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먼지 쌓인 서랍에서 추억의 물건을 발견했다. 스물셋, 대외활동 겸 유럽 여행을 갔을 때 샀던 시계였다. 유럽 여행은 나의 첫 해외 여행이었다. 처음 떠난 해외여행이 유럽이라니. 스케일 한번 거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다. 나는 여행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파산할 뻔했다. 음. 정확히 말하면 거의 파산했었다. 같이 대외활동을 했던 조원들이 돈을 빌려주지 않았더라면 여행지에서 거지꼴을 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경비로 가져간 돈을 한 번에 너무 많이 써버렸기 때문이었다.
뭘 하는데 돈을 그렇게나 많이 썼느냐고? 비싼 음식 먹기? 유명 관광지 가기? 기념품 사기? 놉! 나를 파산하게 만든 것은 무엇도 아닌 바로 '선물'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핸드폰 메모장에는 선물을 주고 싶은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했다. 선물을 사다 보면 미처 적지 못했던 사람이 떠오르고 또 선물을 사고. 그러다 보니 지갑은 점점 깃털처럼 가벼워졌고 반대로 캐리어 안은 꽉꽉 들어찼다. 돌아와 짐을 풀고 선물들이 제 주인을 찾아가자 텅 빈 캐리어와 함께 내게 남은 것은 시계 하나뿐이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서 유리 공예로 유명한 섬에 들렀을 때 샀던 독특한 문양의 시계. 내가 나에게 선물했던 유일한 물건이었다.
시간이 흘러 스마트폰과 한 몸처럼 지내는 세상이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목에 시계를 차지 않으며 차더라도 스마트워치였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잊고 있었다. 우연히 다시 발견했을 때 시계의 바늘은 멈춰있었다. 마치 같은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마냥. 시계방에 가서 약을 갈아주었다. 째깍째깍 힘차게 다시 흐르는 시간. 선물을 사다가 여행 중에 파산할 뻔했던 철없고 순수했던 그때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와중에 잊지 않고 스스로에게 선물했던 시계 하나로 인해. 선물은 마법이다. 그때 나의 선물을 받은 사람들도 가끔 그 기억을 떠올리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