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샀는데 선물 받은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

by 소라

6평 남짓한 내 방 안에서 가장 애정 하는 것들을 소개합니다.


첫 번째. 봉투와 포장지.



소품이나 잡화를 구입할 때 쌓여있었던 포장지 및 랩핑지들. 패키지자체가 감성적이라 모아두는 중.

제 방 책장 한편엔 제법 다양한 포장지나 봉투들이 모여있어요. 문구점에서 구매한 얇은 황색 봉투, 재질 좋은 두꺼운 편지봉투, 소품샵에서 받은 빈티지스러운 호두과자 봉투나 귀여운 동물그림이 그려진 포장지, 반들반들한 유산지 봉투, 자체 제작한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담긴듯한 패키지 봉투들. 개수가 엄청 많은 건 아니기에 하나하나 봉투들을 보면 어디에서 무얼 구매했고, 어떤 제품을 담았었고, 쇼핑하던 그날의 기분이 어땠는지가 기억나요. 딱히 다이어리에 적지 않아도 그날 누구와 같이 갔었는지, 어떤 걸 골라 담았는지, 샵의 인테리어는 어떤 느낌 었는지, 하다못해 소품샵의 경우 사장님이 어떤 마스킹 테이프를 붙여 주셨었는지도! 그래서 저 마스킹 테이프도 같이 살 걸 그랬나, 싶었던 순간들까지.


사소한 기억들 하나하나가 기록이 되어, 글이 아닌 패키징 자체로 나에겐 하나의 오브제가 되어주었어요.


내 돈을 주고 샀지만 선물 받은 듯한 감동적인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 저는 일부러 감각적인 디자인 패킹이나 빈티지스러운 느낌의 샵을 찾곤 해요. 물론 마음에 드는 제품 자체를 구입하는 것 자체가 나를 위한 선물이라고 볼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건 전달하기 위한 마음 아닐까요. 아끼는 상대에게 편지를 써 줄 때도 고심 끝에 고른 편지지에 또박또박 적어 내려 가 편지지 가득 채워진 마음이 귀여운 그림이나 심플한 디자인에 쌓여 전달되잖아요. 편지지와 편지봉투가 한 세트인 건 마음을 전해 줄 편지지도 중요하지만 한번 더 소중하게 보관하라고 봉투를 같이 세트로 주는 게 아닐까 싶어요. 내 마음을 한번 더 고이 접어 보내라고. 봉투 안에 박제된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해달라고. 감각적인 제품 패키징도 그런 류의 의미 아닐까요. 판매자의 제품을 대하는 마인드가 그리고 소비자를 위한 마음이 애정 어린 손길로 예쁘게 포장되어 우리에게 오겠죠. 그래서 저는 선물 받은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땐 빈티지스럽거나 감각적인 느낌의 샵을 찾아보곤 한답니다.


바스락거리는 포장지 소리. 빈티지스러운 엽서나 카드. 그리고 고르고 골라 제일 마음에 드는 걸로 구입한 나의 작은 소품까지.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기성품들이나 대량생산되는 제품들은 제품의 사진이 크게 박힌 박스 포장 혹은 투명한 비닐에 제품만 덩그러니 들어있는데 요즈음의 1인 브랜드들은 갈수록 패키징을 어떻게 완벽하게 구현해내야 할까,를 고민 중인 것 같아요. 제품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제품을 감싸고 있는 포장지에도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내며 어필하려고 하는 모습이 보이거든요. 제품 자체에 대한 후기도 중요하지만 제품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이 sns를 탐색하는 소비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단 한 컷으로 무드가 느껴지는 사진 때문 일거예요.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고 하지만 우리는 늘 아름답고 심미적인 것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니까요. 저처럼 아기자기한 소품, 러블리한 아이템을 좋아한다면 더욱더 겉모습에 현혹되기 쉽죠.


사람에게도 첫인상은 중요하지만 사물에게도 첫인상은 중요한 것 같아요. 마음에 드는 아이템은 정말 수많은 사진이 아니라 단 한 장의 사진만으로도 ‘이건 내가 사야 해’라고 말하고 싶은, 내 방에 두고 싶은 제품임을 딱 알아볼 수 있거든요. 웹상의 수많은 쇼핑몰들은 다양한 각도로, 다양한 아이템과 매치하여 사진으로 판매하고자 하는 제품의 사진을 공들여 찍어 올리고 있어요. 누구나 예쁜 것을 좋아하니까. 글로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사진 한 장에서 “이렇게 예쁘고 러블리한 무드의 아이템인데, 이렇게 시크하고 모던한 느낌이 묻어나는 아이템인데 사지 않겠어? “라고 말하는 것 같지 않나요? 그렇기 때문에 제품의 겉모습과도 같은 패킹도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인스타그램의 브랜드 계정들을 둘러보면 제품을 보이기 전, 패키지 자체만으로도 감성적인 사진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패킹을 해줘야 할지, 에 대한 브랜드들의 고민도 엿볼 수 있답니다. 특히, 액세서리나 주얼리 브랜드의 경우 제품 박스나 소포장을 고급스럽게 제작하여 택배 상자처럼 꺼내고 버리는 것이 아닌 패킹 자체도 하나의 소품으로 꾸며 둘 수 있는 용도로 만드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저처럼 패키지도 모으는 사람들은 사실 그 자체로도 이미 해당 브랜드의 광고에 노출되고 있는 것과 다름없죠. 그럼에도 저는 이런 예쁜 패키징들이 너무 좋아서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을 줄 때도 나름대로 예쁘게 포장해서 주려고 해요.


포장지나 봉투를 그렇게 모아뒀다가 언제 쓸래, 싶을지 모르지만 지금 갖고 있는 패키징을 골라 친구들의 선물을 담아 내 스타일로 꾸며서 다시 선물할 수도 있고, 괜히 휑해 보이는 벽지에 엽서나 포스터를 붙이듯 예쁜 포장지들을 붙여 인테리어 효과를 줄 수 도 있고 지금처럼 그냥 이유 없이 꺼내보아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차분하게 마음을 안정시킬 수도 있어요. 다이어리에 붙여 어떤 제품을 샀는지 기록하거나 혹은 다이어리 꾸미기 자체에도 사용할 수 있고요.


돌아가신 할머니의 오랜 수집 취미를 살짝 닮은 구석도 있는 것 같아요. 할머니는 언제나 창고에 포장지나 다시 쓸 수 있을 것 같은 걸 모아두곤 하셨는데 저 또한 다람쥐가 도토리 모으듯이 이거 저거 쉽게 버리지는 못하는 타입이거든요. 언제부터 내가 내 방을 꾸미는 것에 관심이 생긴 건지는 모르겠는데 최근 일 년여간 방 안 곳곳에 좋아하는 것들을 두었어요. 디퓨저, 빈티지 램프, 커튼, 마스킹 테이프와 문구 수납함, 블루투스 스피커, 우드로 된 보석함, 좋아하는 시집이나 소설책들.... 힐링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위해 좋아하는 것들을 꾸준히 모아보려고 해요. 다 추억이 담겨있는 기억저장소라고 봐도 될 거 같아요. 사진 속 호두과자 봉투에는 친구에게 줄 욕 토끼 엽서와 미니언즈 볼펜을 담았었고, 빳빳한 반투명 재질의 봉투에는 삼청동 오브젝트에서 구입한 예쁜 모빌이 들어있었어요. 작은 동물친구들이 그려진 포장지에는 망원동 소품샵에서 구매했던 마스킹 테이프를 담았었고 나비가 그려진 책 페이지가 담긴 반투명 패키징엔 예쁜 귀걸이와 반지가 들어있었지요.

굳이 글로 기록하지 않아도 이렇게도 아카이빙 할 수 있어요.

벽 한켠에 걸어둔 작은 모빌과 모아놓았던 패키징

첫 번째 페이보릿 띵스. 봉투와 포장지. 그중에서도 가장 애정 하는 봉투는 수영하는 소녀가 들어있는 파도 봉투예요. 삼청동에 갔다가 소품샵 구경 중 우연히 구매하게 된 제품인데 보자마자 이건 방에 달아야겠다, 싶었어요. 그날은 날도 적당이 좋았고 전날 대학교 친구들과 육회랑 소주를 마시고 친구 자취방에서 푹 자고 나와 늦은 산책을 위해 삼청동에 놀러 갔던 날이었어요. 가을이었던 거 같은데 계절 이름에서부터 폭닥 폭닥하고 적당히 서늘한 계절 내음이 느껴지는 것 같네요. 느긋하게 돌아다니다가 현대미술관 쪽 오설록에 가서 음료도 마시고 갤러리들이 꽤 있어서 무료 전시 갤러리도 구경 가고 삼청동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끊이지 않는 다양한 주제들로 이야기를 나누고 그랬었어요. 일기장에 박제해 두고 싶은 기억이 있는 가 하면 이렇게 가물가물해져도 재밌었는데, 하는 추억으로만 남기고 싶은 날들도 있어요. 삼청동에서의 하루는 추억으로 남기기 적당했던 것 같아요. 추억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간다는 말처럼 그런 기억들이 생각나서 앞으로도 봉투나 포장지는 계속 모으게 될 거 같아요.


fin


다정하게 읽어주고 공감과 댓글을 남겨주시는 분들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덕분에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져요.

keyword
소라 가족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에세이스트 프로필
팔로워 2,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