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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la Jan 16. 2023

출산율이 오를 수 없는 이유

그 많던 전교 1등 여학생들은 어디 갔을까?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그 많던 전교 1등 여학생들은 어디 갔을까?

숙명여고 쌍둥이 여학생들도 궁금해졌습니다. 답안지를 베껴서, 전교 1등을 해서, 그 담에 어떻게 살려고 했을까?


수 백년 간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자는 남자와 동등한 인간으로 취급을 못 받았지만,

근대에 들어와서는 급진적인 여권 신장으로 오늘날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과 동일한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초중고에서 남녀 가릴 것 없이 모두 부모님의 서포트 아래 공부만 잘하면 됩니다. 동일한 조건 아래 여자들이 훨씬 아웃풋이 좋은 것 같습니다. 요즘 아들맘들 사이에서는 남녀공학보다 남고를 보내는 것이 내신 관리에 더 좋다는 말이 나오니까요.  


대체로 대학을 가고 직장에서 4-5년 정도 일할 때까지는 남녀 사이에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애를 낳으면 게임의 룰이 완전히 바뀝니다. 어떻게 해야 1등을 할 수 있는 지에 대한 룰이 바뀌면서 혼란스럽고 우울해집니다. 저는 일반적인 고학력 여성의 대부분이 집단적인 우울감을 호소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육아:살림 = 100: 0: 0

-> 결혼해야지, 애 낳아야지... 여자가 일만 해서 뭐해... 노처녀네...난자가 늙으면 기형아 출산율 올라간다던데...등등등... 끝이 없습니다.... 그리고 결국 언젠가는 부딪히는 유리천장...



일:육아:살림 = 80:20:20

-> 어떻게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육아와 살림은 늙은 여자 (친정 엄마나 시엄마, 혹은 시터)에게 맡기고 일을 열심히 합니다. 하지만 애기가 집에 있는데 온종일 밖에서 일을 하는 엄마라니... 주변 전업 엄마들이 수근수근... 엄마 회사 가지마~~~ 하는 아이를 보면 또 죄책감에 스트레스... 근데 애 두고 회사 나가는 아빠는 이런 스트레스가 없죠? 결국 아이가 발달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으면 화살은 엄마에게 쏟아지고 엄마가 일을 그만둡니다.



일: 육아: 살림 = 60: 60: 60

-> 전교 1등한테 일을 60%만 하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시간만 충분히 주면 최선을 다해서 올 100점 맞을 수 있는데! 옆에 있는 남자 대리보다 내가 일 처리를 훨씬 잘하는데! 스스로 일을 더 열심히 잘하길 포기합니다. 회사에서 에너지를 60% 써야 집에 가서 또 육아와 살림을 60%정도 할 수 있습니다. 아이는 나의 행복이자 기쁨이다 라고 스스로를 세뇌하며 집으로 헐레벌떡 뛰어와 저녁밥을 차립니다. 육아와 살림을 60% 밖에 못하는 것 또한 성에 안 찹니다. 그리고 죄책감이 듭니다. 난 언제나 100%, 아니 120%를 해서 전교 1등을 해왔던 여자니까요. 내가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좌절감에 시달립니다. 학창 시절보다 더 힘들게 하루하루를 사는데 아무도 상장을 주지 않습니다. 남편이나 나나 똑같이 공부했는데 왜 나만 엄마라서 이렇게 더 많은 책임을 안고 살아야 하나 싶습니다. 남편은 아침밥을 차려줄 것을 은연중에 요구하고 집안이 어지럽혀져 있으면 잔소리를 합니다. 돌봄 노동은 전통적으로 여자의 영역이니까요. 아무리 같이 육아와 살림을 남편과 같이 한다고 해도 육아와 살림에 대한 전적인 책임자는 아내입니다. 남편은 별 고민 없이 몸만 쓰고 끝낼 수 있는 일들을 수동적으로 할당 받아서 합니다. 돈을 써서 집안일을 다른 여자에게 일부 아웃소싱하면 좀 나아지긴 하는데 차라리 일을 그만두고 육아와 살림을 하는 게 더 나은 장사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일:육아:살림 = 0: 100: 100

-> 일을 제대로 못하고 (돈도 많이 못 벌고) 육아도 제대로 못할 바에 그냥 일 그만두고 육아와 살림에 전념합니다. 하지만 육아와 살림은 내가 투입하는 에너지에 비례해서 성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나의 의식주 수준은 오로지 남편의 경제력에 좌지우지 됩니다. 그래서 여자들이 외모에 목숨을 걸 수 밖에 없습니다. 어차피 육아와 살림은 모든 여자들이 똑같이 하는 것이고 돈이 많은 혹은 돈을 잘 버는 남자의 눈에 들어 결혼을 해야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여자들이 화장품과 옷으로 치장하는 데에 신경 쓰는 것은 다 이유가 있긴 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가정 내에서의 권력 관계는 돈으로 만들어집니다. 아무리 집에서 돌봄노동을 많이 하더라도 그 가치는 딱히 환전 할 수 없는 가치가 됩니다. 아무도 정말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 여자라고 생각 안하죠. 그저 집에서 노는 아줌마일 뿐입니다.




제가 주변에 많은 케이스를 관찰하면서 내린 결과입니다. 고등교육을 받은 여자들은 거의 대체로 저 4개의 카테고리에 들어갑니다. 중간 중간 행복한 순간들이 분명 있겠지만 대체로 우울할 겁니다. 저도 당연히 그렇습니다. 그것은 육아나 살림을 함께 하지 않는 남편을 만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만성 우울감은 중고등학교에서 전교 1등을 했을 때부터 이미 예정된 것이었을 겁니다. 내가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는다는 믿음. 열심히 하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믿음. 열심히 공부를 해서 모든 시험 문제를 다 맞히면 1등을 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우울감으로 직결될 수 밖에 없습니다.


워킹맘이 되어 워킹맘이 따라야하는 게임의 룰을 파악하고 나니 이 게임에서는 1등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절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어른도 이를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래도 남자 노예보다도 더 낮은 수준의 존재로 취급 받았던 과거보다 지금 시대에 태어난 것은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겠죠? 돈을 벌지 않는 여자에게는 맘충이니 퐁퐁이니 아줌마니 뭐니 비하하면서 막상 여자들이 사회에서 일을 제대로 해보려고 하면 또 여자의 전통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고 비난합니다. 대놓고 비난하지는 않아도 은연중에 여자에게 훨씬 더 많은 책임을 줍니다. 여기에 출산율이 급하락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육아나 살림은 포기해도 그만이고 전교 1등했던 내 머리와 치열한 노력으로 사회에서 한자리 차지하며 내가 항상 그렸던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 싶죠.  


출산율을 다시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육아와 살림의 가치를 재정의 해야 합니다. 그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 가정 내에서의 돌봄 노동이란 매우 높은 수준의 기획력과 끈기가 있어야 잘 해낼 수 있다는 것. 가정 내 돌봄이 있어야 사회가 생산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너무 이기적이고 어리석어서 당장 눈앞에서 돈으로 환전가능한 것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밖에 나가 벌어오는 돈만이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재밌는 것은 남자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고 여자도 스스로의 돌봄 노동의 가치를 낮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무튼 이러한 이유로 출산율을 다시 올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중고등학교에서의 교육을 뜯어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뭐 이것도 안되겠죠.


집단 우울증에 걸린 여자들이 길러내는 아이들의 미래는 어떨까요? 저는 현재 아들을 키우고 있지만 딸을 키우는 워킹맘들은 어떤 심정으로 아이를 키울지 궁금합니다. 씁쓸하지만 어쨋든 이왕 이렇게 여자로 태어나버렸으니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게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뭘 하든 사회는 탐탁치 않아합니다. 수 없이 많은 똑똑한 여자들이 아주 옛날부터 비교적 최근까지 멸시 당하고 무시당했음에도 덕분에 그래도 이렇게나마 여자도 남자와 같은 책상에 앉아 공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태어날 여자들은 이런 좌절감을 느끼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면서도 죄책감과 우울감 없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오늘날 여자 어른이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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