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서가산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니샘 Jun 08. 2022

공공성이란 무엇인가

조한상 책세상 2010


  공공성에 대해 우리말사전에서는 “어떤 사물, 기관 등이 널리 일반사회 전반에 이해관계나 영향을 미치는 성격, 성질” 또는 “개인이나 단체가 아닌 일반사회 구성원 전체에 두루 관련되는 성질”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전적 개념 정의로는 공공성의 의미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공공성이라는 말은 일반 시민에서부터 학자들까지 널리 사용하고 있어 자칫하면 개념의 “인플레이션”에 빠질 수도 있다. 민주주의나 인권이란 용어처럼 진지한 고민 없이 사용하다보면 종종 반민주주의, 반인권적 상황에서도 사용될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실효성 있는 개념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공공성이 가지는 여러 의미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공공성의 개념을 명확히 하는데 도움을 준다. 


  공공성은 독일의 헌법학자 루돌프 스멘트의 연구가 좋은 참고가 되는데, 그는 공공성을 크게 다섯 가지 의미 요소가 포함된 것으로 보았다. 

첫째, 공공성은 공공연함, 즉 일반적 이익의 영역에 대한 접근 가능성을 의미한다. 

둘째, 공공성은 공개적 토론, 즉 공개절차에서 진리, 결백 및 정의가 획득된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셋째, 공공성은 단지 수단이 아닌 자체 목적으로서 고양된 의미를 내포한다.

넷째, 공공성은 집단적 생활 영역의 주체, 즉 인민(people)을 내포한다. 

다섯째, 공공성은 현대 국가의 가장 고유한 과제의 본질을 의미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공공성이라는 개념에 다수의 사회 구성원에 미치는 영향, 만인의 필수 생활 조건, 공공의 관심사, 만인에게 드러남, 세대를 넘어서는 영속성 등의 의미가 포함되어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또 공공성은 공중의 시선에 대한 개방성, 의사 결정과정의 민주성, 기본적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모든 사회 구성원의 평등한 접근성, 비시장적 원리에 따른 자원배분의 강화, 국민적 자산과 사회경제적 의제에 대한 국민적 통제라는 함의를 가지고 있다는 설명도 제기된다. 이들 연구는 역사적으로 또는 경험적으로 공공성 개념에 혼입되어 있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거의 모든 의미 요소를 망라해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이는 지나치게 복잡한 면이 있으며 공공성의 의미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공공성의 의미를 보다 간명한 형태로 정리하는 것이 필요한데 공공성의 다양한 의미를 이른바 공공성의 3요소라는 공식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의미 요소는 시민 people이라고 할 수 있다. publicus라는 개념이 원래 populus에서 나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공성의 첫 번째 의미 요소가 인민이 되어야 함을 쉽게 알 수 있다. 

두 번째 의미 요소는 공공체의 복리, 줄여서 공공복리 salus publica이다. 

세 번째 의미 요소는 공개성 publizitat이다. 


  공공성의 첫 번째 의미요소인 시민people은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자유민을 의미하는데, 이 자유민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그 범위와 성격이 변해 왔다. 따라서 공공성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민 people의 의미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고찰이 뒤따라야 한다. 시민 people은 때로는 국민 등으로 그 이름과 성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두 번째 요인인 공공복리에 대해 살펴보면, 문자 그대로 공공복리는 특정 개인이 아닌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복리, 특수한 복리가 아닌 일반적 복리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복리는 금전적, 물질적 이익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공공복리라는 개념에는 구체적 의미가 생략된 매우 추상적 의미로 사용될 때 그 위험성이 나타나기도 한다. 과거 전체주의 또는 권위주의 정권들이 공공복리라는 말을 앞세워 시민을 억압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나치는 “공익은 사익보다 앞선다”라는 말을 앞세워 알 수 없는 차원의 공공복리를 강요했다. 우리의 과거 권위주의 정권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러한 공공복리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에 개념을 깊이 이해하기에 앞서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미 우리 헌법에서 도 사용하고 있고(헌법 제37조 2항) 이를 가급적 명확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피한 과제이다. 공공복리는 사적 이익과 종종 충돌한다. 따라서 공공복리의 실체는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수많은 특정 이익들이 서로 합의의 과정을 거쳐 확인될 뿐이다. 공공복리가 주장되고 합의되며 확인되고 실현되는 전체과정을 “공공복리의 구체화 과정”이라고 말한다. 

  공공성의 세 번째 의미 요소인 공개성은 이러한 공공복리의 구체화 과정을 설명하는데 유효하다. 공공복리가 누구에게나 이익이 되는지 아니면 특정인에게 이익인지를 판단하려면 공개성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공개성만으로 공공복리가 보장될 수는 없다. 예컨대 소수의 선동이나 강요에 의해 공공복리의 구체화가 이루어진다면 공개성만으로 공공복리가 보장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개성의 관념에 일정한 요건이 부과된다. 즉 사람들은 공개된 정보를 바탕으로 공개된 절차에서 자유롭게 의사를 교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과정에는 참여하는 사람들의 지위에 있어 자유와 평등이 전제되어야 한다. 요컨대 자유롭고 평등한 사람들의 ‘의사소통’이라는 요건이 공개성의 의미에 부가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개적 의사소통이 아닌 시장과 경제활동 중심으로 이해하는 이론들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들은 특정한 이익이 공공복리로 구체화되는 과정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공기업의 민영화 같이 공공서비스 영역에 시장원리를 도입하는 것이 진정한 공공복리 실현에 유리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각각 보유한 자본에 따라 제한적이고 차등적인 자격을 갖는다. 이러한 시장에서 공공복리가 실현된다고 말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선의를 기대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시장은 공공복리와 모순적 존재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공공성의 기본적 의미 요소인 세 가지 요소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우월관계나 선후관계에 있는 것도 아니다. 각각의 요소들은 서로가 서로를 순환적으로 규정짓는다고 할 수 있다. 즉 시민 people은 공개적인 의사소통 과정에 참여하는 자유롭고 평등한 사람들이며, 공공복리가 귀속되는 주체이다. 공공복리는 구성원인 시민에게 구체적으로 귀속되는 이익이며, 공개적인 의사소통 과정을 통해 확인되는 이익이다. 공개성 및 의사소통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시민이 참여하는 과정이며, 공공복리를 구체화하는 과정이다. 


  결국 공공성은 단순히 공공복리라는 과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추구하는 주체, 추구하는 방법에 대한 기본적 사항까지 내포하고 있는 개념의 복합체라고 말 할 수 있다. 

  공공성을 다시 정리하면 ”공공성은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이, 공개적인 의사소통의 과정을 통하여, 공공복리를 추구하는 속성이다.“ 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