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조종자들》
한때 인터넷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고 익명이 보장된 세계였다. 설사 상대가 고양이라 하더라도 인터넷에서는 그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지금 인터넷은 나의 정보를 은밀히 모아서 분석할 뿐 아니라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내 삶을 조종한다.
우리가 인터넷에서 여행하기 좋은 곳을 검색하면 내 컴퓨터에는 적어도 평균 64개의 쿠키가 설치되어 그 여행에 관한 서비스를 판매하려는 다른 웹사이트에 의해 추적을 당한다. 요리에 대한 정보를 찾으면 어김없이 주방기기를 파는 광고 사이트에 연결된다. 이제 인터넷은 사용자가 사람인지 고양인지 금방 알아차리고 더 나아가 어떤 종의 고양이인지까지 알아내 그가 좋아하는 고급사료를 팔려고 한다.
구글, 페이스북, 애플과 같은 거대 인터넷 공룡들은 나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캐내려고 혈안이다. 우리가 무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대가는 바로 나에 대한 정보이며 구글과 페이스북은 이를 바로 현금화한다. 지메일이나 페이스북은 아주 유용한 공짜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한편으로는 나의 가장 은밀한 사생활 정보들을 먹어 삼킨다. 스마트폰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누구와 통화하는지, 무엇을 보고 있는지 거의 정확하게 안다. 스마트폰에 내장된 GPS와 같은 장치는 내가 걷고 있는지, 차를 타고 있는지, 심지어 누구와 만나고 있는지까지 알려준다.
구글은 개인정보를 보관만 하겠다고 했지만, 그 정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비즈니스 전략 차원에서 인터넷 공룡기업들이 생각하는 공식은 아주 간단하다. 정보가 사용자와 더욱 밀접한 관련이 있을수록 그 사람에게 더 많은 광고를 팔 수 있다는 것이다. 광고 제품을 사용자가 구매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은 이미 확인되었다. 아마존은 사용자가 무엇에 관심 있는지 예측해서 그 내용을 첫 페이지에 띄워주는 방식으로 매년 수십억의 판매 수익을 올리고 있다. 넷플릭스에서 60% 이상의 매출은 가입자가 선호할 것으로 예측해서 개별적으로 추천한 영화에서 발생한다. “웹의 미래는 개별화다”라는 말처럼 개별화는 모든 인터넷 사이트에서 사용하는 핵심전략이 된 지 이미 오래다.
구글의 CEO 에릭 슈미트는 “내가 늘 만들고자 했던 것은 내가 뭘 보고 싶어 하는지 예측하는 프로그램”이라며 2010년 구글 인스턴트 검색을 선보였다. (얼마 전 인스턴트 검색을 중단한다고 하긴 했지만...) 구글 인스턴트는 사용자가 자판을 두드리는 순간 무엇을 원하는지 예측하는 시스템이다. 구글은 “사용자가 원하는 것은 자신이 다음에 뭘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런 개별화 전략의 적용은 단지 검색이나 광고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페이스북에서는 개별화된 정보가 주요 정보 소스가 되고 있다. 페이스북 사용자가 점점 많아지면서 페이스북이 가장 큰 뉴스원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야후나 <뉴욕타임스>의 인터넷판은 사용자의 특별한 관심이나 욕구에 맞춰서 머리기사를 띄워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개별화는 유튜브에서 어떤 동영상을 볼지 카카오#에서 어떤 글을 볼지 좌우한다. 내가 어떤 식당을 갈지도 은근히 영향을 준다. 이는 개별화를 통해 사용자가 어디에 가서, 무엇을 먹을지, 무슨 이야기를 할지에 대해 미리 정해준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컴퓨터 알고리즘이 우리의 생활을 조종하는 것이다.
이러한 조정의 알고리즘은 아주 간단하다. 새로운 인공지능 컴퓨터가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먼저 살펴본다. 그리고 당신이 실제로 무슨 일을 했는지, 당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살펴보고 추론한다. 예측 엔진은 끊임없이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하려고 하고 또 할 것인지에 대해 추측하고 다듬는다. 이를 통해 우리 각각에 대한 유일한 정보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이를 ‘필터 버블’이라고 한다.
‘필터 버블’을 피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우리는 매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산다. 정보를 선별하고 그 흐름을 따라가기가 무척 힘들어졌다. 따라서 개별화 필터가 우리를 도와주겠다고 나서면 쉽게 넘어갈 수밖에 없다. 어쨌든 내가 알고 싶어 하는 소식과 갖고 싶어 하는 물건을 찾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특화된 세계는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생각들이 모여 있는 아주 편안하고 안전한 세상이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나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는 문제들에 대해 접촉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다. 내가 보고 싶지 않으면 그냥 클릭하지 않으면 다시는 보여주지 않는다. 반면에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의 동정에 대해 놓치고 싶지 않다면 그렇게 해준다. 절대 심심하지도 성가시지도 않게 우리가 좋아하고 원하는 것들만 완벽하게 선별해준다.
언뜻 보면 아주 멋진 세상이다. 내가 세상의 중심에 있고 세상은 나를 위해 돌아가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 대가가 없을 수 없다. 개별화될수록 인터넷이 시작되었을 때 그토록 매혹적이었던 인터넷의 특징들은 사라지게 된다. 필터 버블에서는 통찰하면서 새롭게 배울 기회가 없어진다. 익숙한 세계에서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 지나친 개별화는 자신과 세계에 관한 생각을 바꿔 줄 값진 기회를 잃게 만든다.
또한, 개별화는 나의 정보를 이용해 내가 어떤 삶을 살지에 대해 누군가가 조정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 시스템을 만든 기업들이 나의 운명의 주인이 되어 내 삶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허용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아가 개별화된 필터는 우리가 꿈꾸는 글로벌한 사회에 대한 의식의 연결을 방해하게 될 것이다. 향후 20년 이내에 곧 직면할 에너지 부족, 기후변화, 테러나 질병 등의 문제는 우리가 모두 힘을 합칠 때만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개별화는 이런 연대를 어렵게 만든다. 옆 사람과 나란히 앉아서 컴퓨터 화면을 보지 않는 한 우리는 인터넷에서 서로 다른 내용을 보고 있지만, 그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필터 버블’이 우리의 인식을 왜곡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무엇이 중요하고, 어떤 것이 진실인지에 대한 판단을 하지 못한다. 문제는 이 필터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기준으로 우리를 분석하는지 그 기준이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제공되는 정보는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만약 특정한 정치세력이 필터 버블에 개입할 경우 우리의 생각과 의견이 그들의 입맛대로 조종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실체가 드러나게 해야 한다. 인터넷 출범 초창기의 비전처럼 '완전하게 연결하고 통제는 사용자가 한다'는 원칙을 되찾아야 한다.
필터 버블이 지배하는 세상의 바보가 될 수는 없다. 소수의 정보독점 기업들이 우리의 일상을 좌지우지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구글과 페이스북의 프로그래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개별화가 가져오고 있는 코드 속 버그 같은 존재를 폭로하고 그것을 만드는 사람을 까발려야 한다. 그들이 더는 그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고, 더 개방적이고 공공 지향적인 인터넷을 향해 뜻과 목소리를 한 데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