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떠올리면, 태양이 이글이고 숨 막힐 듯 더운 날,우중충한 구름 사이로 비가 왕창 내리는 날이 동시에 생각이 난다. 둘 중 한 쪽을 고르라면 차라리 전자였다. 비라면 진저리를 치게 싫었으니까. 왜 그렇게도 비를 싫어했던 걸까?
비가 오는 날은 먹구름에 해가 가려 어두침침하다. 빗방울은 (당연한 말이지만) 아래에서 위로 솟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내리떨어진다. 더구나 여름철 장마기간에는 큰 비가 쏟아지기 전 위협적인 천둥 번개가 치기도 한다. 사실 싫다기 보다 겁이 났던 것이다.
한 때 나는 어두운 것, 가라앉는 것이 두려웠다. 나라는 사람은 반드시 맑아야 했다. 행복, 유쾌함, 낙천적인 사고, 그런 류의 것을 취하고 우울, 슬픔, 무기력, 화 같은 것은 밀어냈다. 사람들에게 착하다는 말을 듣는 것이 익숙했다. 하지만 밀어낸 감정들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한 켠에 쌓이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쌓이고 쌓이다 터져나올 때도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런 내 모습에 대해 나 답지 않다고 하거나 이제까지 가식이었냐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 반응이 되돌아올까 겁이 나면 날 수록 나는 더욱 맑기만 한 사람이 되려고 했다. 그런데 언젠가 한 번 아주 예쁜 카키색 우산을 산 적이 있다. 나에겐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평소 우산은 어차피 사도 금방 잊어버리는 물건 중에 하나인데 예쁜 걸 사서 뭐하냐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우산을 사고나니 은근히 비 오는 날이 기다려졌다. 처음 그 우산을 쓰고 나갔을 때 우산에 톡톡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기분 좋게 들리기도 했다.
우리의 감정이 날씨와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어제는 쨍쨍하다가도 오늘 갑자기 비가 온다. 그러나 날씨가 어떠하든 어제나 오늘이나 분명 여름이다. 내 마음이 맑든, 비가 오든 전부 나인 것처럼. 책 <감정 어휘>에서 감정은 길들여야 하는 개가 아니라고 말한다. 무조건 기다리고 참는 것은 조절이 아니라 굴복일 뿐이라고. 감정은 지금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알리는 신호이기에 모두 정당하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도 정당한 신호로 받아들이고나니 새로 산 우산을 쓴 것처럼 두려움이 잦아들고 설레임이 꿈틀댔다.
한여름 빗소리를 들으며 가라앉은 마음으로 차분히 글을 써 내려가는 지금의 내가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