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5시 55분. 알람 소리에 눈을 뜨자마자 서둘러 숙소를 나섰다. 6시면 문을 연다는 유명 반깐 맛집을 향해 걷는 길, 거리는 한산했지만 상점들은 이미 활기차게 하루를 준비하고 있었다.
문득 학창 시절 선생님에게서 들었던 "열대 기후 사람들은 먹을 것이 풍부해 게으르다"는 말이 떠올라 혼자 피식 웃음이 났다. 천만의 말씀이다. 눈앞에 펼쳐진 달랏의 아침은 그 어떤 도시보다 부지런했다. 카메라를 들고 거리 풍경을 담으며 걷는 나를 현지인들이 신기하게 쳐다본다.
가게에 도착하니 운 좋게도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반깐 1판(4만 동)과 소이 밀크를 시켰다. 반깐은 흡사 우리의 풀빵과 닮았지만, 속에는 팥 대신 고소한 달걀이 들어있다. 이걸 동그랑땡이 둥둥 떠 있는 감칠맛 나는 국물에 푹 찍어 먹어야 제 맛이 난다. 여기에 달콤하고 따뜻한 소이 밀크를 곁들이니 입안에서 완벽한 앙상블이 펼쳐졌다. 우리가 식사를 마칠 때쯤엔 어느새 현지인들로 가게 안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역시 맛집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모닝커피를 위해 점 찍어둔 '바이시클 업'이 아직 문을 열지 않아 주변을 서성이던 중, 유쾌한 주인장의 부름에 이끌려 근처의 한 카페에 들어섰다. 바이크가 놓인 앤티크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곳이었다.
노천 테이블에 앉아 평화로운 거리 풍경을 감상하고 있으니, 주인장이 직접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나선다. "이쪽 각도가 예술"이라며 열정적으로 셔터를 눌러준 덕분에, 달랏의 분위기가 가득 담긴 인생 사진 한 장을 건졌다. 35,000동짜리 아메리카노와 40,000동짜리 라테의 맛 또한 훌륭했다. 이 평화로움을 친구들과 나누고 싶어 전화를 걸었으나 연결되지 않는다. 아쉽지만 이 고즈넉한 감성은 오롯이 우리만의 몫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잠시 랑팜에 들러 저렴한 가격에 아로마 오일과 아티초크 앰플을 사고, 숙소로 돌아와 짐을 정리했다. 이틀간 정들었던 숙소를 떠나 달랏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팰리스 헤리티지 호텔로 향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을 의미 있게 보내 줄 숙소에 체크인하고 1층 테라스에서 하이티(High Tea) 타임을 가졌다. 눈앞으로 펼쳐지는 호수 뷰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하이티는 화려한 비주얼에 비해 맛은 평범했지만, 구성에 포함된 김밥 덕분에 든든한 점심 대용이 되어주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 무렵, 석양을 즐기기 위해 쑤언흐엉 호수로 향했다. 1시간에 8만 동(2인용) 하는 오리배에 몸을 싣고 호수 한복판으로 나아갔다. 부지런히 발을 저으며 바라보는 노을 진 풍경 속에서, 문득 젊은 시절의 어떤 장면이 데자뷔처럼 스쳐 지나가 가슴이 뭉클해졌다. 호수 위를 수놓은 수많은 오리배 속 사람들도 저마다의 추억과 감상을 싣고 이 아름다운 찰나를 즐기고 있었으리라. 13일 차의 달랏은 그렇게 낭만적인 오렌지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