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 수호믈린스키는 우크라이나의 작은 마을에서 25년간이나 자신의 교육이론을 실천에 옮긴 교육자이자 교육사상가이다. 그의 도덕적이고 헌신적인 삶은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나는 그의 삶을 넘어서는 그의 교육사상에 주목하고자 한다.
수호믈린스키는 도덕적 가치가 모든 전인적 발달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학교는 한 학생에게 평생직업과 학습, 사회활동을 위한 발판을 마련해주어야 하며, 이 목표를 이루려면 반드시 도덕적 가치, 일에 대한 애정, 지식에 대한 목마름을 심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학교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에 대한 책임의식과 생산적인 노동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생각한 가장 이상적인 인간은 친절한 사람이었다. 타인에 대한 감수성, 즉 인류애가 미래의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깊은 관심은 모든 개인과 공동체를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하고, 도덕적 아름다움과 지성, 근면함을 지니게 할 것이다. 이는 우리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인간’을 존중하며 사랑하는 능력이다.
수호믈린스키는 도덕적 습관을 도덕의식보다 우선시했다. 자신이 심고 기른 과일나무의 첫 열매를 따서 어머니에게 갖다 주었을 때 아이는 자신의 노력이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기쁨을 선사했다는 강렬한 만족감을 느낀다. 이렇게 누적된 경험들은 아이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러한 행동들이 건강한 신체, 긍정적 정서와 함께 통합될 때 마침내 인격의 기초가 형성될 것이다. 한 아이에게 ‘양심’이라는 긍정적 도덕의식이 생기는 것이다.
더불어 수호믈린스키는 지식교육의 주된 목적이 주어진 양의 지식을 습득하는데 있지 않고 삶의 철학을 발전시켜나가는 데 있다고 보았다. 수업과정의 주요과제의 하나는 학생들이 습득한 지식에 냉담하거나 무관심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배운 지식이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느끼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이다.
그의 읽기와 쓰기 수업을 들여다보면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자연의 ‘살아 있는 책’ 읽기에 집중했다. 그의 학교에 입학하는 첫 해 동안 아이들은 교실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정규시간표도 없었다. 어느 날 아침은 포도덩굴 아래에서 모였고, 또 어떤 날 저녁에는 연못가에서 일몰을 감상하기도 했다. 장소가 어디든 빼놓지 않은 것은 바로 자연현상을 관찰하고 본 것을 이야기도 만드는 일이었다. 이는 아이들에게 감각의 세계를 탐험하고, 자신의 지각능력을 이해하려는 강렬한 흥미에 맞춰 배움을 시작해야 한다는 그의 믿음이 바탕이 된 것이었다.
수호믈린스키는 아이들이 감각에 의해 전달된 정서적 경험을 통해 어휘에 대한 흥미가 높아질 때까지 읽기와 쓰기를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만약 아이가 어휘에 흥미를 갖기 전에 읽기와 쓰기를 시작한다면 이는 아이들 중노동으로 내모는 일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읽기와 쓰기 수업은 아이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놀이와 연결될 때 가장 효과적이다.
그는 자연을 ‘살아있는 생각의 원천’이라고 불렀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야외학습을 ‘어휘의 원천으로 가는 소풍’이라고 불렀다. 자연은 아이들의 지적 활동이 일어나는 배경이었고 체험과 사고의 바탕이 되는 튼튼한 토대였다. 지적발달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려움들 역시 자연 속에서 치유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우리에게 조언한다.
“만약 아이에게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생긴다면, 그리고 아이의 사고가 새장 속에 갇힌 새처럼 절망적인 날개 짓을 한다면 여러분 스스로 신중하게 살펴보세요. 아이의 샘이 말라붙었는지? 영원한 사고의 샘물이자 생명의 원천인 자연으로부터 단절되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