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사이렌의 밤
겉과 속 12화 — 붉은 사이렌의 밤
Written by 유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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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렌 두 개가 동시에 울렸다.
경찰차와 구급차가 골목 입구를 비집고 들어왔다.
붉은 불빛이 벽과 얼굴들을 번갈아 물들이며 출렁거렸다.
방금 전까지
“그래, 내가 밀었다고! 그래서 뭐?!”
라며 미친 듯 소리를 지르던 윤주는
순식간에 입을 닫았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말은 돌아갈 수 없었고,
그 말을 들은 사람도 돌아갈 수 없었다.
민석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사람처럼 서 있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한 채,
눈동자만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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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과 포위
형사가 골목을 가르며 다가왔다.
“여기, 신고하신 분이 누구죠?”
지연이 떨리는 손을 들었다.
“저… 제가…”
형사의 시선이 지연과 윤주, 새엄마를 차례대로 훑었다.
손에 쥐어진 여행용 가방,
한밤중,
도망치듯 서 있는 두 사람의 표정.
“출입국 기록 확인해야겠네요.
두 분, 어디 가시는 겁니까?”
윤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행이요. 이사 가는 거예요.
우리가 죄 지은 것도 아닌데,
나가면 안 돼요?”
목소리는 떨렸지만 어조는 뻔뻔했다.
새엄마가 덧붙였다.
“그러게요.
우린 그냥 사고를 당한 가족일 뿐인데…”
지연의 눈이 차갑게 가늘어졌다.
“사고 아니라고
아까… 분명하게 말했잖아요.
여기서 내가 다 들었어요.”
형사의 시선이 윤주에게 꽂혔다.
“무슨 말입니까?
방금 전에 무슨 얘기가 오갔죠?”
윤주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러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지연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본인이 직접 말했어요.
민석 씨 아버지를…
계단에서 밀었다고요.”
윤주가 이를 악물었다.
“저년이 사람 말 꼬아서—”
형사가 말을 끊었다.
“그 얘기,
조서에서 다 듣죠.”
수갑이 찰칵 소리를 내며 윤주의 손목을 감쌌다.
새엄마도 형사에게 붙들렸다.
윤주가 발버둥치며 외쳤다.
“놓으라니까!
죽을 인간이 먼저 죽은 거야!
나만 나쁜 척하지 마!!!
다들 알고 있었잖아!!!”
그 소리는
울음과 비명과 저주의 경계 어딘가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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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으로, 다시
경찰차가 떠나고,
남은 건 붉은 불빛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공기와
무너져가는 사람 하나였다.
민석.
지연이 조심스레 다가갔다.
“민석 씨…”
민석은 그제야 숨을 들이켰다.
오랫동안 물 속에 있다가 겨우 올라온 사람처럼.
“…아버지한테…
그렇게까지… 할 수가 있나…”
그 목소리는
분노도, 슬픔도, 절망도
무엇도 다 담지 못한 채 부서져 있었다.
지연은 말하지 못했다.
아무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병원… 가야 해요.”
결국 지연이 먼저 말했다.
“사장님…
지금 혼자 두면 안 돼요.”
그제야 민석이 고개를 들었다.
눈가에 번진 붉은 기운이
붉은 불빛보다 더 아프게 번졌다.
“그래요…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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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 앞, 숨이 멎는 시간
병원에 도착했을 때,
민석의 아버지는 이미 수술실 안에 들어가 있었다.
붉은 등.
닫힌 문.
“수술 중”이라는 차가운 글씨.
지연과 민석은
문 앞 복도, 그 차가운 바닥에
그냥 내려앉았다.
시간은 이상하게 흐르고 있었다.
너무 빠르고, 너무 느리게.
멀리서 의사의 구두 소리,
수술 도구 부딪히는 듯한 낮은 금속음,
환자 가족들의 흐느낌이
뒤섞여 머릿속을 긁었다.
민석이 입을 열었다.
“지연 씨.”
“네…”
“아버지는…
내 마지막 가족이었어요.”
‘있었어요.’
이미 과거형이었다.
지연은 가슴이 도려내지는 것 같았다.
민석은 손등으로 얼굴을 가렸다.
“어떻게 사람이…
자기 아버지를 그렇게…”
그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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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얼굴과, 떠오르는 기억
민석의 무너진 얼굴을 보자
지연의 가슴 안 깊은 곳에서
오래 묻어둔 장면들이 떠올랐다.
“너 때문에 망했어.”
“다 네 탓이야.”
“넌 재수 없는 애야.
있는 데서 다 망가져.”
어른들의 입에서 쏟아지던 말들.
교실 뒤편에서 웃고 있던 아이들.
젖은 운동화와 찢어진 우산.
아무도 찾으러 오지 않던 밤.
그때의 지연은
늘 혼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연은 손을 꼭 쥐었다.
이번에는
누군가의 세상이 무너질 때
혼자 두고 싶지 않았다.
민석이,
그가 붙잡고 있던 마지막 끈마저 놓아버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윤주와 새엄마의 발악
형사들이 병원으로 찾아왔다.
진술 정리와 상태 확인을 위해서였다.
“피의자 두 명은
현재 임시 유치 중입니다.
내일 오전 정식 조사 들어갈 겁니다.”
지연은 의자 끝에 앉아
형사의 말 하나하나를 들었다.
“계단 추락 당시 상황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지연이 숨을 들이켰다.
“사장님은…
지연 씨를 찾으면서 계단 쪽으로 가셨다고
윤주 씨와 새어머니가 말했어요.
근데—
그 말이 거짓이었다는 걸
제가 확인했어요.”
형사의 눈이 가늘어진다.
“어떻게요?”
“그날 밤…
그 둘이 도망치려는 걸 제가 막았어요.
그리고… 직접 들었어요.
‘그래, 내가 밀었다고. 내가 했어. 그래서 뭐?’
그렇게 말하는 걸.”
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록하겠습니다.”
잠시 후,
복도 끝에서 또 다른 형사가 뛰어왔다.
“윤주 씨가 조서 도중 난동을 부렸습니다.
‘늙은 인간 하나 정도 죽는 게 뭐가 문제냐’
그런 취지의 발언도 했고요.”
문장 하나가
가슴을 칼처럼 찔렀다.
민석의 주먹이 서서히 쥐어졌다.
손등 위로 핏줄이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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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의 선택
형사가 물었다.
“지연 씨.”
“네.”
“지연 씨가 아니었으면
이 사건은 ‘단순 실족사’로 끝났을 수도 있습니다.
기억하시죠?
처음엔 둘이
그렇게 주장했으니까요.”
지연은
민석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혼자 지키려고 했다가
더 크게 무너뜨린 건 아닐까.’
그 생각이
스스로를 계속 물어뜯고 있었다.
하지만 형사의 말이 이어졌다.
“누군가는 말해야 했습니다.
누군가는 제대로 봤다고,
제대로 들었다고 증언해야
누군가는 더 이상 같은 피해를 당하지 않겠죠.”
지연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저…
끝까지 말할게요.
제가 본 것, 들은 것,
다 말하겠어요.”
민석이 그 말을 듣고
지연을 잠시 바라봤다.
그 눈빛엔
고마움, 미안함, 슬픔이 뒤섞여 있었다.
“지연 씨…”
민석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혼자 버티게 해서…
이제 그만 미안해하고…
같이 버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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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 문이 열리기 직전
시간은 끝없이 늘어났다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복도 저편에서
의사 하나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지연의 심장은 시끄럽게 요동쳤다.
민석의 손이 아주 조금 떨렸다.
수술실 위 붉은 불빛이
서서히 꺼졌다.
의사의 발걸음이
두 사람 앞에서 멈췄다.
“가족분들…”
의사가 숨을 고르더니
입을 열었다.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공기마저
그 순간 함께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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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진실은,
늘 가장 숨 막히는 순간에 모습을 드러낸다.
누군가는 끝까지 숨기려 하고,
누군가는 끝까지 외면하려 한다.
하지만
누군가가 용기를 내어
“봤다”고, “들었다”고, “알고 있다”고 말하는 순간
이미 세상은
조금 달라져 있다.
지연과 민석이 맞이한 이 밤은
누군가의 죄가 드러난 시간이었고,
동시에 자신이 짊어져야 할 상처와
앞으로 마주해야 할 고통을 확인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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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안내
〈겉과 속〉은 매주 화, 금요일에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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