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성
북클럽 네 번째 책은 <역사의 쓸모>다.
북클럽 선정작 중에 가장 마음에 들어서, 빌려 읽던 책을 반납하고 직접 구매한 첫 번째 책이다. (취향 다른 북클럽에 참여하더라도 결국 얻는 것이 있다는 좋은 교훈을 얻었다)
저자의 말마따나, 요즘 세상에 역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국영수처럼 중요한 과목도 아니고, 케케묵은 옛날 것이니 현시대에는 딱히 의미 없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둘러보면, 내 주변에도 역사에 관심 있고 역사를 주제로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다. (어쩌면 애초에 역사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어서 취향을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든다.) 그 지인 또한 주변에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으며, 자신이 역사 이야기를 하면 "그런 옛날이야기를 왜 보는 거야? 과거 말고 미래를 봐야지"라는 말을 듣는다고 했다.
역사가 과거인 것은 사실이지만 누적된 역사는 미래를 보여주기도 한다.
나는 역사를 좋아한다. 이야기로서의 역사를 좋아하고,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서 되풀이되는 일을 찾는 것이 재미있어서 좋아한다. 예나 지금이나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충돌하는 일은 항상 있어왔고, 그때마다 결말은 유사하다. 현시점에 미얀마에서 일어나는 일은 다른 시대, 다른 장소(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에서도 일어났으니, 비록 그 끝이 어떨지 100% 예측할 수는 없지만 역사의 흐름에 비춰볼 때 대강 짐작할 수는 있다. 얼마 전에는 그 지인과 미얀마 사태 이야기를 하다가, '왜 북한에는 민주화 운동조차 일어나지 않는가'하는 고민에 북한의 감시 체계나 중국의 뒷받침이 그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소련이 무너지면서 독일의 통일이 왔듯이 중국이 무너져야 한반도의 통일도 바라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전혀 다를 수도 있지만, 역사를 몰랐다면 편협한 지식만 가진 나 같은 사람은 애초에 그런 흐름조차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역사가 현시대에도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후 역사를 개인 삶에 접목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사의 쓸모>의 작가는 "역사가 왜 필요한가?"는 질문에, "우리가 살면서 마주치는 수많은 선택 앞에서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이끌어주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내가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다. 저자도 살면서 여러 번 선택을 마주했고,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 역사를 되짚어보고 그에 따라 선택했다는 이야기.
역사에서 옳고 그름을 말할 수는 없지만, 역사를 읽은 개인은 지극히 주관적이더라도 이를 평가할 수 있다. 책에서 언급한 을사오적과 박상진의 선택을 보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을사오적의 선택보다 박상진의 선택을 옳다고 평가할 것이다. 그리고 그 평가는 그 사람 앞에 놓인 선택의 기로에서 옳은 선택을 하도록 도와준다.
당장의 이익과 자기 입장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요즘 세상에 꼭 필요한 관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이를 "역사의식"이라고 했다. 지금 내 선택이 훗날 어떤 결과를 낳고 어떤 평가를 들을지를 생각하면 당장의 이익만을 좇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을사오적이나 사사오입 개헌을 만들어낸 이들은 역사의식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역사가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해 주지만, 개인의 삶에 영향을 준다고는 생각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고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역사의 쓸모>에서 얻은 또 하나는, 역사를 알면 다른 시대를 산 사람을 이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구세대와 신세대의 의견 대립이 격화될 때, 구세대는 신세대를, 신세대는 구세대를 이해하지 못한다.
초등학생 때까지 군부 독재에 있다가 앞선 사람들의 용기로 한 것도 없이 민주화를 누리게 된 나 같은 사람은, 군부 독재의 향수를 느끼는 구세대를 두고 세상 흐름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평하기 마련인데, <역사의 쓸모>에서 그들이 왜 그 시대에 향수를 느끼는지 알 수 있었다. 당시에는 먹고사는 것이 중요했지, 당장 주변 사람들이 해를 입지 않는 한 독재든 민주화든 별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어려웠던 우리나라를 지금처럼 끌어올리기 위해 당시 세대들은 앞뒤 가리지 않고 일했다. 책은 열심히 살았던 그들의 시대와 그 시대의 대통령을 폄하하는 것은 그들의 노력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한다. 부정당하기 싫어서, 그 세대들은 여전히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떠받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역사의 쓸모>를 읽기 전에는, 부모님 세대에 갖는 고마움 때문에 그들의 이상이나 주장이 말도 안 된다 생각하면서도 가능한 충돌을 빚지 않으려 했다. "이해합니다"라고 했지만 그 진실한 이해라기보다는 회피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역사는 흔한 오해와 달리 고리타분하거나 미련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시대의 맥을 짚는 데 가장 유용한 무기이자 세상의 희망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는 도구죠.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우리는 늘 불안해합니다. 이 시대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그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역사를 공부한 사람은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할 것입니다. 과거보다 현재가 나아졌듯이 미래는 더 밝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