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과 속 13화

심연의 고백

by 유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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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과 속 13화 — 심연의 고백
Written by 유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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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향한 죄의 던짐


조사실은 숨이 막힐 만큼 차가웠다.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윤주와 엄마가 마주 앉아 있었다.
윤주는 고개를 흔들며 울먹였다.


“제가 그런 게 아니에요.
밀긴 했지만… 엄마가 시켜서 한 거예요!”


엄마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뭐라고?
네가 혼자 난리 피운 거잖아.
원래도 그 사람 싫다 했던 건 너였지!”


목소리가 높아졌다.
비난과 변명이 뒤엉킨 말들이
조사실의 공기를 거칠게 긁었다.


윤주의 눈이 번뜩였다.


“그래, 약 집어넣으라고 한 것도 엄마였잖아!
지연이 때문에 안 되니까
계단에서 밀자고 한 것도 엄마고!”


엄마가 벌떡 일어났다.


“그걸 왜 말해!
약 얘기는 입도 떼지 말랬잖아!”


그 순간,
조사실의 공기가 완전히 가라앉았다.


경찰이 고개를 들었다.


“약을… 넣었다고요?”


윤주와 엄마는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서로를 살리기 위해 던진 말들이
결국은
서로의 죄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병원 , 죽음의 문턱에서 열린 과거


같은 시각,
병원 복도는 밤처럼 어두웠다.


지연은 민석 옆에 앉아 있었다.
한참 전부터 같은 자세였지만
몸이 아니라 마음이 굳어 있었다.


민석은 침대 위의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아무 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의사가 조용히 말했다.


“지금이 고비입니다.
의식이 잠시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오랫동안 닫혀 있던 눈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사장님은 아들을 향해
힘겹게 입술을 움직였다.


“민석아…”


민석은 급히 몸을 숙여
그 손을 붙잡았다.


“아버지…
여기 있어요.”


그 모습을 보며
지연은 숨을 삼켰다.


이 장면이 민석의 기억에
어떤 상처로 남을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처럼.


사장님의 목소리는
숨에 섞여 갈라졌다.


“나는…
네 엄마에게…
너무 큰 죄를… 지었어…”


민석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어머니에게…
무슨…”


“그 여자가 임신했다고 했을 때…
나는 믿지 않았어…
지켜야 했는데…
외면했어…”


지연은
민석의 어깨가 무너지는 걸 보았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분명히 무너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야 벌을 받는 것 같구나…”


사장님은 다시 눈을 감았다.
심장은 아직 움직이고 있었지만,
말은 끝나버렸다.


민석은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흐느꼈다.


지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고백 앞에서는
어떤 위로도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신,
그의 손을 조용히 감쌌다.


심연으로 가라앉는 민석


민석은 얼굴을 감싸쥔 채 중얼거렸다.


“우리 집은…
왜 이렇게… 다 무너지는 거야…”


지연은 그 옆에 앉아
같은 바닥을 바라보았다.


과거의 자신이 겹쳐 보였다.
어른들의 말에 부서지고,
설명도 받지 못한 채
혼자 남겨졌던 시간들.


하지만 지금의 민석은
그때의 자신과
같지 않기를 바랐다.


민석이 지연을 바라보았다.
“지연 씨…
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해요…”


지연은 대답 대신
그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말보다
이 순간에 필요한 건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이었다.
경찰의 급한 발걸음
병실 문이 급하게 열렸다.


경찰 두 명이 들어왔다.


“방금 피의자 두 명이
서로에게 죄를 떠넘기다가
모든 사실을 실토했습니다.”
지연의 손끝이 떨렸다.


“약 투여,
계단 추락 모두
고의라는 진술이 확보됐습니다.”
민석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얼굴에는
이제 놀람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제
돌아갈 길은 없었다.


지연의 선택


경찰이 지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지연 씨가 아니었으면
이 사건은
단순 실족사로 끝났을 수도 있습니다.”


지연은
민석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혼자 지키려다
더 큰 진실을 불러온 건 아닐까
그 생각이
여전히 가슴을 찔렀다.


그러나 경찰의 말이 이어졌다.
“누군가는 말해야 했습니다.
봤다고, 들었다고.”


지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끝까지 말할게요.
제가 본 것,
제가 들은 것…
다요.”


민석이 지연을 바라보았다.


“이제…
같이 버텨요.”


그 말에
지연은 처음으로
고개를 숙인 채
울음을 삼켰다


작가의 말


붕괴는
폭발하는 순간보다
폭발 전의 고요가 더 아프다.


진실은 언제나
가장 견디기 힘든 순간에 모습을 드러내고,


누군가는
그 진실을 말한 대가로
오랫동안 흔들린다.


지연은
끝내 혼자 지키려 하지 않았고,
민석은
끝내 혼자 무너지지 않았다.


어둠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이제 그들은
혼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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