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과 속 4화

뒤틀린 사랑의 끝

by 유유정



겉과 속 4화 — 뒤틀린 사랑의 끝

Written by 유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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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절망 속에서

공장 안을 메우는 기계음은
지연에게 세상을 끊어내는 소음 같았다.

남들의 사소한 관심도,
사랑도,
상처도,
그 어떤 것도 더는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용했고,
그래서 단단했고,
그래서 아무도 몰랐다.
그녀가 조용히 무너지고 있다는 걸.

공장 사람들은 그런 지연을 불편해했고
누구도 가까이 가지 않았다.

그 속에 민석이 있었다.

그는 이 공장의 거의 모든 일을
혼자 떠안고 있는 사람이었다.
젊은 나이에 감당하기엔 벅찬 책임들.
그럼에도 그는 단 한 번도
힘들다는 표정을 짓지 않는 사람이었다.

늘 조용했고, 늘 묵묵했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지연에게만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어딘가 익숙한 눈.
말하지 않아도 아픈 사람의 표정.

그건 오래전
그의 엄마가 세상에서 천천히 멀어지기 전
늘 짓던 표정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지연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마치 손댔다가는 산산이 부서질 것 같은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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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대신 흘러나온 진짜 감정

점심시간.
지연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그때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다가왔다.

“지연 씨… 밥은요?”

지연은 잠시 멈칫하더니
아주 조용히 대답했다.

“…밥보단 커피가 좋아요.
커피는… 쓰거든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던 감정이
불쑥 흘러나왔다.

민석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사람은… 허기지면 더 약해져요.
지연 씨 같은 사람이 더 위험하고요.”

그 말
따뜻 메시지 같았다.

지연은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괜찮아요.
위험해도....”

그 말 뒤에 남은 공허함은
민석의 표정을 잠시 굳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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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속에서 기다리던 그림자

퇴근길.
폭우가 공장 앞을 뒤덮고 있었다.

지연은 발걸음을 멈췄다.
감각이 먼저 말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어둠 속, 비에 젖은 남자가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현우.

지연의 숨이 멎었다.
등줄기로 얼음 같은 감각이 스며들었다.

“오랜만이네.”
그의 입술은 웃고 있었지만
눈빛에는 광기가 서려 있었다.

“그새 남자 생겼던데?
딱 보이더라. 재밌네.”

지연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발끝이 바닥에 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날카로운 빛 하나가 어둠을 갈랐다.

그것은 살기를 품은 광기였고
눈빛은 더 이상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영원히 널 갖는 방법은
이거 하나뿐이야.”

그가 전력으로 그 빛을 휘둘렀다.

“지연 씨!!!”

민석이 재빠르게 뛰어들며
그 빛을 온몸으로 막아냈다.

그리고
비와 함께 붉은색이 터져 올랐다.

현우의 광기 어린 외침,
멀리서 울리는 사이렌,
사람들의 비명.

그러나 지연에게는
모든 소리가 마치 수면 아래에서 들리는 것처럼
희미해졌다.

그저
붉게 물들어가는 민석의 셔츠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두려움도, 공포도, 분노도
어떤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 붉은색이
과거의 상처인지
현재의 절망인지
앞으로의 파국인지
아무것도 구분되지 않았다.

그 순간,
지연의 세계는
소리 없이 조용히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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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사람 때문에 무너지고
사람 때문에 살아나고
사람이 만든 사랑은
때로는 지독한 절망처럼 다가와
우리를 끝까지 밀어뜨린다.

그러나
그 절망 속에서도
우린 어쩌면 누군가를 다시 붙잡고 싶어 하는
어리석고 외로운 존재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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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과 속 - 진심의 얼굴>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새로운 이야기가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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