각각 한 달 이상, 짧아도 3주 가까이 이어진다. 이 빈 시간을 메울 수 있는 선택지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맞벌이 가정에서 '학원'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결국 사교육은 단순히 지식 습득을 넘어 돌본의 기능까지 떠맡게 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사교육은 '보호'가 아니라 '경쟁'의 무대가 된다.


'남들 다 하는데 우리만 안 하면 뒤쳐질까 봐.'라는 불안이 가계 지출을 잠식하고, 아이들의 하루는 학교가 아니라 학원 시간표로 굴러간다.


긴 방학은 학습 격차를 폭발적으로 키운다. 경제적 여력이 있는 가정은 방학 동안 해외 어학연수, 영어캠프, 1:1 과외를 붙여 선행학습을 시작한다. 그렇지 못한 가정의 아이들은 TV와 스마트폰과 함께 시간을 때울 수밖에 없다. 8주 후 개학 날이 시작되면, 같은 교실에 앉아있는 아이들의 학습 출발선은 이미 달라져 있다.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해야 하지만, 긴 방학과 시대착오적인 학사 운영은 그 사다리를 오히려 끊고 있다. 이 격차는 초등학교에서 시작해 중·고등학교로 이어지고, 결국은 사회 전체의 불평등 구조를 굳힌다.


사교육 의존은 부모의 시간과 돈을 모두 갉아먹는다. 맞벌이 부부는 퇴근길마다 학원 픽업을 하고, 주말마다 학원 시험과 숙제를 챙긴다. 가계 지출에서 사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주거비와 맞먹거나 능가한다.

(2023년 연합뉴스 보도자료에 따르면, 5 분위 가구의 (상위 20% ) 소득기준 주거비는 53.9%를 차지하는 반면, 사교육비는 63.6%를 차지했다. 또한 고소득가정일 경우, 사교육비를 더 많이 지출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문제는 이 지출이 단기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시작된 사교육은 대학 입시까지 이어지고, 그 압박은 둘째·셋째 출산의 의지마저 꺾는다. 저출산이 단지 양육비 때문이 아니라 사교육비라는 '보이지 않는 세금'에 눌려 발생하는 측면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에는 변하지 않는 학교의 '학사 운영'에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시간표와 방학제도는 1980,90년대 냉·난방 시설도 부족했던 시절의 유산이다. 그때는 여름·겨울방학이 아이들의 휴식과 농번기 노동력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맞벌이 가정이 전체 인구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며, 학부모 세대의 생활 구조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학사 운영 제도'는 바뀌지 않는다. 시대가 변하면 세상이 달라지기 마련인데, 왠지 학교는 그와는 동떨어진 길을 계속 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초등 저학년 수업시간 연장과 돌봄 확대 방안이 논의됐지만, 교원단체의 반발로 무산됐다. 물론 교사의 업무 부담은 현실적인 문제다. 하지만 그것이 학사 개편을 막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행정업무 전담 인력 확충, 탄력근무제, 지역사회 연계 프로그램 같은 대안을 통해 교사와 학부모가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저출산 문제도 풀 수 없다. 그 시작은 초등학교 시간표 개편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긴 방학도 줄이고, 오후 시간을 활용한 체험·예술·쳬육·독서 프로그램을 학교가 제공한다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물리적인 시간이 줄어들면 그만큼, 사교육의 의존도도 줄어들고, 부모는 안심하며 일할 수 있으며, 교육 격차도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더 이상 사교육 대책을 '시장 규제'와 '가격 통제'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제도의 뿌리를 바꿔야 한다. 초등학교를 비롯한 학교의 학사 운영이 개편되지 않는 한, 사교육 과열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피해는 결국 고스란히 우리 다음 세대의 몫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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