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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니샘 Oct 25. 2019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꿈꾸며

세상에는 무어라고 꼭 집어 말하거나 드러내 보이지 않더라고 그 집단의 성원들 모두가 ‘있는 것’으로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 가령 종교에서 ‘신’의 존재가 그렇듯이 말이다. 


특정지역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그 무엇은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와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분단이나 한국전쟁, 그리고 군사독재 하에서 북한을 적대시하는 교육을 받아서인지 무엇이든지 북한에서 벌인 일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명확한 증거가 없어도 대체로 그렇게 믿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차별하고 억압하면서도 그게 왜 차별이고 억압인지 모른다. 억압의 가장 큰 기준은 기존의 관념, 즉 고정관념이다. 어떤 사람이나 사건을 고정관념 속에 집어 넣게 되면 그것은 차별과 억압을 행하는 것이다. 우리가 절대적 규범이라 여기는 도덕과 법도 사실 차별과 억압을 정당화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판사는 법에 의해 심판하지만 그가 정의로운 판사라면 그는 어떤 사건을 접할 때 언제나 처음인 것처럼 대해야 한다. 만약 기존의 케이스에 사건을 대입시킬 때 그것은 기존의 테두리에 가두는 것에 불과하기에 그는 정의로운 판결을 할 수 없다. 정의는 언제나 그 무엇 너머에 있다. 


자신안의 고정관념을 끄집어 내어 해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새롭게 도래할 진정한 민주주의는 얼굴 하나하나의 가능성이 실현된 민주주의다. 한 개인이 다른 개인을 존중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꿈꾸는 것이다. 그런 민주주의는 도래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곳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고 그것을 멈춰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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