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가 사회의 정의다
놀이가 지금 이 자리의 화두가 된 것은 다행이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것은 놀이 부족 또는 우리 사회의 불건강성을 역으로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의 반인성 문제가 발생하자 국회에서 인성교육진흥법을 제정하여 학교가 의무적으로 인성교육을 하도록 했습니다. 지금까지 학교교육이라고 하면 그야말로 인성을 가르치는 것인데 새삼스럽게 인성교육을 추가로 해야한다니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놀이도 자칫 그렇게 될까 걱정입니다. 혹시 어떤 국회의원이 놀이교육진흥법을 발의한다면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 아이들의 놀이부족이 심각하고 우리는 그것을 '놀이결핍'이라고 진단합니다. 놀지 못하는 아이들은 감정적으로 우울하거나 공격적이고, 한편으로는 무력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폭력 문제의 근원도 놀이로 감정을 발산하지 못한 아이들이 안으로 스트레스가 쌓여 큰 사고를 저지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말로는 아이들의 창의력, 자존감, 책임감을 키우고 싶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모든 것을 가로 막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놀이시간을 빼앗고, 놀이 친구, 놀이감마저 부모가 정해주는 것이 요즘 세태입니다. 물론 부모들의 이런 행태 뒤에는 경쟁사회가 있습니다. 자기 아이들이 경쟁에서 뒤처지지나 않을까하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그렇게 만드는 것일 겁니다.
아이들은 이런 부모의 불안감과 두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불안감과 두려움을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달됩니다. 그런 아이들의 삶은 과연 어떻게 될지... 그런 아이들이 만드는 세상이 어떨지... 너무도 안타까울 뿐입니다. 아이들이 부모의 감시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놀 수 있도록 놔두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 아이들이 가장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최선의 방도입니다. 놀이가 '밥'이라는 말은 그래서 성립됩니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 아이들에게 '놀이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입니다.
아이들은 놀고 싶어 하지만 놀 시간도 없고 놀 장소도 없고 놀 동무들도 없습니다. 그러니 놀이밥을 충분하게 만들어 주자는 것이 나의 주장입니다. 그 놀이밥을 충분하게 만들 수 있는 곳이 과거에는 동네 놀이터였습니다. 지금 놀이터에는 놀 시간이 있어도 놀 동무들이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학원에 가고 방과후학교 수업을 하느라 시간이 맞지 않아서 친구들이 없습니다. 노는 놀이도 과거와 달리 밖에서 하는 것보다 실내에서 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또래 친구가 모여 있고, 운동장이 있는 학교에서 놀이 시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합니다. 저는 그 방안에 동의합니다. 그래서 지난 학생의 날 때 서울시교육청에서는 학교에서 놀이시간을 확보하도록 권고를 했습니다. 전북 교육청에서 하고 있는 놀이밥 60+ 프로젝트도 같은 취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것일까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서 놀이헌장을 제정하자고 제안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놀기 위해 세상에 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을 놀이하는 존재라고 규정하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도 성장하는 어린이에게 있어 놀이는 더 근본적일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이는 놀 권리가 있고, 사회는 어린이에게 놀 시간과 놀 공간을 마련해 주어야 하고, 놀이의 가치와 중요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에 깊은 공감이 갑니다. 어린이 놀이헌장이 빨리 제정되어 선포되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할 일을 다 한 것인가요? 아니면 이에 더 해서 많은 놀이 전문가를 양성하고 다양한 놀이를 더 많이 개발해서 우리 아이들에게 주면 되는 것인가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좀 더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야 합니다. 우리의 책임은 선언을 넘어서 법을 넘어서 정의에 다다라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충분한 놀이밥을 마련해 주어도 우리 교육, 우리 사회가 바뀌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은 이 밥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병들게하는 경쟁교육시스템과 차별적인 사회시스템을 바꾸는 노력을 함께 하지 않는다면 놀이헌장은 한낱 종이조각에 불과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