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만 보면 영락없이 갑옷입은 무사인데 속은 꼭 사랑스럽기만한 여인을 닮았다. 진한 분홍색 과육이 수줍어 발그레해진 볼 같기도. 부채 모양으로 잘라놓은 수박의 껍질 부분을 손잡이삼아 살짝 깨물면 사각거리면서 달콤한 물기가 입안 가득 퍼진다.
곳곳의 카페에서 수박 이미지가 보인다. 여름이 왔다는 걸 이렇게도 알 수 있다.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화채나 음료로 만들어 먹으면 더위가 싹 가시는 느낌이라 인기가 많다. 나는 화채보다는 수박주스를 선호하는 편이다. 화채는 우유나 사이다 등의 다른 음료를 첨가해 맛을 내지만 잘 익은 수박은 그냥 갈아 마시기만해도 그 자체로 흠 잡을 곳이 없다. 수박 본연의 맛을 더욱 강력하게 느낄 수 있다.
제철과일에 대해 잘 몰랐을 때부터 수박은 여름의 다른 이름처럼 느껴졌다. 제철과일이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내면 반가운 마음이 든다. 날씨말고도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반가운 만큼 퇴장하는 뒷모습이 아쉬어 벌써 놓아주고 싶지 않다. 집 앞 마트에서 쌓여있는 수박을 통통 두드리며 신중히 고르는 사람들을 한창 목격하고 있다. 그 풍경을 더이상 볼 수 없게 될 때쯤 이 여름이 끝나갈테지. 하지만 괜찮다. 내가 좋아하는 무화과가 또 나를 기다리고 있다. 가을이 가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