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열이 무너지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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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과 속 10화 — 균열이 무너지는 밤
Written by 유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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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 , 혼자 지키고 싶었던 이유
며칠 동안,
지연은 민석의 아버지를 위해
거의 ‘살아있는 방패’처럼 움직였다.
식사 챙기기, 물 떠오기, 약 시간 확인, 기침 수발 윤주와 새엄마가 검은 손을 뻗을 틈을 단 1초도 주지 않기 위해
지연은 숨도 제대로 쉬지 않았다.
지연은 알고 있었다.
민석이 모든 진실을 알게 되면
그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게 될 테니까.
그래서였다.
민석이 비에 젖은 자신을 끌어안아 지켜주었던 것처럼,
이번엔 그녀가 민석의 마지막 남은 가족을 지키고 싶었다.
그 결심은 필사적이었고,
그리고 어쩌면 치명적으로 어리석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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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처럼 보였던 아침
“사장님, 물 금방 떠올게요.
아침은 조금 드셨어요.”
지연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민석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버지 정말… 많이 좋아지셨어요.
지연 씨 덕분이에요.”
지연은 고개를 세게 저었다.
“아니에요.
사장님은 점점 더 나아지실 거예요.”
그 말과 함께
민석에게 희망을 돌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가슴 깊이 올라왔다.
민석은 공장으로 향했고,
지연은 물을 뜨러 부엌으로 향했다.
오늘만큼은…
정말 괜찮아질 것 같았다.
그러나 그 평온은
잔인할 만큼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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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은 15초의 빈틈에서 태어났다
지연이 전화벨에 반응하며 복도로 나간 단 15초 동안
집 안으로 스며든 발자국.
윤주와 새엄마였다.
윤주가 이를 갈며 말했다.
“더는 못 기다려.
지긋지긋해. 오늘 끝내.”
새엄마는 계단 아래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속삭였다.
“지금이야. 입 다물고 밀어.”
윤주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그래.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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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
꽝—!
집 전체가 울릴 만큼 큰 충격음.
지연은 물컵을 떨어뜨린 채
미친 듯이 계단으로 뛰었다.
그리고
계단 아래,
피가 번져나오는 머리,
움찔거리는 손끝,
부서지듯 가라앉는 숨.
그리고 계단 위.
난간을 잡고
무표정하게 내려다보는 윤주와 새엄마.
그 얼굴에는
놀람도, 죄책감도, 공포도 없었다.
오직 귀찮음과 짜증뿐이었다.
윤주가 먼저 말했다.
“지연이.
다 너 때문이야.”
새엄마는 팔짱을 낀 채
작게 비웃으며 말했다.
“지연 씨, 뭐 하는 거예요?
사장님이 지연 씨 찾는다고 나가시다 이러신 거예요.
우린 말리다가… 이렇게 된 거고.”
윤주는 혀를 차며 한마디 더 얹었다.
“진짜 피곤하게 살아.
사람 하나 제대로 못 지키면서 끼어들더니 이 난리야.”
그 말투는
사람이 죽어가고 있음에도
단 1의 감정도 없는 말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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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
지연은 계단을 구르듯 내려가
사장님을 안아 들었다.
“사장님!! 제발… 제발 눈 좀 떠요!!”
사장님의 몸은 축 늘어져 있었고
숨은 끊어질 듯 가늘었다.
지연은 떨리는 손으로 구조 요청을 했고,
세상은 이미 새하얗게 찢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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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 무너지는 고백
사이렌, 들것, 의료진의 명령.
지연은 병원 복도 바닥에 주저앉아
손을 감싸 쥔 채 울고 있었다.
그때
복도 끝에서 누군가 미친 듯 달려왔다.
민석이었다.
“지연 씨!!
아버지가… 어떻게 된 거예요?!”
지연은 눈물 젖은 얼굴로
민석을 올려다보았다.
“제가…
조금만… 더 일찍 말했더라면…”
민석은 숨을 멈추었다.
“…무슨 말이에요?”
지연의 입술이 떨렸다.
“혼자 지킬 수 있다고…
착각했어요…”
민석은 지연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두려움과 혼란,
그리고 부서지기 직전의 고통이 뒤섞여 있었다.
지연은 깊게 숨을 삼켰다.
“…민석 씨.
이제 숨기지 않을게요.”
그녀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지만,
단단했다.
“윤주랑… 새어머니가…
사장님을… 계단에서 밀었어요.”
민석의 표정은
순식간에 잿빛으로 변했다.
지연은 마지막 남은 진실을 꺼냈다.
“그리고…
민석 씨 어머님에게 있었던 일도…
이제는 말해야 해요.”
그 순간
지연은 속으로 무너져 말했다.
‘모든 진실은 결국 드러나는구나.
내가… 어리석었어.’
작가의 말
악은 언제나 조용히 다가온다.
미리 경고하지도 않고,
죄책감 따위도 없다.
사람의 틈을 기다리고,
균열을 찾아 비집고 들어오고,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린다.
지연이 막으려 했던 그 틈은
너무 작았고,
너무 빠르게 벌어졌다.
그리고 이제
숨겨졌던 모든 어둠이
한꺼번에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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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안내
〈겉과 속〉은 매주 화, 금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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