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니샘 Jul 05. 2019

“교사도 학교 가기 두렵다”에서 행복한 학교로...

함께 행복을 가꾸는 학교 - 혁신학교 성장기

“교사도 학교 가기 두렵다”

이 말은 우리나라 교사들이 겪는 3중고를 가장 압축적으로 잘 표현한 말이다.     


교사는 교실 상황과 학교조직, 그리고 학교 문화 속에서 각각 어려움을 겪는다. 교실 상황을 예로 들면 교사들은 아이들과 관계를 맺는데 예전과 다르게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학교급을 막론하고 점점 심화되고 있는데 교사들이 아무리 애정을 쏟아도 아이들은 건성으로 대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학부모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시험이나 과제, 심지어 아이들 사이의 갈등 등으로 시달림을 받고 있다.  


학교조직 속에서는 공문과 잡무로 일에 쫓겨 정작 중요한 일을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교사는 누가 보더라도 교사로서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해야 할 텐데 교사의 전문성 신장이나 협의 등 필요한 일은 근무시간 이후에나 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가르치는 내용을 평가할 때도 다른 선생님과 보조를 맞춰야 한다면서 안 가르친 것을 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문제는 교사 개인이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수업시간에 널브러져 있거나 시키는 일에 “왜요?” “내가 할 것 아닌데요”라며 아이들은 교사의 말을 피한다. 학생들은 개별 교사를 학교에 대한 총체적 경험 속에서 만난다. 그러니까 교사가 아무리 친근하게 대해도 학교에 대한 강한 선입견-반감-적대감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교사가 그저 맑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열심히 만나는 것만으로는 교육적 관계 형성이 어렵다는 것을 말해준다. 즉 아이들의 마음속에 드리워진 강력한 불신의 장벽... 이것이 구조인 것이다.  


하지만 교사는 아이들과 씨름하고, 학부모들에게 시달려도, 또 관리자에게 비난을 받아도, 사실 마음이 통하는 ‘동료 교사’만 있으면 버틸 수 있다. 힘들고 어찌해야 할지 모를 때 선배교사와 동료 교사를 찾아 도움을 청하고 함께 토론할 수 있다면 교사로서 성장하면서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해 나갈 수 있다.

그것이 교사로서의 발달이다. 그렇게 선배 교사들은 ‘훌륭한 교사’로 커왔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교사문화가 바뀐 것이다.


‘혼자 바쁜 교사’ ‘토론이 사라진 동학년’ ‘교무실의 외로운 섬들’ ‘같은 교사 다른 신분’ ‘무한책임과 무책임으로 나뉜 학교’ ‘꼴통 선배와 범생이 후배 교사’ ‘용감하게 말하는 교사의 실종’ 등 교사가 내부에서 분열되고 고립화가 급속하게 진행된 것이다. ‘침묵’과 ‘무심하게 지내기’가 학교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왜 이런 변화가 생긴 것일까? 그것은 교육적으로 ‘옳다’라고 여겨지던 가치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예의나 공부 등도 이제는 상대적이 되었다. 세대와 이념에 따라 바라보는 가치관도 나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서로에 대해 멀리하게 되고 공동의 논의 또한 점차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런 교사의 분열 속에 통제는 더 강화되었다. neis를 통한 업무, SNS, 메신저를 통한 소통은 대화의 장을 없애는 결과를 가져왔다, 교원평가, 성과급, 초빙교사제 등 교사 길들이기 장치들은 교사들의 협력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교육은 고도의 협력활동이어야 하는데 그것이 불가능하게 되고 결국 자발적으로 관료주의, 종속적 교육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4시 40분만 되면 페르소나가 바뀌어 뮤지컬이나 공연을 보러 다니는 초엘리트 교사들과 컴퓨터도 잘 다루지 못하는 내가 더 후임교사 같다는 중견교사들의 자괴감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관계를 맺고 성장해 갈 수 있을까?

아마도 그 답은 ‘타자성의 수용’ 일 것이다. ‘너와 나의 다름’을 이야기하고 수용하는 것, 평등한 이들의 우정의 배움에 입각한 서로 간의 솔직한 대화가 유일한 열쇠라는 생각이다.


그 희망을 혁신학교 4년의 과정에서 찾았고 이제 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교사라면 누구나 꿈에 그리는 학교가 있다. “수업에만 전념하는 그런 학교”


서울상원초등학교가 혁신학교가 된 계기는 이 말에서 시작되었다. 사실 혁신학교를 추진하는 것은 그리 만만한 과정이 아니다. 혁신한다는 것은 오래된 관행을 깬다는 의미이고, 그것은 곧 익숙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불편함을 시도하는 것이다. 누가 쉽게 그것을 하려고 하겠는가? 더군다나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별로 없고 자발성에 따른 수고로움이 예상되는 것이라면 말이다.      


처음에 서울형혁신학교를 추진한다고 했을 때 교사들은 학교혁신이라는 당위적 측면보다는 새로운 일거리가 생기는 것을 더 두려워했다. 그러잖아도 많은 학교 업무에 혁신학교가 되면 혁신이라는 업무가 더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다들 생각하고 있었다. 그동안에 시도되었던 많은 연구·시범학교들이 새로운 업무로부터 시작되었고 또 그렇게 끝났으니까 혁신학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혁신을 꿈꾸다     

 “혁신학교는 연구시범학교가 아닙니다. 전혀 다른 학교입니다.”
 “무엇이 다르다는 건가요?”
 “업무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업무를 과감하게 없앨 겁니다.
 “그것이 가능합니까?”      


다들 믿기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진정성은 믿음을 낳는 법이다. 선생님들의 혹시나 하는 기대는 혁신학교 운영계획을 함께 세워 가면서 정말이네 하는 믿음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없애거나 줄여야 할 학교 내의 업무를 전교직원의 민주적 토론과정을 거쳐 찾아내고, 이를 대체하는 새로운 학교운영의 대안을 마련해 가는 과정은 이전까지 겪어보지 못한 소통과 참여의 과정이었고 이는 우리가 만들어갈 새로운 학교에 대한 믿음을 쌓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짧은 기간 동안의 실천을 통해 많은 변화를 일구어냈다. 지금 생각하면 그 긍정적 변화가 그렇게 짧은 시간에 이루어졌다는 것에 나도 놀랄 정도다.  업무중심의 학교운영시스템을 수업중심으로 바꾸어내는 한편 불필요한 행사와 업무를 과감하게 줄여 교원업무정상화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그 결과 교사들은 업무 대신 수업과 생활지도에 전념하게 되었고, 당연하지만 이는 수업의 질을 한 단계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수업혁신을 위해 교사연수와 수업공개를 실시하는 한편 학년교사연구회를 조직 운영하면서 자발적인 교사학습공동체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가고 있다. 수업혁신을 위해 블록타임제를 도입하는 한편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고 프로젝트 학습 등 다양한 수업방식을 적용한다. 교육과정 운영에도 변화를 주었다. 수업일수를 조정하고 계절방학을 실시하는 한편, 학생들에게 다양한 체험의 기회와 특기와 재능을 길러주기 위해 텃밭가꾸기와 농촌체험활동, 계절학교와 방과후학교를 활성화하고, 학생동아리활동을 비롯하여 지역의 자원인사를 활용한 여러 가지 특별활동을 실시토록 했다. 학부모들을 교육의 주체로 세우기 위해 학부모대의원회, 학부모아카데미를 비롯한 학부모 참여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고, 이는 학부모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데 값진 역할을 했다.


 혁신의 시작     


혁신학교의 시작은 기존의 불필요한 업무와 관행을 없애는 것에서 출발하였다. 개교기념행사, 수학경시대회, 교내ICT대회, 독서퀴즈대회, 줄넘기인증제, 한민족공동체의식함양대회, 과학의 달 행사, 영어 관련 행사는 학교 전체 행사에서 제외하였고, 급식통장, 한자교본, 그리고 아침방송과 종례, 임원수련회는 없앴다. 운동회, 체육행사도 학년별로 하기로 했다.      

불필요한 것을 없앤 자리에는 자연스럽게 혁신을 위한 다양한 모색과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다양한 활동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자기주도적 학습플래너, 텃밭가꾸기, 동아리활동을 새롭게 도입하기로 했고, 학년연구회와 학부모대의원회를 새로 조직하기로 했다.


학습플래너는 하루의 학습계획을 스스로 기록하게 하여 자기주도적 학습 습관을 기르고, 학습에 대한 성찰을 통해 스스로 발전된 자기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는데 그야말로 선생님이 없어도 스스로 공부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소망에서 시작했다.      


텃밭가꾸기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생태감수성을 기르기 위한 활동으로 학교 내의 자투리땅을 활용하여 만들었는데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 채소를 가지고 우리음식 만들기에 이용하는 등 기대 이상으로 효과가 있었다.       


동아리활동은 자신의 재능을 살리고 건강한 공동체 의식을 기르기 위한 활동으로 계발활동이나 방과후학교 활동과는 별도로 아이들이 5명 이상이면 누구나 조직할 수 있고 학교에서는 일정한 예산을 지원했다. 그 결과 떡만들기, 전래놀이, 수상스키, 방송, 피구, 사진, 댄스, 요가 등 12개 정도의 동아리가 만들어졌다.     


담임교사들을 과감하게 업무분장에서 제외하고 교과전담 교사들도 일부 업무부장 교사를 제외하고는 행정업무를 맡기지 않았다. 행정전담요원을 채용해서 업무전담팀을 구성하고 학습준비물지원실을 운영하는 등 학교의 시스템을 교수․학습 중심으로 개편해 나갔다.     


 혁신학교 이래서 좋다!     

 교직생활 14년의 한 교사는 우리학교의 생활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가끔 ‘이렇게 편해도 되나?’ 라는 생각을 한다. 교직생활 14년 동안 올 해처럼 아이들에게 온전히 몰입하고 학교에서의 모든 시간을 아이들에게 쏟아본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맘이 편안하다. 다른 신경 쓸 일들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첫째, 업무가 없다     

서울상원초등학교는 교사들에게 배정된 업무 분장이라는 것이 없다. 업무는 교감선생님과 교무부장, 혁신부장, 교육협력부장과 행정전담사가 전부 맡아서 한다. 그리고 전산 보조와 도서관 사서, 자료실 보조, 준비물실 보조 등 학교에 배치된 보조사들이 그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특수 분야 일을 맡도록 했다. 굳이 교사들에게 부여된 업무라고 한다면 학년에서 하는 일을 들 수 있겠다. 상원초는 학교 내의 작은 학교인 ‘학년중심(small school)제’를 운영하기 때문에 학년마다 학년장이 있다. 학년 교사들은 학년에서 필요한 역할, 예를 들어 자료, 평가, 독서, 총무 등을 나누어 맡는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대체로 학년이 협력해서 하기 때문에 혼자 처리하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다.   

   

둘째, 종례가 없다

대부분 학교에서는 매주 월요일이면 전 교사가 모여 부서별 업무 관련 이야기를 전달받고 교감, 교장의 지시 내용을 듣는 종례를 운영한다. 상원초의 경우는 업무 분장이 없으니 특별히 업무 관련해서 모일 이유가 없다. 그러니 종례도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대신 월 2회 학교의 중요한 일을 안건으로 제시하여 결정하는 교직원 회의를 갖는다. 안건은 누구나 제안이 가능하고 발언 기회는 고루 갖는다.   

   

셋째 시종이 없다  

초등학교는 1시간을 40분단위로 한다. 그런데 왜 40분인지 누구도 모른다. 초등학교 40분, 중학교 45분, 고등학교 50분이라는 수업 단위는 시간을 정해놓고 일하는 근대적 공장 운영방식을 그대로 학교로 옮겨놓은 것에 불과하다. 개인의 자율성과 개성이 무시된 이런 시간 운영 방식이 창의성과 다양성을 강조하는 오늘날의 학교 교육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상원초에서는 블록타임 등 자유롭게 수업단위를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시종을 알리는 종이 울리지 않는다. 종이 없으면 불편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아이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종이 울리지 않은 것에 대해 질문한 적이 없다.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쉬는 시간에 다른 반이 수업할 수도 있기 때문에 복도에서 조용히 하기 등 생활지도가 자연스럽게 잘 되고 있다.     


넷째, 학부모 동원이 없다

해마다 3월이면 교사들은 학부모회, 어머니회, 녹색어머니회, 명예교사회 등 학부모 단체 구성에 필요한 반별 학부모 숫자를 채우느라 힘들다. 고학년일수록 역할을 맡아 주겠다는 학부모가 없거나 적어서 담임교사들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상원초에서는 학부모의 학교 참여는 자발성에 근거해야 한다는 원칙하에 학부모 단체는 학부모 대의원회로 일원화하고 교통안전, 학습준비, 학습보조, 학교시설관리와 도서관 봉사 등에 필요한 학부모자원인사는 공개적으로 모집하도록 하였다. 반별로 인원을 배당하지 않고 원하는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그 결과 전년도에 비해 더 많은 분야에서 학부모자원인사가 참여했고 학부모단체가 사라진 자리에는 공식적으로 학부모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참여를 이끌 수 있는 학부모대의원회가 구성되게 되었다.       


다섯째, 시험과 시상이 없다

상원초가 경쟁이 아닌 협력하는 행복한 학교를 지향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진 것이 시험과 대회, 그리고 시상이다. 상위학생들만 충족감을 주는 시험과 대회가 학교에서 사라졌고 그러다 보니 당연히 시상도 없어졌다. 무슨 대회나 행사 때문에 수업 시간을 빼거나 조정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상으로 연결되는 대회나 행사가 있으면 담임교사들은 안내부터 진행까지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관행은 상을 인쇄하고 수상을 준비하는 담당교사의 불필요한 수고로움을 빼고서라도 수업 연구로 향할 교사들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며 아이들에게는 위화감과 불필요한 경쟁심을 부추기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혁신학교, 이렇게 변화되고 있다     

학교의 불필요한 업무와 관행적인 행사들이 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수업협의가 많아졌고 결과적으로 수업의 변화가 찾아왔다. 그 결과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신뢰와 만족도가 크게 높아졌다.      


아이들은 교과서 공부가 아니라 체험위주의 생생한 교육에 대해 매우 긍정적이다.   

“예전에는 시험 위주로만 공부하는 것이라서 지루하고 힘들었는데 혁신학교가 되고나서부터는 공부가 재미있어요.      


우리학교가 혁신학교가 되어서 좋은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 학부모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이들이 학교 가는 게 행복하다니까 부모로서 이보다 더 좋은 건 없을 거 같아요. ”      


 그러나 무엇보다도 혁신학교에서의 변화는 교사의 변화로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 나는 혁신학교인 서울상원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것이 참 편안하고 좋다. 그렇지만 부담도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교사가 온전히 아이들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어떤 교사로 성장할 것인가는 다른 선생님들이 도움을 주더라도 결국 나의 몫이기 때문이다. 고여 있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안주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늘 나를 채찍질한다. 지금이야말로 학교 교육의 역할과 책임, 참교육의 철학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라는 생각을 한다. 이런 깨어있는 상황 자체가 어쩌면 내가 혁신학교에 있으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행운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리학교 선생님이 말한 것과 같이 내가 꿈꾸는 것도 하나다. 서울상원초등학교에서 시작된 혁신학교의 도전과 모색이 학교혁신으로 일반화되기를 바란다. 행정업무 중심의 학교를 수업중심으로 바꾸고 학교구성원들이 서로 협력하면서 성장하는 행복한 학교가 가능하다는 것을 충분히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바로 학교 본연의 모습이어야 하고 교육이 나아가야 할 근본적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