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관찰일지 1 - 사카에씨
사람관찰일지1 - 사카에씨
사카에씨는 내가 자주 가던 도쿄 선술집의 주인장 아주머니이다. 일본생활 초기에 살던 도쿄의 기숙사는 전통적인 주택가로 유명한 세타가야구에 있었는데, 글쎄 모르겠다, 서울로 치자면 송파구 정도라고 할 수 있을까? 강남구는 너무 부내나는 것 같고, 서초구는 과열된 느낌이라 주택가가 많은 송파구가 어울릴 것 같다. 도쿄에서 면적이 가장 넓은 구인데, "어디 사니?" 라는 말에, "세타가야예요" 라고 대답하면, 대부분은 "아, 좋은 데 사는구나" 라는 말을 듣는다. 좋은 데, 라는 말은 집값이 비싼 고급 주택가라는 뜻도 있겠지만 치안이 좋고 슈퍼나 체육시설, 학교가 많은, 공원이나 녹지가 넓어 자연이 가까운 동네라는 뜻이기도 하다.
당시 나는 유학생들을 위한 기숙사에서 살고 있었는데, 80여개국에서 온 300명 이상의 외국인 학생들이 모여 사는 꽤 큰 규모의 건물이었다. 지하철 역까지는 거리가 좀 있어서 걸으면 25분 정도, 자전거로도 10분 이상이 걸렸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은 기숙사생 거의 모두 자전거를 타고 지하철 역까지 가서, 역 앞에 있는 자전거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우고 지하철로 각자의 학교로 등교를 했다. 자전거 주차장은 월 1800엔 정도를 정액제로 내거나 혹은 1일 사용권으로 100엔을 내거나 했는데, 그 100엔이 아까워서 가끔 슈퍼앞이나 편의점 앞에 무단 주차를 했다가는 운이 나쁜 날 자전거 단속반들에게 철거를 당하는 일이 있었다. 저녁에 돌아와 자전거가 없어진 경우에는 도둑맞았다기 보다는 대부분 단속을 당한 것인데, 사나흘 뒤에 집으로 철거안내 엽서가 도착하면 그 엽서를 들고 자전거 보관소에 가서 3000엔을 내고 자전거를 찾아와야 했다.(일본은 자전거를 구입할 때 소유자 등록이 의무이고, 자전거 차체에 반드시 등록필 스티커를 붙여야 한다) 그렇게 나도 매일 아침 저녁으로 기숙사에서 전철역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그 등굣길 어느 모퉁이에 얌전히 간판을 내 건 '사카에'라는 가게가 있었다.
햇빛에 바랜 노렌(일본의 가게 입구에 치는 영업중을 알리는 천으로 된 발)이 드리운 '사카에'는 간유리를 끼운 미닫이 문이 있는 가게였다. 입구는 좁은 편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안쪽으로 깊이가 있는 직사각형 모양이었는데, 오른쪽에는 길게 뻗은 카운터가 있었고, 두 명이 앉는 테이블은 왼쪽에 서너개, 제일 안쪽 구석에는 화장실이 있고, 주방은 카운터 안쪽에 있었다. 그 주방에서 사카에라는 이름을 가진 60대 후반 정도의 아주머니가 그날 그날 들어온 재료들로 식사거리와 술, 안주를 내었다. 술은 생맥주와 몇 가지 종류의 소주, 네댓가지의 일본술 정도로, 사카에씨가 서 있는 뒷 벽에는 단골들이 키핑한 25도짜리 진로 댓병들이 각자의 이름이 쓰인 목걸이를 건 채로 꽉꽉 늘어서 있었는데 '심야 식당'같은 일본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그런 동네 가게를 상상하면 가까울 것이다. 살얼음이 뜨도록 차가운 잔에 담긴 생맥주나 하이볼, 각종 사와가 한 잔에 4-500엔, 마카로니 샐러드, 전갱이 튀김, 꽁치구이, 감자 크로켓이나 찬 두부 요리, 삶은 토란 등 다양한 메뉴들이 다 500-1000엔을 넘지 않는 가격이라, 퇴근하는 길에 들러 간단히 저녁과 맥주 한 잔을 하려는 동네 주민들이 손님의 대부분이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 즈음 지하철 역에서 자전거를 타고 기숙사로 향하는 길에 이 가게 앞을 지나가면 생선 굽는 냄새나 카레 냄새, 뭔가를 튀기는 고소한 기름 냄새, 가끔은 꽈리 고추를 간장에 졸이는 냄새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공격했다. 입 안에 침이 고이는, 그러면서도 어딘가 마음이 울컥해지는 집밥 냄새였다. 하루 종일 온 신경을 세워 긴장한 채로 수업을 듣느라 허기진 배는 이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요동을 쳤다. 하지만 이방인 유학생이, 게다가 여자 혼자서 이 가게에 들어가 앉기에는 슬쩍 두렵다고 할까, 뭔가 조금 문턱이 높았다. 가게 안은 어떨지 궁금하면서도 그 미닫이 문을 열어 볼 용기가 나지 않아, 나는 그 앞을 지날 때마다 항상 속도를 살짝 늦추고 안에 어떤 손님이 있는지 유리문 너머로 슬쩍 관찰을 할 뿐이었다.
장마가 시작되어 자전거를 타지 못하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이어졌다. 길가에 핀 수국은 빗물에 젖어 싱싱했다. 우산을 어깨에 걸쳐 쓰고 가게 앞을 지나가는데, 머리 수건을 두르고 앞치마를 맨 아주머니가 가게 밖 차양막 아래에 작은 나무 스툴을 내어 놓고 앉아 비를 피하며 담배를 피우고 계셨다. 아직 시간이 좀 일러서인지, 가게 안에는 손님이 없는 듯 싶었다. 흘끔흘끔 쳐다보며 걷다가 눈이 마주쳐버렸다. 눈길을 피할 수도 없어 고개를 꾸벅하며 인사를 했다.
"곤방와(안녕하세요)"
주저주저 건넨 인사에 아주머니는 친절하게 "곤방와"하고 인사해 주었다.
"아직 오픈 전인가요?"
들어갈 생각도 없었으면서 나도 모르게 이렇게 물었고, 사카에씨는 매일 다섯시에는 문을 연다고, 오늘은 문을 열었지만 아직 손님이 없다고 하셨다.
"아, 그렇군요. 하루 종일 비가 오네요"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아주머니는 담배불을 옆에 놓인 재떨이에 끄더니 문을 열어주었다. 으응? 이렇게 되니 가게 안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아,,, 그럼"
나는 쭈뼛쭈뼛 안으로 들어가 입구에 가까운 카운터 자리에 엉거주춤 앉았다. 차가운 물수건이 나왔다. 손을 닦으며 가게를 둘러 보았다. 이런 가게에 익숙한 척, 메뉴판을 봤는데 붓글씨로 휘날리듯 쓰여진 메뉴는 글자를 읽기조차 어려웠다.
"저, 일단 생맥주 한 잔 주세요"
아주머니는 듣는 사람도 없는데 "맥주 한 잔!"이라고 큰 소리로 말을 하더니 맥주 서버에 솜씨 좋게 잔을 기울였다. 곧 손이 시려울 정도로 차가운 컵에 담긴 생맥주와 오토오시라고 부르는, 일본의 가게에서는 자릿세 쯤으로 붙어 나오는 기본 안주가 나왔다.
이 날의 오토오시는 전갱이를 살만 발라 튀김옷을 입혀 튀긴 뒤, 탕수육처럼 새콤달콤한 소스를 부은 '아지노난반즈케'였다. 손님은 없고, 밖에는 비가 세차게 내리고, 맥주는 시원하고, 난반즈케는 맥주와 궁합이 딱이었다. 또 뭘 시키면 좋을까 싶어 추천메뉴를 물었더니 오늘은 참치의 붉은 살 회나 관자 버터구이가 좋다기에 두 개를 다 시키고는, 그래도 양이 좀 적을까 싶어 산 마 튀김도 시켰다. 맥주가 꿀꺽꿀꺽 넘어가는 안주들이었다. 아주머니가 솜씨 좋게 썰어낸 참치의 두툼한 붉은 살을 들깻잎과 향이 비슷한 시소에 살짝 말아 와사비 간장에 찍어 먹었다. 관자 버터구이는 바다냄새와 마늘향이 맛있게도 섞인데다 적절하게 잘 구워내 탱글탱글하고 부드러웠다. 산 마 튀김은 팔뚝 굵기 정도 되는 마를 깨끗하게 씻은 뒤, 길이로 4등분하여 튀김옷 없이 껍질째 튀겨낸 후 소금을 뿌린, 뭐랄까 10배 정도 확대한 감자튀김 같은 모양이었는데, 겉은 바삭바삭하면서도 속은 마 자체의 포슬포슬함이 소금간과 어우러져 아주 심플하면서도 자연적인 맛이었다. 메뉴 하나하나가 다 정갈하면서도 철에 맞는 재료를 사용해 신선하고 건강했다.
아주머니는 한바탕 요리를 하고는 카운터 앞 자리에 앉아 나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가게는 처음이지? 어때 입맛에 좀 맞나?"
아주 맛있다고 말하자 질문이 이어졌다.
"집은? 어디에 살아? 학생이야? 회사원인가? 비가 와서 자전거를 타기 힘들지 요즘은... 응, 아 그건 간장보다는 소금에 찍어 먹으면 맛있어. 따뜻할 때 얼른 먹어"
올 4월부터 한국에서 유학을 왔다는 내게, 아주머니는 깜짝 놀라며 한국 사람이냐고 물었다. 근처에 유학생 기숙사가 있어서 외국 학생들이 지나다니는 건 많이 봤지만, 손님들은 동네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유학생이랑 말을 나누는 건 처음이라고 반가워하셨다. 그리고는 어쩌면 그렇게 일본어를 잘하냐고 전형적인 칭찬을 잠깐 늘어놓는가 싶더니 눈을 반짝거리며 본론을 꺼냈다. 당신은 한국드라마를 너무나 좋아하는데, 그동안 같이 이야기를 할 사람이 주변에 없어서 외로웠다고. 그러고보니 벽에 늘어선 진로 병들 사이에 이서진과 장혁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아주머니는 배우 이서진을 가장 좋아하는데, 드라마 '이산'은 수도 없이 돌려 봤으며, 이서진이 나온 아주 옛날 드라마들도 츠타야(비디오 대여점)에서 다 빌려 봐서 스토리며 장면이며 거의 외울 지경이라고 했다. 내가 '이산'을 재밌게 봤다고 맞장구를 치자 아주머니는 더 신이 난 것 같았다. 이서진은 어쩌면 그렇게 착하게 생겨서는 연기도 잘하냐며, 생김새에 기품이 있어 왕 역할에 딱 맞는다고. 키도 크고 영어도 잘하나 보더라고 했다. 아참 그리고 말이 나와서 말인데 사실 헤어진지 20년도 넘은 남편도 젊었을 때는 눈매가 서글서글한게 이서진을 닮았었다고, 어느 날 이서진 드라마를 돌려 보다가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싶어서 누구 닮았는데 누구지 하다가 문득 전 남편이 떠올랐는데, 그러고보니 눈매가 아주 똑 닮았더라고. 그 전 남편으로 말하자면, 결혼해서 한 육개월 다정한가 싶더니만 반반한 얼굴 믿고 회사 여직원부터 술집 마담에 거래처 유부녀까지 바람은 수도 없이 피워대고, 있는 돈은 다 까먹으면서 집에는 잘 들어오지도 않던 놈이었는데, 바람났던 회사 여직원이 어느 날은 보무도 당당하게 집까지 찾아와서는 자기는 당신 남편을 사랑하니 제발 이혼해 주면 안되겠냐며, 애도 자기가 키우겠으니 걱정말고 당신도 새출발하라며 이혼을 종용하던 게 도무지 잊혀지지가 않아서 생각만해도 치가 떨리게 싫다고. 그래도 이서진을 보다보니 전 남편이랑 눈매가 참 닮았다 싶은게, 싫다 싫다 해도 자기 이상형은 그런 얼굴인가 보다고 했다. 하나 있는 아들은 지금 나고야에서 전자제품 회사에 다니는데, 아들은 아빠를 닮는다는데 뭐 그야 피를 받았으니 닮기는 했겠지마는 눈만 쏙 빼고 코와 하관이 닮아서 아들한테는 이서진의 얼굴이 없단다. 그리고 사실 이서진을 좋아하기 전에는 권상우를 좋아했는데 이서진을 만나고부터는 미안하지만 권상우에 대한 마음이 식었다고, 말이야 바른 말이지 권상우가 먼저 다른 여배우를 만나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으니 배신은 그쪽이 먼저 한 거라서 자신의 변심 따위는 비할 바가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저 아, 네, 그렇군요, 아 그렇죠, 맞아요 정도만 대답을 했을 뿐인데, 사카에씨는 처음보는 나에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주저없이 늘어놓았다. 결혼이며 이혼이며 아들 둘을 홀로 키우며 가게를 차린 일들까지를 이제야 뭐 다 지나가 버린 것들이니 솜털같이 가볍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일흔이 가까운 데다 담배를 사십년 이상 피운 탓인지 얼굴에는 주름이 깊고, 굵은 마디에 혈관이 툭툭 불거진 손에는 여기저기 상처가 패였지만, 쌍꺼풀이 깊고 코가 오똑하며 입가에 마치 가수 주현미씨 같은 보조개가 있는 사카에씨의 얼굴은 천진해 보이는 구석이 있었다. 당신 말마따나 젊었을 때는 인기 깨나 있었을 법한 고운 얼굴이었다.
결국 비가 장대같이 퍼부어 마감 시간까지 손님이 한 명도 없던 이 날, 나는 맥주 세 잔에 레몬 사와 세 잔, 사카에씨가 마셔 보라고 내어준 고구마 소주와 보리 소주를 두 잔이나 마시고 꽐라가 됐고, 이서진은 절대 탐내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후, 사카에 아주머니와 마치 전생부터 알던 사이 마냥 절친이 되어버렸다.
그 뒤로 나는 일주일에 두어번 '사카에'에 들러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텔레비전을 보았고, 마지막에는 이미 외울 지경이 된 아주머니의 이서진 사랑 레퍼토리를 들어주었다. 사카에씨는 단골 손님들의 이야기에 적절히 맞장구를 쳐 가면서 재빠르게 음식을 만들고, 술을 내고, 계산을 하고, 중간중간 그릇들을 치우고, 그리고는 그 사이사이에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며 담배를 피웠다. 그러면서 나는 '사카에'의 단골손님인 동네 아저씨 아주머니들과도 곧 친해졌다. 목공소 아저씨, 무명의 연극배우, 전직 복서, 구청 직원, 세무사, 피아노 선생님, 항상 강아지와 함께 등장하는 퇴직한 동네 할아버지가 계셨다. '사카에'에서 맥주를 한 잔 하다가 다른 가게로 2차를 가기도 하고, 누군가의 생일에는 한국식 고깃집에서 양념갈비를 먹은 후, 노래방에서 같이 노래도 불렀다. 동네 사람들은 젊은 외국인 유학생이 이런 동네 술집에 단골이 된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던 것 같다. 논문이나 발표준비로 바빠서 한동안 '사카에'에 가지 못할 때는, 그래도 밥은 먹어야되지 않냐며 집에 갈 때 들르라고 문자로 연락을 하시고는 주먹밥과 감자샐러드, 연근조림, 오이절임 같은 것을 싸주시기도 했다.
기숙사에서 살던 2년 동안, 나의 일본어 어휘력을 높여주고 학교 밖의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어 준 곳은 '사카에'였다. 일본의 가정식 반찬은 이런 것이구나, 이 술은 이렇게 마시는구나, 동북지방과 관서지방 사투리는 저렇게 다르구나하는 것도 '사카에'에서 알게 되었다. 처음 보는 채소의 요리방법과 일본의 옛날 배우들, 하다못해 동네의 어느 슈퍼가 더 싸고 포인트가 많이 쌓이는지, 어느 화과자점이 맛있는지 같은 것도 '사카에'에서 배웠다. 사카에씨에게서 '이시하라 유지로'의 노래도 배웠다. 일본의 국민배우이자 가수인 이시하라 유지로는 도쿄 도지사를 지냈던 이시하라 신타로의 동생이기도 하다. 큰 키와 잘생긴 얼굴, 세련된 패션으로 60-70년대 영화판에서 유명했고, 70-80년대에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형사 역할을 하며 인기 절정을 달리며 가수로서도 큰 성공을 거뒀는데, 사카에씨가 가장 좋아하던 가수가 바로 이시하라 유지로였다. (가게에서 15분 정도 거리에는 이시하라 유지로가 살던 집이 있고 문패도 그대로 달려 있어서, 어느 날에는 사카에씨와 그 집 근처로 밤 산책을 한 적도 있다.) 고음도 별로 힘들이지 않고 부르는 듯한 부드러운 목소리에, 일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곡들이 많아서 가게 '사카에'에는 이시하라 유지로의 베스트앨범 씨디가 흘러나오는 날이 많았다. 사카에씨는 나에게 가사집을 보여주며, 그의 노래들은 가사도 하나같이 예술이라고, 너는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니 알지 않겠냐며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을 했다.(물론 가사는 나카니시 레이라는 일본의 걸출한 작사가의 것이었지만) 나는 사카에씨가 틀어주는대로 이시하라 유지로의 노래들을 들으며 맥주를 마셨다. 그러는 동안 '벚나무 아래에서 보는 한낱 꿈같은 인생, 살아있는 동안은 늘 청춘인 것을', '아카시아 꽃이 흘러넘쳐 조용한 마을에는 나 혼자만이. 시간은 흐르고 구름 저편에 아름다운 너를 생각할 뿐' 같은 가사를 외우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콧노래로 부르곤 했다. 덕분에 나는 다른 친구들이 노래방에서 이키모노가카리나 그린의 노래를 부를 때, 이시하라 유지로의 노래를 불러서 그들을 놀라게 했다. "김짱, 이런 노래는 대체 어디서 배운 거야? 이거 우리 할머니가 좋아하는 노래야!" 아마도 미국인 유학생이 한국의 노래방에서 최희준의 '하숙생'이나 송창식의 '선운사'를 열창하는 것을 보는 느낌일까.
일본 사람들은 겉으로는 친절하지만 속으로는 차갑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적어도 사카에씨와 '사카에'에 모이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유학생이 무슨 돈이 있냐며 항상 술값은 100엔 단위를 떼고 깎아주셨고, 어제 저녁부터 만든거라 더 맛있을 거라며 하이라이스나 카레를 고봉밥에 얹어주셨다. 유학 초기, 아침에 일어나면 새로운 도시와 환경, 나에게 주어진 기회들을 낱낱이 경험하여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넘쳤지만, 힘든 하루가 지나고 밤이 되어 침대에 누우면 이 곳에서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무엇을 바라고 가족과 친구들을 떠나 여기까지 왔나하는 무거운 불안과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 시기에 우울감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을 수 있었던 데에는 사카에씨와 그녀가 넉넉하게 담아주셨던 고봉밥이 큰 도움이 되었다.
사카에씨는 3년 후, 20년 넘게 해 온 가게를 접고 아들이 있는 나고야로 가셨다. 이제 나이도 있고 하지정맥류가 심해져서 하루 종일 서 있는 일은 힘에 부친다고 하셨다. 아들네와 살림을 합쳐 이제는 초딩과 중딩 손주들에게 밥을 해주고 있다고. 당신 인생은 남 밥 해 먹이는 일이 운명인가 보다고 하셨다.
'사카에'가 있던 자리에는 새로 닭고기 육수를 베이스로 하는 라멘 가게가 들어섰다. 깔끔하게 리모델링한 가게 앞에는 모던한 디자인의 간판과 노렌이 걸렸다. 젊은이들에게 인기있는 차트 100노래들이 흘러 나온다. 나는 황혼에 접어든 노신사라도 된 마냥, 이시하라 유지로를 들으며 레몬사와를 마시던 그 날들을 그리워한다.
20210810