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준(가명)이는 1교시가 끝나갈 쯤 교실 문을 열고 어슬렁거리며 들어오는 학생이었다.
등교 시간에 맞춰 학교에 오도록 “알람을 맞춰 놓고 일어나 보세요.”라고 조언도 해주었지만, 여기에 대한 현준이의 답은 늘 똑같았다. “귀찮아요.” 사실 이 말은 현준이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었다.
친구들과 모둠 활동을 할 때도 소위 ‘멍’을 때리며 마냥 앉아 있거나, 책상에 엎드려 있기 일쑤였다. 친구들이 맡은 역할을 재촉하면 “건드리지 마. 귀찮아.” 만사가 다 귀찮다고 하는 현준이가 그래도 학교에 꼬박꼬박 나오는 게 고맙고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위로가 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텃밭을 만들 기회가 있었다. 운동장 뒤편에 작은 우리 반 텃밭이 생긴 것이다. 반 아이들과 텃밭 이름도 만들고 소박하지만 팻말도 만들었다.
3월 말쯤 텃밭 옆 작은 정자에 모였다. 텃밭을 갈아엎고 밑거름을 하자 그 냄새가 대단했다. 아이들이 코를 쥐고 난리였다. 어수선한 아이들에게 “1년 동안 함께 농사지을 우리 반 텃밭이에요.”라고 말해주며, 팻말에 이름을 써 붙이고 씨감자를 함께 심기 시작했다. “감자는 뿌리 식물이고 씨감자는 10센티 정도 깊이로 심어야 합니다. 칼로 자른 부분은 병충해 예방을 위해 재를 묻힙니다.” 한참 열심히 설명을 하는데 “아~귀찮게 이런 걸 왜 해요? 그냥 마트에서 사면 돼지?” 아니나 다를까 그 말의 주인은 현준이었다. 그날도 대충 시늉만 하더니 어느새 텃밭 옆 정자에 엎드려 있었다.
씨감자를 다 심고 나서 텃밭 물 당번을 정했는데, 현준이는 친구 손에 끌려 억지로 어쩌다 한 번 물을 줄 때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 물 당번을 하지 않는다는 친구들의 원성과 항의가 자자했다. 4월이 되어 본격적으로 씨도 뿌리고 상추, 부추, 고추, 토마토 등 각종 모종을 심었다. 봄비가 오고 싹이 올라와 부지런히 솎아 주어야 했다. 솎는 방법을 설명할 때도 현준이는 기껏 심고 왜 뽑아내느냐고 투덜대며 하는 척 흉내만 내다가 정자로 갔다.
나는 아이들에게 뽑아 낸 새싹은 버리지 않고 참기름과 간장양념에 무쳐 먹거나 된장국을 끓어 먹는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미리 조금 준비해둔 밥으로 새싹 비빔밥을 만들었다. 점심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한 숟갈씩만 맛을 볼 정도의 적은 양이었다. 맛을 본 학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아이들의 반응에 놀란 듯 현준이도 관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이때 “현준아, 너도 맛봐, 진짜 맛있어!”라는 친구들의 권유에 못이기는 척 한 숟갈 받아먹었다. 맛을 묻는 질문에 “음, 괜찬...”하며 얼버무리는 현준이에게 “괜찮은 게 아니라 맛있지!”라며 옆에 있던 친구가 핀잔을 주자 마음을 들킨 듯 씩 웃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새싹비빔밥을 먹던 그 날 현준이의 말이 “귀찮다.”에서 “괜찮다.”로 바뀐 날이었다. 매일 귀찮다는 말만 하며 무기력하던 현준이의 다른 말과 표정을 처음 본 날이었다. 현준이의 말과 행동이 변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었던 건 고구마를 심을 때였다. 고구마를 심기 위해 고구마 줄기 모종을 구해다 시들지 않게 교실 주전자에 담가 두었는데, 이것을 보고 아이들끼리 논쟁이 벌어졌다. “고구마는 줄기가 변한 거잖아. 감자는 뿌리 식물이고” 그런데 현준이도 아이들 사이 논쟁에 적극적으로 끼어들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현준이가 늦지 않게 등교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인 것 같다.
텃밭의 채소들이 성장할수록 현준이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출근해서 텃밭을 둘러보러 가니 텃밭 옆 정자에 현준이가 와 있었다. “현준이 일찍 왔네?”라는 질문에 현준이는 물을 주려고 왔다고 답했다. 물주기 귀찮지 않냐는 말에 놀랍게도 현준이는 재미있다고 말했다. 뭐가 재미있냐고 하자 현준이는 자신이 직접 심고 물주고 가꾸면서 식물을 대하는 태도가 처음과 많이 달라 보였다. 머리로 아는 것과 매일 생활 속에서 직접 경험하는 동안 말이 바뀌고 행동이 달라진 것이다.
감자를 수확하는 날에는 아이들에게 감자분과 감자를 삶을 때 더 맛있게 찌는 방법을 설명해주며, 다시마와 함께 감자를 찜통에 담기 시작했다. 직접 수확한 감자의 크기와 모양의 다양함에 놀라는 아이들이 많았다. “야, 이렇게 쬐그만 감자도 있어.” “감자가 눈사람같이 생겼다.” “대왕 감자 납시오.” 마트에서 파는 비슷한 모양과 크기로 선별된 감자들만 보았던 아이들이 지식과 실제의 격차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 아이들의 목소리 중에 현준이의 목소리가 가장 크게 들렸다.
감자를 이용해서 할 수 있는 요리를 발표하는 시간에 닭볶음탕을 발표한 현준이 모둠에서 현준이는 기대 이상으로 활약했다. “닭고기보다 감자의 맛을 알아야 진정한 미식가.”라고 하여 아이들의 환호성을 받았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아이들과 고구마 밭부터 정리했다. 길게 뻗은 고구마 줄기를 자르며, 고구마 줄기들을 들어서 뒤집어야 고구마가 크게 잘 자란다고 설명해주었다. 그래도 몇 몇 아이들이 “왜 꼭 이렇게 해야 하지?”하며 이해하지 못하자, 놀랍게 현준이가 나섰다. 줄기에서 또 뿌리가 나오고 또 뿌리가 나오면서 작은 고구마든 큰 고구마든 수확이 안 된다는 줄기식물의 특성을 아이들에게 직접 설명해준 것이다.
9월초에 채소밭을 정리하고 김장 배추, 무, 갓, 파 등을 심었다. 배추밭에 물주는 일이 가을날 아침을 시작하는 가장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배추가 성장할수록 현준이의 식물에 대한 지식은 더욱 깊어졌다. 이제 아이들도 모르는 게 있으면 현준이한테 물어볼 정도였다. 배추벌레가 생기자 아이들이 “죽이면 안 되나?”라고 하자 현준이가 아이들에게 나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죽일 수 없다고 했다. 죽이는 대신 목초액을 뿌려 쫓자고 제안하면서 텃밭 한쪽에 배추벌레를 모아 나비가 되게 해보고 싶다고 한 것도 현준이의 의견이었다.
텃밭에서 농사를 지으며 보낸 그 해 일 년 우리는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무엇보다 “귀찮아.”를 입에 달고 살던 무기력했던 현준이의 변화가 놀라웠다. 지식위주로 결과와 효율성만 따진다면 관념과 욕망의 노예가 되고 그 외의 것은 다 귀찮아진다. 인간마저도 귀한 존재가 아닌 귀찮은 존재일 뿐인 것이다. 농사일에서 직접 경험하는 소박한 생활이 얼마나 행복한지, 협력 속에 자기 노력을 확인하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함께 수확하고 나누는 진정한 공동체의 환희를 우리 반 텃밭을 통해 맛볼 수 있었다.
요즘 학업이나 생활에서 “자기 효능감”을 중요하게 여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기효능감이 높은 학생일수록 목표 달성을 위한 학습 전략을 세워 스스로 꾸준히 노력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자기 효능감이 높은 학생일수록 실패와 무관하게 어려운 도전 과제에 용기를 낸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자기 효능감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바로 일상에서의 구체적이고 소소한 성공 경험들이 모여 형성된다고 한다. 이와 함께 건강한 신체 활동과 긍정 언어가 자기 효능감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즉 소소하지만 성공한 경험들이 축적되는 과정에서 잠재력이 발휘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는 공동체의 협력 활동은 필수가 된다. 서로가 서로를 경쟁해야 하는 ‘귀찮은 존재’가 아닌 각자 다양한 재능과 잠재력을 가진 ‘귀한 존재’로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현준이에게 왜 배추벌레를 모으자고 했는지 물었다. 그러자 현준이는 이렇게 말했다. “기영이가 배추벌레 없었으면 좋겠다고 해서요. 배추벌레 쫓기 귀찮다고. 배추벌레가 필요하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작은 배추벌레도 나비가 되어 이 세상에 자기 역할을 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이다. 배추벌레가 배추흰나비가 되어 모기장을 걷어내는 날 현준이와 아이들은 정자에서 배추를 배추벌레와 나누어 먹어야 한다는 공생과 나눔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현준이는 나비가 없을 때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얘기하며 인간은 배추 몇 포기 안 먹고 벌레에게 양보해도 되지 않느냐고 배추벌레의 입장을 대변하며 이렇게 말했다.
“자기 입장에서 귀찮고 쓸모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세상의 모든 것은 귀해요.” 생각해보니 교사인 나를 바꾼 말은 그 해 현준이가 한 “귀찮아요.”와 “귀해요”였다. 사실 텃밭을 한다고 할 때 교육적으로 필요하다니까 관념적으로 좋다는 생각이었다. 실제로 때론 잠깐씩 현준이처럼 “귀찮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자본과 물질 만능의 경쟁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잃지 않고 꿋꿋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힘은 소소하고 귀찮은 일을 가장 ‘귀한 일’로 도전할 때 생기는 것이다.
글 출처 : 교사의 말, 이용환, 정애순저,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