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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la Sep 17. 2016

[트레바리 문] 소년이 온다 by 한강

산 자여, 고개를 들라.

광주. 나의 흐릿한 소녀시절을 보냈던 도시.


이제는 기억이 잘 안나는 친구들을 만났던 학교 .한겨레신문이 비치되어 있던 교실. 엄마가 다니던 회사가 있었다던 도청. 오빠랑 종종 놀러가던 전대 후문. 버스 대기시간 동안 죽치고 앉아있던 터미널 안 영풍문고. 기숙사 외박주 마다 혼자 영화를 봤던 콜럼버스영화관.


36년 전, 바로 그 도시에서 일어난 일이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남자건, 여자건, 아이건, 노인이건,  그리고 젊은이라면 무조건, 죽였다. 영문을 알건 모르건 중요하지 않았다. 자유와 평등, 지금 우리가  옆동네 친구 이름이라도 되는 것 처럼 쉽게 부르는 그 이름 민주주의를 외쳤단 이유로, 그리고 그 외침이 일어난 도시에 살고있단 이유 하나로, 사람들은 칼에 찔리고, 총에 맞았다.


그리고 그 곳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다. 그 거리, 그학교, 그 도시와 함께 남겨진 사람들이.


남겨진 이들의 삶은 고단하다. 아무리 멋진 일이 생겨도 자랑할 수 없다. 첫 월급을 받았는데 밥 한 번을 못산다. 물어보고 싶은게 산더미인데 전화도 안 받는다. 산사람은 살아야지 하고 물건들을 버리려다 다시 주섬주섬. 보고싶은 거야 괜찮아진다 쳐도, 괜찮아지는게 되려 더 미안해 기억을 뒤적거린다. 스스로 불행의 당위를 찾아서.


책 속 남겨진 이들은 더 그렇다. “왜 당신은 살아있습니까.” 라는 질문 앞에서 당당하지 못하다. 살아남았다는 기쁨을 만끽하지 못하고, 떠나간 이들을 애틋한 마음만으로 그리워하지 못하고, 도망가고, 숨고, 원망할 이를 찾다가 결국엔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고개 숙인다. 참 애석하지 않나. 죽인이는 떳떳한데 죽지않은 이는 움츠러들어있다는 것이.


책을 읽으면서 중간중간 많이 쉬었다. 모두가 느꼈을 이런 저런 감정들을 페이지와 함께 넘겼지만 결국엔 이해할 수 밖에 없는 그 마음이 싫었다. 결국엔 자책하게 되고야 마는 남겨진 사람들의 숙명 같은 그 죄책감에서 너도 나도 진수도 은숙이도 동호도 자유로웠으면 좋겠는데. 다들 하나 같이 자기탓만 하고 있더라.


나의 12년,그들의 36년이 흘렀다.비가 온다. 가물가물한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그 냄새가 어디서 나는 것 같다.코가 맵다고 훌쩍거리며 아빠 품에 파고들어가게 했던 그냄새.


그래도 언젠가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고개를 들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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