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과 속 3화

사랑의 균열

by 유유정


겉과 속 3화

사랑의 균열

Written by 유유정

지연은 여전히 다방에서 일하고 있었다.
손님들은 그녀를 차갑고 가벼운 여자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런 시선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퇴근길마다 편의점 앞에서 기다리던 현우의 미소가 있었으니까.
그의 따뜻한 말 한마디면 하루의 거친 소리들이 잠시 멎는 듯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가 현우의 눈빛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웃을 때마다 묻곤 했다.
“그 손님, 왜 그렇게 웃어요?”
“다른 사람한테 너무 다정한 거 아니에요?”

지연은 장난인 줄 알았지만,
그 말투 속엔 점점 냉기가 섞여 갔다.
사랑이라 믿었던 온기는 조금씩 무게를 바꿔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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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지연은 시장 한복판에서 익숙한 얼굴을 보았다.
지하철역 계단 아래로 쓰러지던 그날의 할머니였다.
등에는 여전히 폐지로 가득 찬 보따리가 있었다.

“저기… 그때 그 처자 아니야?”
지연이 놀라서 되물었다.
“네?”

할머니는 반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지하철에서 나 도와줬었잖아.”

지연은 그제야 기억이 떠올라 미소 지었다.
“아, 네. 맞아요. 별일도 아니었어요.”

“아니야. 덕분에 크게 다치지 않았어.”
할머니는 그때를 떠올리며 잠시 눈을 감았다.

그때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연 씨.”

현우였다.
그는 바짝 다가와 자연스럽게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할머니는 순간 고개를 숙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무언가를 떠올린 듯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래, 확실해.”

지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할머니, 왜 그러세요?”

할머니는 조심스럽게 다가와 지연의 귀에 속삭였다.
“저 남자, 누구야?”

“제 남자친구예요.”

할머니의 표정이 굳었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날 밀어버린 남자가 저 남자야.
그때 그 얼굴, 난 똑똑히 기억해.
날 비웃었거든… 조심해, 착한 처자야.”

지연은 숨이 멎은 듯 할머니를 바라봤다.
뒤돌아보니 현우가 둘을 번갈아 보며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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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은 믿고 싶지 않았다.
할머니의 말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지만,
그저 착각이길 바랐다.

늦은 저녁, 현우는 전화를 걸어왔다.
목소리는 힘이 없었고, 숨이 조금 가빠 있었다.

“지연 씨… 나 좀 아파요.
잠깐만 와줄 수 있어요?”

걱정된 마음에 지연은 그의 집을 찾았다.
문이 열리자, 어두운 방 안에서 현우가 앉아 있었다.

“괜찮아요?”
지연이 다가서자, 그는 고개를 들었다.

“아까 그 할머니랑은 무슨 얘기한 거예요?”

지연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냥 고맙다고, 전에 제가 조금 도와드려서 그 얘기 하셨어요.”

“그때 나 본 거예요?”
“네?”

지연이 당황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현우는 천천히 웃었다.

“내가 그때 그 할머니 밀었거든요.
너무 걸리적거려서.”

지연은 말을 잃었다.
현우의 얼굴엔 더 이상 미소가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다방 관두라고 몇 번 말했어요?
내가 먹여살린다고 했잖아요.”

그의 말은 점점 거칠어졌다.
“그렇게 싸구려 커피, 싸구려처럼 파는 거 보기 싫다고!”

순간, 그는 지연을 바닥으로 밀었다.
넘어진 지연은 공포에 질려 몸을 떨었다.

현우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낮게 속삭였다.
“왜요? 다른 사람처럼 보여요?
당신이 알던 현우도 나고, 지금도 나예요.”

그는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당신은 그냥 날 사랑하는 거잖아요.
그냥… 날 사랑해요.
무조건.”

지연은 그 자리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의 말이 멀어지는 동안,
그녀는 절망 속에서 무너져 내렸다.

그녀는 도망가듯 빠져나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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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사랑이 전부일 때,

사람은 가장 쉽게 무너진다.

〈겉과 속〉의 세 번째 밤,

지연은 사랑의 얼굴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처음으로 깨닫는다.


Written by 유유정


〈겉과 속 – 진심의 얼굴〉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새로운 이야기가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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