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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니샘 May 03. 2020

인이불발의 상태

공부론

때론 흐릿한 상태가 더 나을 때가 있다. 그  선명한 모습이 드러나기 전의 긴장과 위태로움 때문이지 않을까.


김영민은 이를 인이불발이란 말로 표현했다. 당기되 쏘지 않는 것이다. 그는 공부란 아는 것을 버텨내며 그 온축의 숙성을 기다리는 것이고, 일상과 비상, 체계와 개인을 동시에 지양하며 그 위태로운 사잇길을 걷는 것이라 했다.


이백은 술 한말에 시를 백편 지었다고 하지만 사실 그 시들은 지어지기 직전에 가장 아름다웠을 것이다. 익으면 떨어지듯, 글이나 작품 또한 완성된 후는 이미 자기 것이 아닌 것이다.


공부란 그런 것이다. 묵으면 떠나보내야 한다. 내 것 인양 고집할수록 점점 더 곰팡이내 나는 법이다.  신영복 교수는 아는 것에 대해 경계하라고 했다. 문사철文史哲로 대변되는 공부가 생각을 고정시키고 새로운 상상력을 막는다는 것이다. 대신 자유로운 상상을 자극하는 시서화나 음악에 주목하라고 했다.


베토벤의 음악은 자유로운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는 평생 자신의 음악에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 단지 작품 번호만으로 나타냈다.  후세 사람들이 작품 이름을 붙였는데 이는 다른 예술과의 연관성과 관객을 의식한 낭만주의 시대의 영향이라고 본다. 아무튼 베토벤의 의도와는 무관하다. 그의 마지막 교향곡 9번을 들으면 시대를 넘는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아마도 생의 밑바닥을 경험하고 지은 그야말로 인생의 절망을 딛고 작곡한 음악이기 때문이리라.


‘스토너’란 소설에도 흥미가 간다. 1965년 발표된 이후 오랜 시간 잊어졌다가 최근 유럽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언뜻 보면 초라한 인생 실패담에 불과하지만 그가 사랑한 문학이 인생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때론 무의미하고 쓸데없는 것 같지만 공부란 그에게 있어 삶이고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존재의 이유였을 것이다.


문학(예술)에는 실패가 없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왜 공부를 멈추지 말아야 하는지. 그리고 그 공부란 어떠해야 하는지. 또 무엇을 의미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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