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말하기-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말

조심성 없이 튀어나오는 상처의 말들

by 화니샘

신의 책상에는 이런 문구가 놓여 있다고 한다.

“네가 만일 불행하다는 말을 하고 다닌다면 불행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겠다. 또한 네가 만일 행복하다고 말하고 다닌다면 행복이 무엇인지 보여주겠다.”

인생이 잘 안 풀리는 사람은 안 풀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반면에 인생이 술술 잘 풀리는 사람은 잘 풀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부정적인 사람과 긍정적인 사람은 미래가 같을 수 없다. 우리는 부모가 하는 말을 들으면 아이의 미래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부정적인 말을 자주 사용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당연히 부정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말이 얼마나 중요한가?


사실 학교폭력의 원인을 잘 따져보면 여러 요소 중 소외나 무관심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인간의 뇌는 사회적인 소외나 굴욕을 신체에 가해지는 폭력과 같은 방식으로 평가한다. 소외나 굴욕을 느끼면 뇌는 신체에 가해지는 폭력과 동일한 위협으로 판단하고 공격성으로 답하게 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폭력적 행동 원인과 배경에는 이처럼 부족한 인간관계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학교 폭력을 해결하려고 아무리 강력한 규칙과 법을 적용해도 별 효과를 거둘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인간관계를 향상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칭찬의 말은 인간관계를 향상하는 데 있어서 그 어느 것보다 효과적이다. 칭찬을 받으면 행복감을 느낀다. 행복한 사람은 악인이 없는 법이다. 칭찬은 할수록 좋은 말이다.


“우리 모두는 남의 불행에 견딜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행복하다.”

이 말은 다른 이의 불행을 보면 내가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의미다. 타인의 행복과 나의 행복을 비교하는 것이 나의 불행의 원인이라면 타인의 불행과 나를 비교하는 것은 나에게 위로를 가져다주는 일이 될 수 있다. 이렇듯 불행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불행한 일이나 안 좋은 일을 당한 사람을 위로하는 것은 그래서 조심스럽다. 실수를 줄이기 위해 조문 등의 절차나 인사말 등을 정해 놓은 것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조심성과는 달리 습관적으로 튀어나오는 말이 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내 말 안 들으면 이렇게 된다고 했지?”

남의 실수나 불행에 대해 무심코 하는 이 말은 상대를 매우 멸시하는 말임과 동시에 나를 과시하는 말이다. 마치 자신이 앞을 내다보는 예지력이나 통찰력이 있는 듯 과시하는 말이다. 그렇지만 이는 사실상 상대를 조롱하고 비아냥거리는 의미로만 전달될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이다. 그러니 가벼운 실수 외에는 가급적 하지 말아야 할 말이다.


“그래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그만하면 다행이야, 다시 반복하지 않으면 되지 뭐”

조심하지 않아서 예상된 결과라서 화가 나더라도 위와 같은 말이 상대를 위로하는 표현이 된다. 그러나 이 말조차 그다지 위로가 되지 않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는 말없이 그의 곁을 지켜주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제삼자에게 하는 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내 그럴 줄 알았어."라는 말 대신 “그래? 크게 다치지는 않았니?”라는 말을 하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상대를 비난하는 대신 상대를 염려하고 위하는 말이 훨씬 좋은 말이다.


종국 : “선생님, 컴퓨터가 안돼요.”
선생님 : “너 또 딴짓했구나.”
종국 : “아니에요. 아무것도 안 했어요.”
선생님 : “에이 바이러스 감염이네.”
종국 : “바이러스가 뭐예요.”
선생님 : “아니, 아직 그것도 몰라?”

“아직 이것도 모르니?” “아직 이것도 못해?”라는 표현은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을 모른다는 말이다. 지적을 당해도 마땅한 상황이라면 할 말이 없겠지만, 맥락에 따라서는 상대를 얕잡아 보며 무시하거나 기본이 안 되었다는 뜻으로 전달되기도 한다. 이 말은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특히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을 모르는 기준 이하라는 인식이 깔려 있기에 더욱 그렇다.



“도대체 몇 학년인데 아직도 구구단을 몰라?”
“대체 몇 번을 가르쳐주었는데 아직도 이해를 못해?”
“나이가 몇인데 여태 이것도 모르니?”

교사의 입장에서는 열심히 가르쳤는데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잘하는 듯 보였는데 결과가 잘 안 나올 때면 자신도 모르게 이런 말들들이 튀어나올 수 있다. 그런데 교사는 당연한 말이라고 여기지만 당사자에게는 그렇지 않다. 남들은 다 아는 것이지만 자신만 모르는 것이기에 당사자의 열등감을 자극하는 말이 된다. 어느 한 부분에서 이와 같은 말을 들은 아이는 다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가 될 가능성이 많다. 다른 사람이 해내는 것을 자신만 못해 낸다는 이 좌절감과 열등감이 다른 모든 부분으로 옮겨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 능력에 대한 회의는 자신감의 상실, 열등감, 의욕 부진 등으로 이어져 모든 부분에 무력감으로 나타난다.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게 되면 자신의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해석해 결국 자존감의 없는 아이로 성장하게 된다. 교사의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고 답답한 상황일지라도 조금만 너그러워지자. 속에서 천불이 끓어오르며, “아직 이것도 몰라!”라고 소리치고 싶겠지만, 이렇게 바꿔 말해보는 건 어떨까?


“이건 이렇게 하면 돼”
“이렇게 하는 방법이 쉬워”

마땅히 알고 있어야 할 것을 모르는 때일수록 더욱 신중한 표현을 써서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칫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메시지로 해석해 크게 상처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존감에 상처를 주는 말은 어떤 경우에도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긍정의 말이 설계하는 긍정의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