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은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소통은 기본적으로 학생과의 관계에서 출발한다.
좋은 관계든 나쁜 관계든 그러한 관계가 이루어진 데는 분명한 이유가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아이와 관계를 잘 맺어졌다면 그 계기와 과정이 어떠했는지, 관계가 나빠졌다면 그 원인과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교사는 학생들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소통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할까? 아이들이 열정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교사는 열정을 키워주고 싶어 할 것이고, 꿈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교사는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교사가 바라는 소통이 이루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줄 것이 있어야 한다. 교사에게 꿈이 없는데 어떻게 아이들에게 꿈을 주는 교사가 될 수 있겠는가? 아이들이 너무 무기력해서 힘들다고 말한다면 이는 정말 그 아이의 문제일까? 아니면 그런 아이들을 잘 다루지 못하는 나의 공포가 문제일까? 이를 정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만일 자신의 문제로 인한 것이라면 공연히 아이들에게 상처 주는 일만큼은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흔히 하는 푸념 중 하나가 “예전 아이들은 안 그랬는데, 요즘 아이들이 놀 줄을 몰라!”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이 말을 잘 살펴보면 말 속에 기대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이 잘 놀지 못한다는 말에는 아이들이 잘 놀기를 바라는 기대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로 소진하는 것은 참으로 불필요한 일이다. 자신이 기대하는 실체를 이해하면 쓸데없이 화를 낼 필요도, 상처를 받을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저 어떻게 하면 아이를 도울 수 있는지 방법을 찾아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인정받는 교사가 되려면 우선 요즘 아이들이 어떤지를 이해해야 하는 것이 순서다. 어떻게 해야 인정받을 수 있는지 연구해야 한다. 입버릇처럼 말하던 “옛날에는 이랬는데, 혹은 요즘 애들은 왜 이래?”라는 말과는 이별해야 한다. 과거와는 전혀 달라진 세상을 살고 있으면서 여전히 예전에 경험했던 학교의 관계 방식에만 얽매어 현재에도 그렇게 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한 기대가 이루어질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보다는 요즘 아이들이 느끼고 행동하는 방식에서 바람직한 관계를 만드는 법을 도와주는 교사가 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그래야 서로 상처를 주고받지 않으면서 아이들과 즐겁게 소통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학교생활이 행복해지는 것은 의외로 간단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