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담고 있던 너의 귀
어제저녁, 첫째와 함께 씻던 중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엄마,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엄마, 나 18일에 병원에 가요? 병원 가서 나 호르몬 잘 나오는지 검사하는 거예요?”
(다음 주, 성장호르몬 유발 검사가 예정되어 있다.)
아이의 질문에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와 나눈 적 없는 대화를 아이가 하고 있어서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어른들 사이에서 오갔던 나의 말들이 다시 내 귀에 들려오는 느낌이었다.
그 질문과 표현들은 모두 내가 했던 말들이었다.
남편에게, 병원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아이가 듣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고 했던 말들.
‘아이를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 얘기는 결혼에 만족하며 신혼생활을 즐기지만 아직 2세를 망설이던 지인과 나눴던 이야기 중 하나였다.
그 말들을 아이는 어느 틈엔가 듣고 마음 한쪽에 담아 두었던 것 같다.
키 성장이 더뎌 대형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며 남편과 나눴던 이야기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이 일인 만큼, 무심한 척하면서도 한쪽 귀로는 다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아이 앞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는 이미 다 알고 있었고, 기억하고 있었고,
마치 나와 나눈 대화처럼 자기 언어로 나에게 되돌려주고 있었다.
그제야 아이를 다시 보게 되었다.
늘 아직 어리다 생각하며 반쯤 투명인간처럼 대했지만, 아이는 이미 말의 의미를 저장하고, 해석하고,
자기 상황에 비춰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많이 컸다는 생각에 대견하기도 했고, 이제는 말을 조금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 한편이 서늘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게 쉽지는 않지만, 삶에서 꽤 의미 있는 일이야. 예전에 채원이 아기 백 명 낳는다고 하지 않았어?”
“아니요. 이제는 결혼해서 아기 안 낳고 둘이 살래요.”
“그래도 하나는 낳아봐. 그건 꽤 괜찮은 경험이야.”
“그럼… 한 명만 낳을래요.”
나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아이의 몸을 돌보는 일만이 아니라, 아이의 생각 속에 어떤 어른이 살게 될지를 책임지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어른은 대부분 내가 아이가 듣지 않을 거라 믿으며 했던 말들로 만들어진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