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랏, 여행자가 걱정을 싸 들고 떠나는 법

15일간의 여행기

by 화니샘


겨울이 오면 인간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눈을 즐기는 사람과, 눈을 피해 남쪽으로 도망가려는 사람. 나는 언제나 후자였고, 올해도 어김없이 따뜻한 곳을 찾아 지도를 펼쳤다. 다만 지도 위의 모든 따뜻한 나라에는 언제나 ‘우기’, ‘치안’, ‘물가’ 같은 불길한 단어들이 작게 적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고심 끝에 선택한 곳이 달랏이었다. 베트남의 고원 도시. 안전하다는 평판, 적당한 날씨, 그리고 결정적으로 지갑이 크게 반대하지 않는 물가. 여행지는 결국 감성과 현실의 타협으로 정해진다.


비엣젯 945편은 12월 26일 새벽, 나를 달랏 공항에 내려놓았다. 시계는 오전 5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공항은 마치 아직 하루를 시작할 마음의 준비가 안 된 듯 조용했다. 먼동이 트는 풍경을 보며 “그래, 나도 아직 완전히 깨어나진 않았어”라고 공항과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미리 예약해 둔 라도택시는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나타났고, 155,000동이라는 요금은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8,600원쯤이었다. 해외에서 이런 계산을 할 때 괜히 뿌듯해진다. 마치 돈을 아꼈다는 사실 자체가 여행의 성과인 양 말이다.

숙소는 Mooka’s Home. 이름부터 이미 “여기서 오래 살아도 될 것 같지 않나요?”라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체크인 전이라 짐만 맡기고 나왔는데, 오후 1시 30분이라는 체크인 시간은 여행자의 체력을 시험하는 잔인한 숫자였다.

아침은 La Viet Cafe에서 해결했다. 창고를 개조한 듯한 공간은 널찍했고, 커피와 음식은 “아, 베트남에 왔구나” 하는 안도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여행 첫날 아침이 성공하면 하루 전체가 성공한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그건 대체로 착각이지만.

달랏의 중심에는 커다란 인공 호수가 있다. 도시의 심장 같은 존재다. 햇살은 생각보다 따가웠고, 순간적으로 Grab을 부를까 고민했지만 “여행자는 걸어야 한다”는 별 근거 없는 신념에 따라 걷기로 했다. 결국 호수 근처 벤치에 앉아 한 시간쯤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여행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일정이다.


돌아올 때는 신념이 급격히 약해져 Grab을 탔다.

숙소에 체크인해 샤워를 하고 나니, 몸이 하루 종일 참고 있던 피로를 한꺼번에 풀어놓았다. 낮잠은 깊었고, 깨어났을 때 창밖은 이미 어둑해지고 있었다. 여행지의 저녁은 언제나 갑작스럽다.

저녁은 우연히 발견한 채식 샤브샤브집에서 먹었다. 문제는 계산할 때 발생했다.

“카드는 안 됩니다.”

이 문장은 해외여행에서 가장 순수한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환전을 하지 못한 나는 결국 달러 15불을 건네며 내일 정산하겠다는, 다소 즉흥적인 국제적 신뢰 관계를 형성했다. 음식값은 340,000동이었다.


달랏의 중앙에 위치한 야시장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인파 속을 헤엄치듯 걷다 GO Market에서 물과 음료를 사고, 다시 Grab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비용은 39,000동. 나는 이미 오늘 하루의 교통비를 세세히 기억하고 있었고, 그 사실이 스스로도 조금 우스웠다.

숙소에서 맥주 두 병을 사 방으로 들어왔다. 룸차지 후 체크아웃 시 정산하는 방식이었다. 이 시스템은 여행자에게 “지금은 그냥 즐기세요”라고 말해주는 듯해 마음에 들었다. 맥주를 마시고 나니, 하루가 제법 괜찮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밤 10시 8분, 기분 좋게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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