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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la Sep 17. 2016

[트레바리 문] 호밀밭의 파수꾼 by J.D. 샐린저

"마지막 문장을 기억해?"

“선생님은 어렸을 때 꿈이 뭐였어요?”
“글쎄, 호밀밭의 파수꾼. 이었던 것 같은데?”


중학교 3학년, 졸업하기 전 국어 선생님과의 저녁식사에서였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처음 알게 된 건. 그 때 선생님과의 대화가 아직도 생각난다. 바다가 보이는 어느 식당에서 선생님은 정말 선생님답게 <호밀밭의 파수꾼>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그럼 선생님은 꿈을 이룬 거네요! 라고 호들갑을 떨던 나를 보며 멋쩍게 웃던 선생님의 모습이 흐릿흐릿하다.


책을 집어든 건 고등학교1학년 때였다. 열일곱살의 나는 기숙사에 갇혀 가고싶은 대학도 없이 소설책만 읽고 있었던 잉여 중의 잉여였다. 하고싶은 말들을 꽁꽁 감추고 늘 도망갈 궁리만 하고 있었지. 그런 내게 홀든은 대변인과도 같았다. 또래 친구들,어른들, 규범, 타인의 시선, 타인을 보는 나의 시선에 대한 그 거침없는 문장들이 좋았다. 화가 잔뜩 나 있지만 뾰족한 말들을 입밖으로 내놓지 못하던 내 대신 시원하게 욕을 내뱉어주는 것 같은.


대학에 가기 싫다고 버티다 등 떠밀려 입학한 영문학부.스무살의 떨림은 아주 잠시였다. 못하는 술, 이해가지 않는 룰, 여자애들의 명품백 이야기,남자애들의 어젯밤 이야기.모두가 괜찮아 보이는데 나만 적응을 못하는 것 같았던 서울.스무살, 어른? 글쎄, 어찌됐든 난 고아처럼 혼자였다. 그 때 다시 읽었던 책, 스무살에 만난 홀든은 지독하게 외로워보였다. 마음을 나누기는 커녕 둘 곳도 없는 소외된 개인. 돌아갈 곳이 없어 돌아다녀야 하는 방황하는 청춘.


이십대의 마지막, 오랜만에 이 책을 다시 꺼내들었다. 해가 지지 않는 백야의 헬싱키, 조용한 호텔 방에서의 재회.


나는 늘 홀든을 좋아했다. ‘아 타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택시를 타고,공연을 보면서 저 인간이 피아노를 잘 치네 못 치네 따지고, 겁은 많은 주제에 참을성도 없고, 그래서인지 정직하고, 하지만 자존심은 센, 게다가 그런 자신을 모르지는 않아서 조금이라도 편하게 지내보려 우스운 사람인 척 하다 결국 그마저 포기하고 마는. 이 복잡하고 까탈스러운 친구가 참 맘에 들었다. 날 닮았네,싶어 위로가 되었달까.


“<호밀밭의 파수꾼>의 마지막 문장을 기억해?”


몇 년간 소식없이 지냈던, 실은 내가 일방적으로 도망쳤던 한 친구에게서 온 딱 한 문장의 이메일.그 자식은 늘 이런 식이었다. 섬약하다 못해 조악한 마음을 가졌지만 마음만 먹으면 세상에서 가장 예쁜 글로 이를 포장할 수 있는.


왜 하필이면<호밀밭의 파수꾼>이었을까. 왜 하필이면 그 마지막 문장을 기억하냐고 물었을까. 곰곰히 생각했다.언젠가 홀든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었다.홀든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던 내게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보라고, 영화 <봄날은 간다>처럼 인생의 단계별로 책의 느낌이 다르단 말을 했었다. 넌 예전만큼 홀든을 좋아하지 않을거라는 말도 덧붙였지.


이번에 다시 책을 읽으면서 그 친구의 말이 계속 생각났다. 회사를 다니고, 규범에 적응하고,충분히 화가 날 일들도 넘어가려 애쓰고, 무엇보다 이제는 혼자가 익숙한 나에게 홀든은 분명 또다른 느낌이었으니까. 홀든 같은 친구가 옆에 있다면 난 분명 도망칠 것이다. 그리고 그 친구는 본인을 홀든에 빗댄 것이겠지. 영리하게.


열일곱, 그리고 스무살의 나의 표상이었던 홀든이 어느샌가 불편한 사람으로 다가온다는 건 참 쓰다. 방황과 반항, 고독과 소외를 마주하기 보다는 외면하고 싶어하는 스물아홉의 나.그 시절의 나와 홀든은 이런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Phony? 아마도.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말을 하면 그 순간 모두가 다 그리워지기 시작할 테니까.”

라고 답장을 보냈지만 그 친구와 나는 지금도 남이다.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 친구가 별로 보고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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