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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 Oct 06. 2020

48시간의 기다림과 10분간의 만남

엄마가 쓰러졌다는 이모의 전화를 받았을 때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몇 시간 동안 멈추질 않았다. 오후 다섯 시에 처음 전화를 받았고, 밤 열 시까지 오고 간 여러 번의 전화 끝에 최종적으로 수술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오늘 밤에 돌아가실 수도 있어요." 


확인을 하는 의사의 목소리는 가벼웠다. 식물인간으로 사는 건 엄마가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응급실에 있던 모든 가족들이 알고 있었다. 한국과 여섯 시간 넘게 떨어져 있던 나는 자가격리 및 남편의 한국 비자 발행 관련하여 대사관과 계속 울면서 통화를 했다. 토론토에 있는 동생에게도 연락을 취했다. 


새벽 한 시에 홀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올해 3월에 한국에 와서 엄마의 환갑을 축하해주려 했었는데, 결국 반년이 훨씬 넘도록 엄마를 보지 못했다. 그동안의 모든 일들이 먼지 한 톨보다도 하찮게 느껴졌고 후회와 죄책감에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코로나 검사를 하고 오랜만에 온 집에는 엄마의 온기가 가득했고 언제나처럼 깨끗했다. 집안 곳곳 엄마의 온기와 흔적에 나는 무너졌다. 어제 아침 이곳에서 여느 때처럼 출근 준비를 하는 엄마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내가 하루만 일찍 집에 왔어도 엄마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의미 없는 후회가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사계절 옷이 다 들어가고도 빈 공간이 훨씬 많은 엄마방의 붙박이장, 침대 위 가지런히 놓아두신 잠옷, 가짓수가 별로 없어 항상 깔끔했던 엄마의 화장대, 늦은 밤 홀로 앉아 사용하셨을 태블릿 PC, 세탁기 속 다 돌아간 수건들, 3월에 주문하고 8월 말에 도착한 소파, 그 소파 위에서 여름밤을 보내셨다는 엄마,.. 엄마의 흔적에 둘러싸인 채로 엄마가 항상 따뜻하게 켜놓고 주무시던 돌침대를 어루만지며 목놓아 울었다. 


코로나 때문에 면회가 되지 않아 엄마는 중환자실에서 혼자 하룻밤을 보내셨다. 엄마가 입원해있는 병원과 지역 보건소에서 코로나 검사가 음성이 나오고 1인실에 자리가 난다면 병원 업무시간이 끝난 후 엄마를 10분간 볼 수 있게 허락해 주겠다고 하였다. 이튿날 오후 2시가 다 되도록 1인실 자리가 나지 않다가 오후 3시즘에 특실에 자리가 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어제 정신없이 써 내려간 편지를 챙기고, 샤워도 하고, 엄마를 만날 채비를 서둘렀다. 48시간의 기다림 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방역복을 입고 안내를 따라 들어간 병실에 그토록 그리웠던 엄마가 있었다. 


장갑을 낀 손으로 곤히 잠들어있는 엄마의 머리카락을 쓸고, 따뜻한 손을 잡고, 늦어서 미안하다고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엄마를 안고 싶었는데 엄마의 얼굴과 몸에 연결된 튜브들이 너무 많아서 안을 수가 없었다. 엄마의 오른손은 주삿바늘 때문에 반이 멍들어 있었고 양손, 발 모두 많이 부어있었다. 이미 소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풀린 동공 때문에 눈에는 스티커가 붙여져 있었다.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는 엄마를 만지고, 편지를 읽어주고,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행복했다고 말했다. 남편이 편지를 쓰는 것을 제안하지 않았다면 나는 우느라 그 소중한 10분을 그냥 보냈을 것이다. 31년 동안 나와 동생을 위해 살았던 엄마와 그렇게 나는 10분간 마지막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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