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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이 보장된 곳, 일주일만에 박차고 나온 이유

by 리케lykke

https://youtu.be/cd9xhDO5WNE



2023년, 나는 서울의 한 문화재단 6급 정규직 과장으로 입사했다. 대형 방송국을 급히 퇴사하며 이직한 직장인만큼 기대도 컸다. 이젠 정년도 보장되었으니 안정적인 삶을 이어갈 수 있을거란 희망에 드디어 나도 탄탄대로가 되는구나 싶었다. 보통의 문화재단은 필기시험을 치르지만 내가 입사한 곳은 필기시험 대신 자기소개 ppt를 진행했다. 1차 서류전형 통과자에 한해 5분간의 ppt 발표를 한 후 곧바로 면접관 3명 : 면접자 1명으로 대면 면접을 했다. 서류부터 최종합격까지 거의 한달의 시간이 소요되는데 그 시간은 정말이지 인고의 시간이었다. 합격했으면 좋겠다. 떨어지면 어쩌지? 아니야 너무 걱정하지 말자. 떨어져도 괜찮아. 다른 곳에 또 지원하면 되지. 매일매일 요동치는 내 마음을 다잡으려 애썼다. 드디어 기다리던 합격자 발표 날, 아침부터 들락날락 그 곳의 홈페이지를 몇번이나 새로고침 했는지 모른다. 속타는 마음을 알면서 일부러 갖고노는것 마냥 오후 5시가 넘어서야 최종 합격자 명단이 떴다. 재빨리 스크롤을 내려 합격자 명단을 확인했고 그 곳에 내 이름 석자를 본 순간 입을 틀어막고 내적 환호성을 질렀다.



문화재단은 구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나라에서 예산을 받는다.그러니 준 공무원 신분 같은거라 입사시 공무원채용신체검사서 등 꽤 많은 서류를 제출해야한다. 그 많은 서류를 제출함에도 귀찮은 기색 하나 없었다. 나는 이제 정년이 보장된 사람이니까 말이다. 첫 출근을 한지 삼일째였을까 매달 1회, 전 직원이 참석하는 월간보고회에서 임명장을 받았고 채용된 입사자 중 가장 급수가 높은 내가 대표로 감사 인사를 했다. 다소 늦은 나이지만 오로지 나의 실력만으로 이 곳에 출근할 수 있게 된 것에 얼마나 많은 자부심을 가졌는지 모른다. 더 빨리 적응하고 인정받아 조직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갑작스럽게 이직하면서 출퇴근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 자차로 1시간 10분을 이동해야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문제는 건물 내 주차할 수가 없었다. 주차지원은 되는지, 등록은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아보러 담당 부서에 가 문의했는데 직원용 주차 자리가 남은게 없으니 기다리라고 했다. 대기를 할 수 있게 이름을 올려달라고 요청했는데 그런 명단이 없다고 했다. 명단이 없는데 뭘 어떻게 마냥 기다리라는걸까? 그럼 대기자의 순서는 기록된 것 없이 임의대로 진행하는건가? 일처리가 왜 이런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찌보면 그건 빙산의 일각..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회사 내 구내 식당은 물론 근처에도 먹을만한 식당이 없어 밥을 먹으러 15분 정도 걸어나갔는데 돌아오는 15분까지 생각하면 음식이 나와 먹는시간까지 30분동안 허겁지겁 점심을 해치워야했다. 이런 사항을 고려해 점심시간을 좀 더 유연하게 운영해주면 좋을텐데 그런게 없었다. 탕비실은 당연히 없었고 책상위의 모니터는 살면서 처음 본 정사각형의 모니터였는데 그야말로 유물 같았다.



입사할때 사내 분위기도 굉장히 어수선 했었다. 뜬금없는 부서이동 때문이었는데 회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직원이 회계과장으로 발령이 났고 사람이 필요한 곳에 있던 직원을 빼버리는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 같은 상황이었다. 며칠 있다보니 대표의 안하무인스러운 행태도 알게 되었다. 회의 시간을 마음대로 바꾸는 것은 물론 별 것 아닌것까지 모두 보고하도록 해 보고를 하려 대표실 밖에서 1시간 이상 기다리는 직원도 많았다. 몇명이 줄서 있는 모습을 보니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회의에 들어가면 쌍욕을 하며 면전에다 서류를 찢어 던지기도 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지금이 80년대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금요일 퇴근 10분 전에 일을 시키고 야근을 하지 않는 직원은 게으른 사람 취급한다고도 했다. 출근한지 5일차가 되던 날, 나는 내 업무가 아닌 일을 했다. 갑자기 운전을 시켰는데 그것까진 그럴 수 있다 치자. 본부장인 그는 본인의 개인 일정을 위한 장소에 내려다 달라고 했다.



한달 최대 17시간의 야근시간을 넘길 수 없게 규정되어 있지만 많은 직원이 매달 30시간가량 야근해 13시간은 수당 없이 야근을 하는 곳, 뜬금없는 부서로 발령 내 업무 효율이 엉망인 곳, 버벅거리는 컴퓨터라 내 컴퓨터를 가져가 작업해야 하는 곳...그래도 참을 수 있다. 그만큼의 연봉을 준다면 말이다. 채용공고를 보면 연봉 2300~4500 선으로 게시되어 있었던터라 연봉에 대해선 상식적이겠지... 생각했었다. 그 부질없는 희망도 와장창 깨어진건 입사한지 6일째 되었을때다. 연봉협상이란 걸 하게 되었는데 정확히는 연봉통보라고 봐도 무방하다. 어쨌든 적어도 3천은 넘을거란 내 예상과 달린 책정된 연봉이 2300만원이었다. 2300만원? 이건 야근 수당을 꽉 채워서 실제 내가 받는 급여를 대충 예상해봐도 납득할수 없는 수준이었다. 9급 신입도 아니고 6급 과장인데 이게 말이 되는걸까? 그럼 9급은 얼마를 받고 일을 한단말일까. 미친듯한 업무량, 말이 통하지 않는 대표가 있어도 보장된 정년이 있으니 연봉만 적당하다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던 나는 뒤통수를 쎄게 맞은 기분이었다.



퇴사를 결심하고 팀장에게 보고했다. 착하디 착한 팀장은 13년넘게 일한 그곳에서 여전히 연봉 4천만원이 넘지 않는 돈을 받고 있다고 했다. 첫 직장이었고 다른 곳에서 일한적이 없어 원래 다 그런거 아니냐고 했다. 나는 정년이고 뭐고 미래가 불투명한 곳엔 더 이상 있을수 없었다. 대표는 마지막으로 나와 이야기 하길 원했고 나는 왜 그만두는지 조심스레 말을 했다. 온화한 표정으로 내 이야기를 듣던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서울대나 카이스트 출신들과 일을 많이 해봤어요. 청와대 사람들과도 일해보고 똑똑한 사람들과 일을 많이 했는데 여기 직원들은 머리가 나빠서 일을 못해요. 그래서 많이 다그치게 되네요. 나는 9급부터 지금까지 올라온 사람입니다. 다 할 수 있는데 안하는 겁니다. 업무 환경에 대해서도 불만이 있는 듯 한데 이 곳은 다른 곳보다 좋은 편입니다



라고 말이다. 그런저런 불편함이 있으면 함께 개선해보자..가 대표의 마인드 아닌가? 자기 세계에 강하게 빠져있는 그 대표는 여전히 그곳의 대표다. 이런 저런 불미스러운 말이 제법 많이 나왔지만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렇게 일주일만에 퇴사할줄 알았으면 내 인생이 덜 꼬였을텐데 싶은 마음이 들지만 이미 벌어진 일,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곳을 퇴사한 건 후회하지 않는다. 아닌 것은 빨리 털어내고 다음 스텝을 찾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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