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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니샘 Oct 31. 2019

글쓰기의 유희

나는 내가 쓰는 글이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가 있다.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오로지 읽는 사람의 몫이다. 내가 글을 쓰는 순간 나는 없어지고 나를 읽는 사람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의미하던 그것은 이미 내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쓰기를 두려워한다. 대신 읽는 것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낸다. 읽는다는 것도 관계 속에서 성립하기 때문에 아무튼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긴 하다. 


우리는 쓰기와 읽기를 통해 세상을 이해한다. 먼 곳에서 눈이 온다는 소식을 읽는 순간 나는 눈이 오는 그곳을 함께 상상하고, 영화를 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갑자기 영화가 보고 싶어진다. 그렇게 우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아는 것..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글쓰기의 즐거움이 있다.  


세상의 원리가 모두 그렇다. 내가 존재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내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의식하지 않으면 나는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내가 살아있음은 타자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만약 내가 죽어서 유령이 된다면 그것을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영화 <식스센스>에서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내가 있음을 알지 못하면 나는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유령인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없는 사람' 취급 당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그 사람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왕따를 제일 두려워하는 것도 같은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은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숨을 쉬고 있는 동안은 나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물론 어떻게 읽히든 상관하지 않겠지만 누가 읽어도 괜찮은 그런 글을 쓰도록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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